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MLCC(적층세라믹콘덴서)는 머리카락 두께로, 최신 스마트폰에는 1,000여개가 들어간다. 삼성전기 제공

아침 눈 뜨자마자 들여다보는 최신형 휴대폰에 1,000개. 회사에 출근해 하루 종일 마주하는 PC에 1,200개. 저녁마다 집안을 소리로 채워주는 스마트TV에 2,000개… 전자제품은 물론 자동차에까지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부품이 있다. 모래알만큼 작은 크기지만, 전자산업의 ‘쌀’이자 ‘소금’이라 불리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다. 올해 초 일본에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4’와 닌텐도 ‘스위치’의 물량 부족 사태를 일으키기도 하고, 일부 완성차 및 전기차 업체가 생산 차질을 우려하게 만들기도 할 만큼, MLCC는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우리의 일상에 깊게 파고들어 있다.

MLCC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반도체 등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부품이다. 전류를 막아 저장하고 있다가 필요한 시점에 적절한 양을 내보낸다는 점에서 댐과 같은 역할을 하고, 전류에 포함된 노이즈(전압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요동치는 현상)를 제거해 전자제품의 수명이 오래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보안요원 역할을 맡기도 한다. 반도체와 전자회로가 있는 제품에는 대부분 사용되는데, 제어해야 하는 성능이 많고 전기를 많이 쓸수록 더 많은 MLCC가 필요해진다. 삼성 갤럭시S 초기 모델에는 200~300개 정도 필요했던 MLCC가, 최근 출시된 갤럭시S9 시리즈에는 기기 하나당 약 1,000개씩 들어간다.

MLCC(적층세라믹콘덴서)가 실제 반도체 위에 올라간 모습. 삼성전기 제공
MLCC는 전기를 층층이 저장하는 ‘무지개떡’

최소 0.4×0.2㎜ 크기로 머리카락 굵기에 불과한 MLCC 내부는 니켈과 세라믹이 무지개떡처럼 겹겹이 쌓여 있다. 흙을 원료로 해 전기가 통하지 않는 세라믹의 성질을 이용해 전기를 가둬둘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축전기라고도 불리는 ‘콘덴서’의 원리를 담고 있다.

콘덴서는 ‘두 전하의 부호가 같으면 밀어내고, 다르면 당긴다’는 전자력(電磁力) 원리에 따라 아주 적은 양의 전하를 저장할 수 있는 간단한 전기 부품이다. 전하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도체 전극(금속판)을 양쪽에 두고, 그 사이를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로 채운 형태가 기본 구조다.

콘덴서의 양쪽 금속판을 각각 플러스(+) 극과 마이너스(-) 극에 연결하면, 플러스 극에 연결된 도체에서는 전하가 빠져나가 플러스의 성질을 더 많이 띠게 되고 마이너스 극에 연결된 도체에는 전하가 몰려들어 마이너스의 성질을 더 많이 띠게 된다. 결국 양쪽 도체가 각각 플러스와 마이너스 성질을 띠면서 주변으로 전기장이 형성되고 전압이 생긴다. 두 도체 사이에 전기가 흐를 수 없기에 전기가 붙잡혀있는 것이다.

저장돼 있던 전기를 꺼내 쓰는 방법은 간단하다. 물이 가득 차 있는 컵과 빈 컵을 호스로 연결하면 두 컵의 물양이 같아질 때까지 물이 많은 쪽에서 없는 쪽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전압이 걸려 있는 콘덴서에 회로를 연결하면 마이너스를 띠고 있던 도체에서 전하가 빠져나와 플러스 도체 쪽으로 향한다. 저장돼 있던 전류가 흐르는 것이다. 두 도체의 전하량이 같아져 전압이 0이 되고 더 이상 전류가 흐르지 않는 상태는 ‘방전’이라고 한다.

다양한 종류의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삼성전기 제공
도자기를 굽듯 세밀한 기술 필요

세라믹으로 도체인 니켈 사이를 채운 MLCC는 이 기본 형태의 콘덴서를 수 백 겹 쌓아 올린 장치다. 층을 많이 쌓을수록 전기를 많이 축적할 수 있기 때문에, 얼마나 얇게 쌓아 작게 만들 수 있느냐가 기술의 핵심이다. 기술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초소형 고용량 MLCC 공급이 가능한 업체는 전 세계에 한국의 삼성전기와 일본의 무라타 등 서너 군데밖에 되지 않는다.

MLCC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급 소재 기술과 제조 기술이 필요하다. 먼저 뭉쳐지지 않는 세라믹 파우더를 걸쭉한 액체인 슬러리로 만들어 필름 위에 원하는 두께로 코팅한다. 이 위에 전극을 띠는 금속파우더를 인쇄하고, 이 시트를 수백 겹 겹쳐 올려 엄청난 압력으로 누른다. 각 세라믹과 니켈층이 서로 간섭 없이 균일하게 놓이는 게 관건이다. 머리카락 얇기로 납작해진 부품을 모래알 크기로 자르는 것까지가 첫 번째 공정이다.

품질을 좌우하는 또 다른 요소는 온도다. 섭씨 1,0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내야 하는데, 세라믹과 니켈이 구워지는 온도가 서로 달라 적절한 온도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또 겉보기에 파손이 없다 하더라도 내부에 아주 미세한 균열이라도 생기면 제 기능을 할 수 없어 정밀한 검사가 필수다. 업계 관계자는 “재료 혼합률이나 소성 과정 등 자세한 MLCC 제조 비법은 기업별로 다르며, 대부분 비밀”이라고 귀띔했다.

MLCC(적층세라믹콘덴서)로 와인잔을 가득 채우면 1억원이 훌쩍 넘는다. 삼성전기 제공
와인잔 채우면 ‘1억원’

MLCC는 전자 부품 중 가장 작은 크기로 모래알 크기지만, 300㎖ 와인 잔에 채우면 1억원 이상 가치를 지닐 정도로 고부가 제품이다. 최근 수요가 폭증해 지난해에만 30% 가까이 가격이 올랐으며, 올해도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MLCC 공급량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기는 MLCC 호황에 힘입어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낼 전망이다.

MLCC 시장은 앞으로 고사양 MLCC가 다량으로 필요한 자동차를 중심으로 성장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세계 MLCC 생산량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무라타는 최근 가전과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제품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장에서 벗어나 자동차 분야에 최대 1,000억엔(약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당 MLCC 1만2,000~1만5,000개가 들어가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개발이 가속화하면서, 전장용 MLCC 시장에서 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뜻이다. 증권가에서는 2020년까지 자동차용 MLCC 시장 성장률이 10%를 넘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주요 일본 MLCC 생산 업체들이 자동차 전장용으로 생산 비중을 늘리면서 IT용 MLCC 공급 부족은 더 심각해졌다. 모바일에서는 삼성, 애플 등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의 주도권 경쟁으로 폴더블 액정, 5세대(G) 통신 등 고사양 부품이 많이 필요해졌고, 사물인터넷(IoT)이나 자동차 전장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고사양 MLCC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제조사는 물론이고 화웨이 등 통신장비 제조업체, 도요타와 현대기아차 등 자동차 제조사까지 MLCC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현재 7조원 규모의 글로벌 MLCC 시장 규모는 향후 20조원 이상까지 확대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