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북반구가 연일 40도를 넘나드는 폭염(暴炎)으로 달아 올랐다. 더위가 최고조에 달하면 중국 공산당(중공) 지도자들도 ‘베이다이허(北戴河)’로 집단 피서를 떠난다. 이 ‘베이다이허 회의’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중공 고위층 지도자들은 ‘피서’ 겸 ‘회의’를 병행하는데, 전직 공산당 원로들도 참여한다는 점이 이채롭다. 1953년부터 시작된 이 회의는 비공개지만 향후 중공의 당무(黨務)와 중국 정치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측해 볼 수 있어 중국 내부는 물론 각국의 주목을 받는다. 이 회의는 중공 지도자들이 여름 더위를 피해 베이징에서 아예 베이다이허로 집무실을 옮겨 중국을 통치했던 ▦1차 하계 수도(夏季首都, 夏都) 시기(1953~1965년)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중단 시기(1966~1979년) ▦2차 하계 수도 시기(1980~2002), 그리고 ▦‘하계 워크숍’ 시기(2003~현재)로 구분된다. 2003년 여름 당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ARS) 발병으로 베이다이허 집무 제도가 없어지고, 이후 단기간 피서 겸 회의를 병행하는 하계 워크숍 형태가 되었다.

두 번째 특징은 매년 이 회의 개최를 전후로 중국 국내와 해외에서 충격적인 루머가 돈다는 점이다. 올해도 예외 없이 루머는 풍성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세 가지로 ▦시진핑(習近平) 중공 총서기 겸 중국 국가주석의 권위와 위상 하락설 ▦왕후닝(王滬寧) 중공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의 위상 하락 혹은 실각설이 있다. 한국의 일부 언론은 베이다이허 회의에 왕후닝 불참설을 언급했지만, 이는 중화권 언론 보도와는 다르다.

한국 언론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세 번째 루머는 ▦류허(劉鶴) 중공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국 국무원 경제담당 부총리의 교체설이다. 구체적으로 시진핑의 경제 책사 임무를 맡아 미중 무역협상을 책임졌던 류허의 역할은 협상 실패로 인해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인 허리펑(何立峰)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루머가 중화권에서 떠돌고 있다. 그러나 류허는 7월 30일 국무원 안전생산위원회(安全生産委員會) 주임도 겸직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후춘화(胡春华) 중공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국 국무원 상업무역담당 부총리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진입 및 차기 중공 총서기 지정설 ▦중국 국가주석 ‘2회 이상 연임 제한 조항’ 재추가 개헌설 ▦시진핑 개인 숭배와 실정(失政)에 대해 장쩌민(江澤民) 전 총서기 겸 국가주석, 주룽지(朱镕基) 전 총리,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가 연대 서명으로 중앙정치국에 정치적 의견 피력설 등의 루머가 있다.

베이다이허 회의에 대한 루머가 매년 풍부(?)한 이유는 회의 일정이나 내용이 비공개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을에 개최되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중전회)에서 일부 내용이 공개되고, 다음해 3월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에서 구체적인 정책으로 논의된다지만, 내부의 격렬한 토론이나 논쟁을 포함, 대부분의 내용이 비공개다. 루머를 통해 일종의 ‘간 보기’를 시도하는 셈이지만, 중공과 중국의 특성상 이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일리 만무하다.

중공의 고민은 중국에 대한 ‘1당 통치’ 체제의 강화이고, 중국의 고민은 무역과 환율 전쟁을 포함하는 미중의 아시아ㆍ태평양 패권전쟁이다. 내부로는 양극화와 불량 분유 및 불량 백신 사태로, 외부로는 아직 상대가 되지 않는 미국과 너무 빨리 패권전쟁에 돌입하여 내우외환의 위기를 자초했다.

1978년 말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이 1990년 전후에 주장했던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의 시효는 100년이었으니, 30년도 채우지 못하고 터트린 샴페인은 너무 빨랐다. 먼저 힘을 기르라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김상순 중국차하얼(察哈爾)학회 고급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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