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동물실험 윤리'] "동물복지 챙기자" 변화하는 연구실

#1
“미안하고 고마워” 애틋한 마음
고기 대신 사료로 만든 떡ㆍ사과…
농림축산검역본부 등 매년 수혼제
백신 개발 희생 물고기 위령제도
#2
“동물 스트레스라도 줄여주자”
전임 수의사 고용 건강 등 관리
아늑한 환경에 놀이기구도 제공
복지 향상하자 연구 신뢰도 높아져
#3
동물실험 안 할 수는 없나
AI로 화학물질 자극 예측 성공
전세계 동물실험 57% 차지하는
‘6가지 독성 시험’ 대체 기대감
국립수산과학원은 지난 4월 수산업 발전을 위해 실험·연구 과정에서 희생된 실험용 어류와 쥐 등 실험동물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실험동물 위령제'를 지냈다. 사진은 연구자들이 '실험동물 위령비' 앞에서 묵념하는 모습.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그대 동물들이여! 작은 쇠철망, 불편한 우리 안에서 냄새나는 잠자리와 뛰놀 곳 없는 신세를 얼마나 한탄하였소.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당할 때 무얼 느꼈소. 그대들의 희생으로 우리의 빛나는 연구개발과 축산업 발전 및 국민의 건강한 삶이 있음이니 우리는 그 공로와 희생을 기억하노라.”

농림축산검역본부는 해마다 절절한 진혼문을 낭독하며 수혼제(獸魂祭)를 지낸다. 애틋한 마음을 담아 인간을 위해 생명을 바친 동물을 기리는 것이다. 검역본부 영남지원의 축혼비는 국내에서 동물의 희생을 기리는 가장 오래된 비석으로 전해진다. 농촌진흥청 산하 수의과학연구소의 전신인 조선총독부 우역혈청제조소가 1911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일살다생 나무아미타불 추풍(一殺多生 南無阿彌陀佛 秋風ㆍ한 몸 죽어 많은 목숨 살렸으니 아미타불께 귀의하라. 가을바람이여)’이라고 적은 비석은 한 세기 넘는 세월을 보여주듯 검게 변했다. 검역본부는 영남지원뿐 아니라 김천 본원에도 수혼비를 갖고 있다. 이 비석도 한참 전인 1969년 10월 세워졌다. 문운경 검역본부 동물보호과장은 “동물질병 진단법과 백신 개발, 방역대책, 동물보호복지 등에 대한 수의학적 연구를 총괄하는 기관이다 보니 연구원들이 느끼는 사육하는 가축과 실험동물에 대한 생명존중 의식이 남다르다”며 “1911년부터 수혼제를 통해 연구에 사용된 가축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지난해 국내 실험에 사용된 동물은 모두 308만2,259마리. 8년 전인 2010년 143만8,686마리가 사용된 것과 비교하면 2배가 훌쩍 넘는 수치다. 신동준 기자.

실험실에서 산화하는 동물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대신하는 제사를 비롯해 동물들의 복지를 챙기려는 연구자들의 움직임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높아지는 동물복지의 수준이 연구결과를 끌어올린다는 다소 현실적인 이유도 제시되지만, 대체로 인간의 건강을 위해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동물에 표현하는 애틋함이다.

‘고기’ 없는 단출한 제사상

수혼제는 희생된 동물들에 대한 묵념으로 엄숙하게 시작한다. 이어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은 진혼문을 낭독하고 헌화한다. 일반 제사와 비슷한 형식이지만 유독 제사상이 단출하다. 사료로 만든 떡과 배, 사과, 채소 몇 가지뿐. 동물의 넋을 기리면서 그들의 살로 만든 음식을 올릴 수 없어서다. 오랜 기간 이어진 수혼제는 지난해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는 바람에 지내지 못했다고 한다. 올해 수혼제는 오는 10월 4일 세계동물의 날 개최할 예정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2016년 김천 혁신도시 이전과 함께 경기 안양에 있던 수혼비를 경북 김천으로 이전했다. 사진은 이전 후 첫 수혼제를 지내는 모습. 농림축산검역본부 제공.

지난해 4월 부산 기장군 국립수산과학원 내 공원에서도 ‘물고기 위령제’가 치러졌다. 수산생물 질병 치료와 백신 연구에 희생된 물고기를 위로하는 제사다. 2006년과 2007년 두 차례 개최했고 2015년부터는 매해 지내고 있다. 이밖에 국내 대학병원과 연구기관에서도 위령비를 세우고 사람을 위해 희생된 동물을 추모한다.

생명을 존중하고 윤리의식을 고취하는 목적은 같지만, 제사의 성격과 명칭을 놓고 논쟁이 일기도 한다. “죽은 사람의 넋을 뜻하는 영혼(靈魂)은 사람에게만 있다”며 “‘위령제’가 아니라 동물의 혼을 기리는 ‘수혼제’가 적절하다”는 주장이 골자다. 이런 이유로 국립수산과학원은 ‘실험동물 위령제’, 농림축산검역본부와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학생회는 ‘수혼제’ 등으로 명칭이 제각각이다.

쥐는 유전체 염기서열이 사람과 약 97% 같아 신약물질을 검증하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게티이미지뱅크
실험동물 스트레스 줄이는 ‘인리치먼트’

실험동물이 살아있는 동안 고통을 줄이고 최소한의 행복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려는 노력도 실험과정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는 실험기관의 연구 계획 심의 단계에서 고통 등급을 나눠 동물이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를 검토한다. 죽은 생물체나 비척추동물을 이용한 실험은 고통등급이 가장 낮은 A그룹에 속한다. A그룹은 별도의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실험을 할 수 있다. B-E그룹은 척추동물을 사용하는 연구다. 거의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B그룹, 짧은 시간에 경미한 통증이나 스트레스가 가해지는 C그룹, 중등도 이상의 고통이나 억압을 동반하는 D그룹, 극심한 고통이나 억압, 회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E그룹은 더욱 철저한 심의를 거쳐야 한다. 전임 수의사들은 동물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진통제나 마취제를 적절하게 투여하도록 감독한다.

실험과정에서도 동물의 종(種)에 적합한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환경을 조성하고 사육 환경에서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이른바 ‘인리치먼트(Enrichmentㆍ동물생활환경 개선)’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연구진들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실험쥐가 야행성이라는 점을 고려해 광(光) 주기를 12시간으로 설정하고 임신모체는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아늑한 환경을 만들어준다. 나무 제품을 갉으며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게 놀이기구를 제공하기도 한다. 국내 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수의사 A씨는 “최근 1~2년 새 실험실 안에서도 동물복지를 위한 조치가 늘고 있다”며 “과거에는 실험 중인 동물에게 항생제나 진통제를 처치하면 실험결과에 영향을 미칠까 봐 꺼리는 연구자도 있었는데 이제는 대다수의 연구자들이 ‘동물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게 실험에도 유익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버풀대학교의 켈리 고베이아 박사와 제인 허스트 교수 연구팀은 쥐가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위치를 옮길 수 있도록 '마우스 친화적 터널(mouse-friendly handling tunnels)'을 고안했다. 리버풀대학교 제공.
“동물복지가 연구 신뢰도 높인다”

최근 보고된 ‘쥐구멍 실험’은 동물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것이 논문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임을 연구결과로 입증한다. 영국 리버풀대학교 켈리 고베이아 박사와 제인 허스트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험동물을 집어 올리는 방법은 불안감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 실험동물의 행동학적 변화를 유발한다”고 보고했다. 연구에 따르면 꼬리를 들어올려 이동시킨 쥐는 새로운 영역을 탐험하려 하지 않거나 새로운 자극을 꺼렸다. 쾌락이나 스트레스 실험 등 다양한 행동실험에 실험쥐가 동원되는 점을 고려할 때 쥐의 취급 방식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인 셈이다. 반면, 쥐의 습성을 살린 쥐구멍을 지나도록 유도해 이동시키면 실험 자극에 흥미를 보였다.

이런 이유로 해외에서는 수의사 고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각 실험시설에서 수의사를 정식고용(Formal arrangement)하도록 하고 파트타임이나 자문 역할에 그칠 때에는 실험동물의 수의학적 관리 계획과 수의사의 정기적인 방문 계획을 상세히 적어야 한다. 영국 동물(과학적 절차)법(Animal (Scientific procedure) Act)은 실험을 수행하는 연구실뿐만 아니라 실험동물 생산자와 공급자도 동물의 건강과 복지에 대해 조언할 수 있는 수의사를 고용하도록 규정한다.

인공지능으로 화학물질 동물실험 대체

최근 개발된 인공지능(AI) 알고리즘 예측 방식은 실험동물의 희생을 크게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동물대체시험연구센터 토머스 하퉁 교수 연구팀은 지난달 인공지능(AI) 컴퓨터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분석으로 화학물질의 자극을 높은 정확도로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 학술지 ‘독성과학’을 통해 발표했다.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독성 정도를 인공지능으로 예측하는 방식인데, 정확도가 평균 8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따르면 AI로 독성실험을 반복하면 동일한 결과가 나올 확률이 87%에 달한다. 이는 동물실험의 정확도인 81%보다 더 높은 수치다. 이 AI 알고리즘을 통해 전 세계 동물실험의 57%를 차지하는 6가지 주요 독성 시험을 대체할 수 있다. 또 AI는 동물에게 수행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실제 연구보다 속도가 훨씬 빨라 신약과 화장품을 개발하는 기간과 비용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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