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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들만의 법원’ 아닌 ‘우리 모두의 법원’

입력
2018.08.0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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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주권은 특정인 혹은 특정기관의 전횡을 막기 위해 셋으로 갈라져 있다. 3권 분립 정신에 따라 입법권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에, 행정권 또한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에 위임돼 있다. 하지만 사법권은 시험에 의해 선발된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위임돼 있다. 국민의 위임을 받지 않은 법원에 사법권이 위임돼 있는 것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정신을 현 법관들이 온전히 구현하고 있다고 철저히 믿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들뿐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그동안 사법부는 성역으로 여겨져 왔고 판결은 신뢰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와 특정 법관 및 관계기관에 대한 불법사찰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이미 법원 자체 조사에 의해 일부 확인됐다. 사법부와 법관의 판결은 신뢰해야 한다는 신화는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사법부가 상고법원 설치라는 법원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사건에 대해 정권과 교감하고,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일선 판사들을 사찰하는 ‘셀프 사법농단’이 21세기에 벌어진 것이다. 어떠한 권력으로부터도 독립되어 공정하게 재판을 수행한다는 숭고한 사법권 독립이라는 이념을 사법부 스스로 훼손하고 무너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관 전원이 나서서 “사회 일각에서 대법원 판결에 마치 어떠한 의혹이라도 있는 양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하여 대법관들 모두가 재판의 독립에 관하여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데 견해가 일치되었다”고 너무도 당당히 결백을 주장했다. 그 당당함과 몰염치는 주권자인 국민들을 ‘대법원 판결을 받고자 하는 이기적인 존재들’로 치부하는 뒤틀린 선민 의식에서 나온 듯하다. “민중은 개, 돼지이다.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했던 전 교육부 관료의 발언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사법부가 ‘그들만의 법원’이 아닌 ‘우리 모두의 법원’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셀프 사법농단 사태를 초래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책임자들에 대한 형사재판을 현 법원 시스템에 맡겨선 안 된다. 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사법농단과 관련된 영장청구들을 모조리 ‘셀프 기각’하고 있다. 국회는 영장청구를 담당할 전담판사 선정과 심리를 담당할 재판부를 시민추천위원회 추천을 받은 법관이 담당하게 하고, 필요적으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토록 하는 ‘사법농단 책임자 형사절차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둘째로, 국회는 KTX 해고 승무원 복직 판결 등 법원행정처 문건에서 사법부의 ‘국정운영 협력사례’로 제시돼 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된 재판의 피해자 구제를 위해 별도의 증명 없이 재심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여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재판농단으로 인한 피해를 구제받도록 피해자구제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셋째로, 국회는 재판거래 및 불법사찰, 파일삭제 등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현직 법관들에 대해 하루 빨리 탄핵 소추를 발의해야 한다. 탄핵 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법원을 필두로 한 법원은 더 이상 현 상황에서 ‘사법부 독립’ 운운하며 소나기가 지나가길 기다려선 안 되고,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사법농단과 관련된 모든 문건을 공개하고, 사법농단 관련자에 대한 영장청구에 대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공정하게 심판해야 한다. 사법농단 관련자에 대한 징계도 엄중히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모두의 법원’이 되도록 하기 위해선 위와 같은 조치뿐 아니라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대법관 증원 등 보다 근본적인 개혁도 뒤따라야 한다.

염형국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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