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더위로 하루하루가 힘겹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추스르기 쉽지않다. 그래서 마음을 추스를 방편으로 매일 아침 시 한 편씩 필사를 해 벽에 붙여 놓고 들여다보곤 한다. 오늘은 동화작가 권정생(1937-2007)의 재미있는 시를 한 편 베꼈다. 읽으면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시.

“도모꼬는 아홉 살/나는 여덟 살/2학년인 도모꼬가/1학년인 나한테/숙제를 해달라고 자주 찾아왔다/어느 날, 윗집 할머니가 웃으시면서/도모꼬는 나중에 정생이한테/시집가면 되겠네 했다//앞 집 옆 집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두 쳐다보는 데서/도모꼬가 말했다/정생이는 얼굴이 못 생겨 싫어요!//50년이 지난 지금도/도모꼬 생각만 나면/이가 갈린다”(‘인간성에 대한 반성문 2’ 전문)

일본에서 노무자로 살았던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자란 소년 권정생의 추억이 서린 시다. ‘이가 갈린다’는 표현에서 빵(!) 터졌지만, 이 표현 또한 신산스런 삶을 살았던 작가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이충렬이 쓴 전기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을 보면 그는 평생 독신으로 외롭게 살았고, 몸의 지병을 껴안고 고통스럽게 살았으며, 천형처럼 가난의 멍에를 지고 살았다.

지난 봄 나는 경북 안동시 조탑동에 있는 그의 생가를 찾아갔다. 빌뱅이 언덕이라는 나지막한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그의 생가는 그가 살았던 아름다운 삶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오두막이라 불러 마땅할 두 칸짜리 작은 흙집. 누런 빛깔의 흙벽은 회칠도 하지 않아 쩍쩍 갈라져 있고, 양철 지붕은 페인트칠도 하지 않아 잔뜩 녹이 슬어 있었다. 마당 한편의 수돗가엔 오래된 돌절구가 놓여 있고, 울 밑엔 엉성하게 나무로 짠 개집이 그대로 있었다. 한옥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싱크대가 놓여 있고, 작은 책꽂이 옆엔 흑백사진의 초상이 해맑은 얼굴로 반겨 주었다. 책꽂이엔 선생의 대표적 작품들 ‘강아지똥’, ‘황소 아저씨’, ‘엄마 까투리’, ‘몽실 언니’ 등이 꽂혀 있었다. 생의 말년에는 그가 펴낸 동화들이 사랑을 받으면서 엄청난 인세 수입을 얻었으나 그는 여전히 가난한 시절의 모습대로 살았다고 한다.

그가 이처럼 ‘비단 가난’이라 부를 만한 삶을 실천하며 살았던 것은 천민자본이 맹위를 떨치는 시대를 극복할 힘은 무욕과 절제와 가난이라는 무기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 아닐까. 그의 전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는 안동에서 목회를 하던 장영자라는 전도사와 자주 너나들이하고 지냈던 모양이다. 어느 날 권정생은 그 전도사와 ‘가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중에,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소설 얘기를 한 뒤 이렇게 말을 잇는다. “저는 이 소설이 울리는 경종처럼 재물을 많이 차지한 부자는 그 물질의 원주인인 이웃들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되돌리는 것, 저는 이것이 가난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말년의 권정생은 부자였다. 그가 쓰지 않고 저축해 둔 책의 인세가 10억원이 넘었다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 돈을 자기를 위해 한 푼도 쓰지 않았고,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고 유언장에 남겼다.

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가난한 이들이 고통을 받을까. 권정생의 말대로 ‘되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세상 사람들은 더 잘사는 풍요로운 세상을 바란다. 지구 자원은 점점 고갈되어 가고 있고, 자본은 극소수 사람에게 쏠려 있는데, 어떻게 골고루 더 잘살 수 있겠는가. 앞으로 인류가 지녀야 할 화두는 ‘어떻게 골고루 가난해질 수 있을까?’가 아닐까. 골고루 가난해지자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이들이 많겠지만, 우리 인류가 물질적으로 가난해질 결심을 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아예 없는 것이 아닐까.

고진하 목사ㆍ시인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