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좌파부터 자유주의까지를 지칭
보수ㆍ중도ㆍ좌파로 구분하는 게 정확
‘같은 진보’라는 허상과 모호성 버려야

정부가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몰리는 듯하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보수의 비판은 맞다. 그러나 그것이 좌파 정책이라거나 ‘이단’이라는 비난은 우습다. 정부가 좌파가 아니라는 것은 그들도 안다. 그럼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좌파적인가? 첫해에 청와대가 다소 그런 인상을 주기는 했지만, 정말 좌파 정부라면 최소한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상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좌파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보완해주는 세부 정책들이 준비가 덜 되었기에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마찬가지로 좌파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는 옳은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실행 방식에서 문제가 있었다. 한국보다 1만달러 소득이 높은 일본의 2018년 최저임금 평균이 8480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첫해에 최저임금을 인상한 폭은 과도했고 방식도 조급했다. 또 최저임금 인상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자영업자들의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 등 보완적 정책을 같이 실행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고 결국 ‘을과 을’의 갈등이 야기되었다.

이렇듯 정책이 좌파적이어서 문제라는 보수의 비판은 ‘정치적인’ 면이 있고 따라서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진보 지식인과 시민단체가 진보 정책의 후퇴를 경고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노무현 정부를 비판할 때처럼 진보 진영이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측으로 돈다”는 식으로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비판에 따르면, 진보 정부가 좌파 정책을 펴다가 후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비판에 대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진보 진영의 조급증”과 “근본주의” 때문에 “정부가 실패할 수 있다”고 다시 경고를 날렸다. 그런데 이 경고는 혼란을 정리하기보다는 부추기는 면이 있다. 모두 같은 진보인데 조급증이 정부를 실패하게 만든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착각하지 말자. 실패의 위험은 정부가 자신을 ‘진보’라고 정의하는 만큼만 존재한다. 그런데 민주당도 진보고 정의당도 진보라면, 말이 안 된다. 정의당이 좌파이니, 민주당은 중도나 중도좌파에 가깝다.

‘진보’에 관해 한국은 왜 이렇게 모호하고 무책임해졌는가? 그 말이 좌파와 중도좌파와 자유주의를 모두 지칭하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화 초기엔 그들 사이에 공통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들의 차이를 간과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언론이 그 용어를 계속 남용하고 있다. 여기엔 보수도 잘못이 있지만, 자칭 ‘진보’가 더 잘못이다. 좌파부터 모호하게 자신을 진보라 부르지 말고 제 이름인 ‘좌파’를 찾아라. 좌파라는 진짜 이름이 있는데 왜 모호한 이름을 사용하는가? ‘진보’를 많이 사용하는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인데, 거기선 그것이 자유주의(liberalism) 노선을 지칭한다.

유럽에서는 ‘진보’라는 표현 대신에 이념적 구별인 보수, 중도, 중도좌파, 좌파가 사용되며, 따라서 ‘진보’ 용어에 의한 혼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와 달리, 한국에서는 그 용어가 엄청난 혼란에 빠져 있다. 노무현 정부도 자신을 진보라고 지칭하면서 불필요하게 ‘좌측 깜빡이’ 논쟁에 휘말린 면이 컸다. 진보의 비판에 대해 정부가 “같은 진보인데 너무하다”는 식으로 대응한다면, 그 이념적 혼란이 반복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부가 진보로부터 비판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모두 진보’라는 허상과 ‘진보’의 모호성을 버리는 것도 실력이다.

어차피 문제의 핵심은 이념과 진영 논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실력이다. 적폐는 최대한 개혁하되 일자리를 만드는 성장은 거의 무조건 껴안아야 할 상황이라면, 정말 고난도의 복합적 실력이 요구된다. 말로만 ‘혁신’을 외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틀어쥐고 있는 청와대의 권력 집중은 각 부처와 장관들을 무력하고 무책임하게 만든다. 거기다 민주당은 정책에 대해 제대로 토론하고 이의를 제기할 실력을 키우는 대신, 청와대에 줄을 서며 자만하고 있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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