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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양안의 명칭 싸움

입력
2018.08.02 18:2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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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대만인 친구와 영화 이야기를 나누다 난처해진 적이 있다. 대만인 친구가 “대만 영화 ‘와호장룡’(2000)에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하자 중국인 친구 얼굴색이 확 변했다. 그는 “‘와호장룡’은 대만이 아닌 중국 영화”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중국 문화를 그린 영화이고 무엇보다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이유에서였다. 대만인 친구는 “리안 감독은 대만인이고, 대만은 중국과 별개”라고 맞섰다. ‘와호장룡’은 미국 중국 대만 홍콩 합작의 다국적 영화다.

▦ 중국 산시성의 중소 도시 핑야오는 지난해부터 ‘핑야오 와호장룡 국제영화제’를 열고 있다. 핑야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3,000년 고도. 하지만 ‘와호장룡’과는 무관하다. 중국 전통과 문화를 가장 잘 표현한 영화라는 판단에 ‘와호장룡’을 영화제 명칭에 넣었다. “‘와호장룡’은 우리 것”이라는 은근한, 소유권 주장으로 여겨진다. 영화뿐만 아니다. 리안 감독이 2013년 ‘라이프 오브 파이’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감독상을 수상했을 때 대만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당시 CNN은 국제적 고립 속에서 대만의 위상을 각인시킨 리안 감독의 수상에 대만 국민들이 감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국영 신화통신은 수상 보도를 하며 리안 감독을 중국계 미국인으로 지칭했다. 중국과 미국이라는 단어를 통해 대만이라는 존재를 지우려는 의도였다.

▦ 지난달 24일 동아시아올림픽위원회(EAOC)는 임시 이사회를 열어 내년 8월 대만 타이중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1회 동아시안 유스게임을 취소했다.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에는 ‘중화 타이베이’가 아닌 ‘대만’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하자는 대만 내 국민투표 운동이 올림픽 규정을 위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EAOC 위원장은 류펑 중국올림픽위원회 명예회장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며 대만 호칭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국 정부의 입김이 대회 취소에 강하게 작용했다.

▦ 대만인 친구는 얼굴 붉힌 대화가 끝난 뒤 다시 만난 자리에서 불쑥 “한국은 모두 다 가져서 좋겠다”고 했다. 경제 강국에다 국제사회에서 정상 국가로 인정 받는 한국이 부럽다는 말이었다.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와 돈독한 우방이었던 곳의 추락한 위상이 느껴졌다. 양안 사이에서 벌어지는 ‘명칭’ 싸움이 흥미롭기보다 씁쓸하기만 하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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