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박종홍의 ‘한국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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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 연구의 개척자
“우리 선조들 고귀한 체험의 발로”
불교ㆍ유교ㆍ근대사상 논문에 집약
한국사상의 심층적인 이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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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도덕가’라는 그늘
“뛰어난 스승ㆍ애국자” 등 칭찬에도
독재시대 국민교육헌장 초안 쓰고
박정희 정권 교육문화 특보 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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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적 독립’이란 과제
과거ㆍ미래 역사가 교차하는 현재
인권ㆍ정의ㆍ성평등ㆍ민주주의…
철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 중요
박종홍이 1968년 8월 30일 서울대학교에서 퇴임식을 한 후 교정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박종홍은 서울대에서 23년 동안 후학을 가르쳤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선명히 기억하고 있을 국민교육헌장의 첫 구절이다. 1968년 12월 5일 선포된 이 헌장은 누가 만든 걸까.

광복 이후 가장 주목할 철학자로 꼽히는 박종홍이 국민교육헌장의 주역이었다. 이 헌장은 박종홍 등이 초안을 쓰고 대통령 박정희가 문안의 완성에 참여했다. 국민교육헌장은 광복 이후 최고의 철학자와 최강의 권력자가 함께 만든 공동 작품이었다.

20세기 후반 우리 인문학 분야에선 대표적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이 여럿 존재했다. 국문학의 조윤제·김윤식·조동일, 국사학의 이기백·김용섭·강만길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국가와 사회의 건설이라는 시대정신에 걸맞은 새로운 한국학을 펼쳐 보였다.

박종홍은 광복 이후 우리 사회를 대표한 철학자였다. 학문으로서의 한국철학의 기틀을 세웠고, 지식사회로서의 철학계를 이끌어 왔다. 철학자 소광희는 박종홍을 ‘한국철학 연구의 개척자’로 평가했다. 그러나 동시에 박종홍은 문제적 지식인이었다. 앞서 말했듯 국민교육헌장을 기초했고, 박정희 대통령 교육문화담당 특별보좌관을 맡았다. 이러한 그의 행적은 후학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상적 독립을 위한 철학

박종홍은 1903년 평남 평양에서 태어났다. 경성제국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광복 전에는 이화여전에서, 광복 후에는 서울대에서 가르쳤다. 1970년부터 대통령 교육문화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일했으며, 1976년 세상을 떠났다.

한국 지성사 100년에서 박종홍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한국사상사’였다. 이 저작은 ‘불교사상편’, ‘유교사상편’, ‘근대사상편’으로 이뤄져 있다. ‘불교사상편’은 생전에 출간됐지만, ‘유교사상편’과 ‘근대사상편’은 사후에 편집됐다. 1980년 형설출판사에서 나온 ‘박종홍전집’ 제4권 ‘한국사상사 1’은 ‘불교사상편’과 ‘유교사상편’을, 제5권 ‘한국사상사 2’는 ‘근대사상편’을 담고 있다. 1998년 민음사에서 증보판이 나왔다.

한국사상에 대한 박종홍의 생각이 집약된 것은 책의 맨 앞에 놓인 ‘한국사상 연구에 관한 서론적인 구상’이다. 그는 한국사상이 “하루아침에 그 어느 개인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 내진 것은 아니”며, “장구한 역사를 통하여 이 한반도에서 생을 영위한 우리 선조들이 두고두고 피와 땀으로 싸워 얻은 고귀한 체험의 발로”라고 주장한다.

주목할 것은 박종홍이 파악하는 한국사상의 흐름이다. 그는 불교사상의 경우 원효에서 의천을 거쳐 지눌에 이르는 변화를, 유교사상의 경우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성리학의 발전을, 그리고 근대사상의 경우 최한기의 과학사상과 천주학을 위시한 서양사상의 도입 및 영향을 특히 부각시킨다. 이 저작은, 비록 논문 모음집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한국사상의 전개에 대한 포괄적이면서도 심층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한국사상 탐구를 통해 박종홍이 겨냥한 것은 민족적 주체의식의 발견과 고양이다. ‘한국사상사 1’에 수록된 ‘한국의 철학’에서 그는 말한다.

“우리의 주체적 자각은 평등한 인간의 존엄성을 그의 성실성에서 찾았으며 그것은 다시 경세택민(經世澤民)에까지 구현되어 근대 과학의 섭취를 요구하는 데 이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자유 민주 사상도 실존주의도 과학 기술도 그것이 받아들여짐에 있어서는 민족적 주체성에 의하여 여과되면서 결합 통일되어 우리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 (…) 이때의 주체성이 곧 민족 정기다.”

민족적 주체의식의 발견과 고양이 목표로 삼은 것은 박종홍 자신이 강조한 바 있는 정치적·경제적 독립에 대응하는 ‘사상적 독립’이었다. 이런 박종홍의 사유는 광복 이후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갖고 있던 학문적 태도의 한 전형이었다. 철학자로서 박종홍은 ‘현실’에 대한 실존주의적이면서도 실용주의적인 접근을 중시했다. 그런데 이 접근은 ‘나’보다 ‘우리’를 우선시하는 국가주의를 내포하고 있었고, 이러한 사상의 연장선상에 바로 국민교육헌장이 놓여 있었다.

말년의 박종홍.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종홍 삶과 사상의 명암

소광희는 박종홍을 유가적 인품과 교양을 갖춘 철학자, 천성적인 애국자, 뛰어난 교육자였다고 평가한다. 동료와 제자들이 박종홍에 대한 추억을 모은 ‘스승의 길: 박종홍박사를 회상한다’를 보면, 그는 탁월한 교수이자 자상한 스승이었다. 유신정권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존경을 받아 왔다. 소광희는 말한다.

“박정희 정권의 교육문화 특보로 근무할 때 한국의 지성계는 그것을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한국의 대표적 지성이 독재정권을 비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로는 그는 참으로 유학적 애국자였고, 그래서 흔들림 없이 자기의 외로운 길을 거침없이 걸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박종홍 삶과 사상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쟁점은 박종홍 철학과 국민교육헌장의 상관성이었다. 철학자 홍윤기는 박종홍이 박정희 체제의 반공민주주의와 파시즘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했다고 비판한다.

“박종홍의 철학적 실천은 박정희가 추진한 산업적 근대화와 반공적 독재체제에 국민적 차원의 정신 개조 가능성을 보여준 데 그 핵심이 있다. 따라서 민족 중흥과 반공민주주의라는 요지로 압축되는 국민교육헌장은 박정희에게 민족적 대중적 총체적 동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시킴으로써 박정희의 단순한 군산복합 개발독재체제를 현대성 파시즘으로 발전시키는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박종홍의 철학에 바탕을 이룬 것은 ‘우리=국민=민족’의 논리다. 이 논리는 ‘나’보다 ‘우리’를 우선시해 개인보다 국가를 우위에 둔다. 독일과 일본의 후반산업화에서 볼 수 있듯, 국가를 중시하는 국가주의를 무조건 부정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국가주의의 그늘이다. 국가주의는 개인인 시민보다 공동체인 국가를 강조함으로써 결국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유신독재라는 억압적 감시체제는 우리 현대사에 존재한 국가주의의 대표적인 그늘이었다.

박종홍의 삶과 철학은 한국 지성사에서 지식인과 권력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철학자 엄정식이 평가하듯, 박종홍이 그 누구와도 비견하기 어려운 독보적인 ‘민족철학자’였음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철학자 김석수가 비판하듯, 박종홍은 현실을 도덕적으로 구현해내는 ‘도덕적 정치가’의 길이 아닌 현실의 부조리를 정당화하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도덕가’의 길을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종홍의 '한국사상사'.
철학의 미래

대학의 학문체계에서 철학은 신학과 함께 가장 오래된 분야다. 학문의 분과를 구성하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은 모두 철학에서 나왔다. 신학을 종교로 바꾸어 쓴다면, 종교와 철학은 학문의 출발을 이룬다.

철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의 학문이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소망스러운 삶인가, 그리고 이 삶을 영위하는 존재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만큼 우리 인간에게 중요한 질문은 없다. 이러한 인간과 삶의 ‘지혜(sophia)’를 사유함으로써 ‘사랑(philos)’하는 것이 ‘철학(philosophy)’인 셈이다.

철학의 다른 이름이 사상이다. 철학의 핵심이 인간의 사유에 있다면, 이 사유의 결과가 다름 아닌 사상이다. 서양에서 이뤄진 사유의 모험이 서양사상이라면, 한국에서 이뤄진 사유의 모험은 한국사상이다.

박종홍은 이 한반도에서 우리 한국인들이 품어온 한국사상을 연구했다. 돌아보면, 전통사회에서 한국인들은 불교와 유교를 받아들여 인간과 사회의 의미를 사유했고, 전통에서 근대로의 변동 과정에선 기독교는 물론 인문사회과학에서 실천적 마르크스주의에 이르는 서양 사상을 받아들여 인간과 사회의 존재 이유를 탐구했다.

철학이 중요한 까닭은 인간을 포함한 사회가 서 있는 자리와 갈 길에 대해 일러주기 때문이다. 독립, 산업화, 민주화를 향해 100년 동안 쉼 없이 걸어와 지금 여기에 서 있다면, 그러면 이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 걸까. 이 물음의 중핵을 이루는 것은 어떤 삶이 의미 있고 어떤 사회가 소망스러운가에 대한 질문이다.

지나간 역사와 새로운 역사가 교차하는 현재, 철학에 부여된 미래의 과제는 뭘까. 박종홍이 강조한 사상의 독립은 여전히 유효한 과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독립이 가야 할 방향 또한 중요하다. 그 방향이 지향할 가치는 무엇보다 인권, 정의, 민주주의, 그리고 성평등 및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김종철의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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