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브라운즈빌 사건의 누명을 쓰고 마을 주둔 '버팔로 솔져스(흑인 병사들)'들은 연금도 없이 강제전역 당했다. blackamericaweb.com

미국 텍사스 남부 소도시 브라운즈빌(Brownsville)의 한 술집에서 1906년 8월 13일 밤, 백인 종업원이 총에 맞아 숨지고 히스패닉계 경찰관 한 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목격자도 없는 그 사건의 불똥이 당시 마을 외곽에 주둔해 있던 ‘버팔로 솔저스(Buffalo Soldiersㆍ흑인 병사들)’에게 튀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만 구성된 미 육군 제25보병연대가 그들이었다. 앞서 시 당국과 백인 주민들은 흑인병사 수칙이란 걸 만들어 군이 수용하도록 했다. 흑백 분리ㆍ차별 즉, 당시 남부 주법에 따라 인종 분리를 준수하고 백인들을 만나면 무조건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사건 하루 전인 12일 백인 여성이 괴한에게 습격 당하는 일이 일어났고, 주민들은 반사적으로 흑인 군인들을 의심했다. 백인 부대장은 충돌을 우려해 병사들의 외출을 금지했다. 그리고 다음날 저 사건이 터졌다. 부대장의 변호와 병사들의 알리바이는 백인 주민들의 비이성적 분노 앞에 무기력했다. 사건 현장에서, 누군가 갖다 둔 군용 탄창 등이 발견됐다. 미 의회 상ㆍ하원 선거가 치러진 해였고, 사건은 정치 쟁점으로 비화했다.

치안을 담당하던 텍사스 레인저스가 장병 12명에게 혐의를 씌워 사건을 무마하려 했으나 주민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반발이 거세지자 당시 대통령 시오도어 루스벨트는 흑인 부대원 167명을 불명예 제대시키고, 사후 재입대는 물론이고 관공서에 취직할 수 있는 권리도 박탈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사유는 ‘침묵 공모’, 즉 범인을 고발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20년 넘게 복무한 이들, 전역을 앞둔 이들도 모두 연금수령 자격을 박탈 당했다. 정부는 진보적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 선거가 끝난 뒤에야 이런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루스벨트의 정적이던 오하이오 주 상원의원 조셉 포레이커 등이 반발했고 흑인 인권운동 단체들이 거칠게 항의했다. 하원 군사위원회 등의 재조사가 진행됐지만, 구제(재입대)된 건 11명에 불과했다.

1970년 한 사학자(John. Weaver)가 이 사건을 재조명한 책 ‘The Brownsville Raid’를 출간했다. 직후 인권변호사 출신 하원의원 아우구스트스 호킨스의 발의로 의회 재조사가 시작됐다. 72년 군 수사당국이 내린 결론은 25연대 부대원들이 결백하다는 거였다. 당시 대통령 닉슨은 해당 병사들의 불명예제대 기록을 삭제하도록 했지만 그들이 못 받은 연금 등에 대한 보상과 배상은 외면했다. 1910년 재입대한 이를 빼면 당시 생존자는 단 한 명(Dorsie Willis)이었다. 그에게는 2만5,000달러의 연금이 지급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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