영국 3대 패션 브랜드 '폴 스미스' 대표 폴 스미스

#1
1970년 노팅엄 뒷골목서 창업
독특한 디테일ㆍ파격적 색상 등
80년대 런던 젊은이의 필수품으로
#2
24색ㆍ86개 선을 수작업 조합
‘멀티 스트라이프’로 브랜드 각인
셔츠ㆍ가방 등 다양한 제품에 응용
#3
“매출ㆍ수익 창출 압박 싫다”
73개국 진출 불구 상장도 안 해
“영국 패션 발전 기여” 기사 작위도
영국을 대표하는 패션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유년시절 꿈은 프로 사이클리스트였다. 신세계 인터내셔날 제공

2002년 호주에서 열린 영연방 정상회의에선 셔츠 한 벌이 화제가 됐다.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가 수십개국 정상이 모여있는 회의장에 여자 누드 그림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나타난 것. 원래 소매 안쪽에 ‘은밀하게(?)’ 그려진 것이었는데, 소매가 걷히면서 공식석상에서 노출이 됐고 구설수에 휘말렸다. 그 때 블레어 총리가 입었던 셔츠가 바로 ‘폴 스미스(Paul Smith)’ 제품이었다. 이는 ‘클래식의 변형(Classic with Twist)’ 또는 ‘위트 있는 클래식’을 추구하는 폴 스미스의 정체성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사건으로 회자되곤 한다. 버버리, 비비안웨스트우드와 함께 영국의 3대 패션브랜드로 꼽히는 폴 스미스는 창립자의 이름이 상표명이 됐다. 72세의 고령에도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패션제국을 이끌고 있다.

사이클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소년

1946년 영국 노팅엄(Nottingham)의 평범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스미스는 15세 때 학교를 중퇴했다. 이듬해 고향에 있는 작은 의류창고 매장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용돈을 벌긴 했지만 패션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평범한 소년에게도 꿈이 있었는데 바로 프로 사이클리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스미스는 일주일간 수백 ㎞를 타고 다닐 정도로 자전거 연습 삼매경에 빠지곤 했는데, 17세 때 그만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당시 사고로 다리에 큰 부상을 입으면서 꿈도 접어야 했다.

대신 6개월 동안 병원 입원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빛”을 보게 된다. 병원에서 사귄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스미스는 노팅엄의 미대생들이 자주 드나드는 펍을 알게 되는데, 그곳에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패션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오늘날 폴 스미스 브랜드를 가능하게 한 동업자이자 디자이너 스승이며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 폴린 데니어를 만난 곳도 이곳이다.

아내의 꾸준한 지원에 힘입어 스미스는 1970년 노팅엄의 작은 뒷골목에 ‘폴 스미스 남성복’이라는 간판을 걸고 첫 번째 매장을 열었다. 폴 스미스 브랜드 역사의 시작이다. 가게 문을 닫은 뒤 재단 기술을 연마하는 등 주경야독하며 디자이너로서의 소양을 키웠다. 76년 마침내 폴 스미스라는 이름을 걸고 파리에서 첫 번째 전시를 개최했다. 이어 79년 런던에도 폴 스미스 매장이 생겼다. 당시 스미스가 만든 수트는 전통적인 재단 기법과 독특한 디테일, 파격적인 색상 등으로 유명해졌다. 80년대에는 런던의 소위 ‘잘 나가는’ 젊은이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 했다.

밝고 화사한 색감과 디자인, 긍정과 낙관주의를 표현한 폴 스미스의 2018 봄여름 시즌 컬렉션. 신세계 인터내셔날 제공

위트와 전통을 겸비한 디자인

폴 스미스에서 ‘위트’는 알파이자 오메가다. 스미스는 항상 엉뚱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추구했다. 때문에 그의 철학은 실제 제품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코트의 양쪽 주머니 위치가 다르거나 모자가 앞쪽으로 달려 있어 옷을 거꾸로 입은 듯한 후드, 소매 길이가 다른 재킷 등이 대표적 사례다. 동시에 폴 스미스는 가장 영국적인 가치를 대표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의 작업은 항상 영국적인 것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블레어 총리가 각국 정상을 마주하는 자리에 폴 스미스 셔츠를 입고간 것은 우연이 아닌 셈이다.

폴 스미스를 언급할 땐 ‘멀티 스트라이프’ 혹은 ‘레인보우 패턴’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폴 스미스를 두고 떠올리는 이미지다. 이 디자인은 스미스가 97년 영국의 소형 자동차 로버미니(Rover MINI)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차량 외관을 장식할 만한 패턴을 찾다 만들어졌다. 스미스가 우연히 봉에 형형색색의 실을 감다가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밝은 원색의 노랑과 오렌지, 차분한 다크블루 등 24가지의 색깔을 86개의 각기 다른 선 굵기로 조합하며 독특한 형태를 만드는 원리다. 스미스는 이상적인 색 조합을 위해 컴퓨터가 아닌 수작업으로 디자인하고 있다. 멀티 스트라이프 패턴은 97년 이후 셔츠와 가방, 지갑, 티셔츠 등 다양한 제품에 응용되고 있다.

멀티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폴 스미스 제품. 신세계 인터네셔날 제공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폴 스미스

폴 스미스는 현재 미국과 동남아, 중동 등 전 세계 주요 73개국의 90여개 백화점에 입점돼 있다. 840여개 멀티 브랜드샵도 운영되고 있다. 매출 3분의 2를 해외시장에서 걷어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글로벌 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특히 해외 매출의 상당 비율이 일본에서 발생하고 있다. 80년대에 일본에 진출한 폴 스미스는 이미 일본에서 200여곳의 매장을 열었다. 영국 내 매장 수가 17곳 안팎임을 감안하면 일본인의 압도적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국내에는 신세계백화점 등 10여곳의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폴 스미스는 87년 화장품 사업에 진출한 뒤 아동복도 만들었다. 94년에는 여성복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는 등 꾸준히 확장 중이다. 의류와 액세서리, 신발, 향수, 속옷 등 종합 브랜드로 거듭났다.

기업 규모에도 불구하고 스미스는 기업상장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매출과 수익 창출 압박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기업의 창립자 신분에도 불구하고 스미스는 여전히 회사 운영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옷에 사용될 원단 선정부터 매장 위치를 고르는 일까지 회사 내 대부분의 안건을 다루고 있다. 매일 오전 6시 매장으로 출근해 직접 고객을 응대한다. 회사 대표로서 스미스는 “지시를 내리기에 앞서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회사 운영의 핵심 가치로 경청을 통한 의견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2000년 그는 영국 패션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 받았다.

뉴발란스ㆍ폴스미스 멀티스트라이프 축구공. 폴스미스 공식홈페이지 캡처

생활 속으로 확장하는 브랜드

스미스는 유년 시절 가졌던 꿈의 영향으로 스포츠에도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참가한 잉글랜드 국가대표 축구팀을 위해 가죽지갑과 구두, 시계, 여행가방 등을 디자인했고 2008년부터 영국의 프로축구 클럽인 맨체스터 유니이티드(Manchester United F.C.) 선수단에 맞춤 정장을 제공하고 있다. 2012년에는 런던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올림픽 우표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폴 스미스는 다양한 일상생활 속 생필품을 활용한 ‘협업’으로도 유명하다. 2008년 프랑스 생수 브랜드 ‘에비앙’의 병 디자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스포츠 의류브랜드 뉴발란스와 레인보우 패턴이 들어간 축구공, 축구화를 선보였다. 스미스는 자서전에서 “당신은 모든 것에서 영감을 찾을 수 있다”며 “만일 그것을 찾지 못한다면 당신은 적절히 보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미스에게 난독증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덕분에 이성적인 사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년과 같은 상상력을 끊임 없이 발휘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반 세기 가까운 역사에도 폴 스미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올해 7월 열린 세계 자동차경주대회 '르망클래식'에 선보인 폴스미스 콜라보 포르쉐 911(1965년식). 폴스미스 공식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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