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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세상 물건이 모두 똑같아 진다는 의미

입력
2018.08.02 18:2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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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의 현대 가구와 리빙 제품들을 둘러 본다는 목적으로 12일 동안 유럽의 세 도시를 다녀왔다. 고심 끝에 파리와 뮌헨, 런던을 목적지로 정하고 각각 나흘씩 체류했다. 그러나 상당히 어렵게 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가득 실망감이 차오르는데는 불과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세 도시는 분명한 색깔로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가구에 한정해 말한다면 놀랍게도 모두 똑같은 물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카시나, B&B, 카르텔, 비트라 등 몇 개의 글로벌 가구 회사들이 세 도시를 점령하고 있었다. 현지에서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다른 나라들도 별 차이가 없는 듯했다. 일부 상류층에는 엔틱 가구의 소비가 단단히 고정되어 있고, 중ㆍ상류층에는 위와 같은 몇몇 가구 회사들의 가구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이라는 좁은 나라에 사는 안목의 답답함을 풀어 보려 나선 길이 논현동이나 청담동 숍들의 가구들을 다시 보는 일정으로 변한 것이다. 소위 ‘세계화’ 현장을 목도한 셈인데, 가구를 만드는 목수 입장에서는 참혹하다고 말할 정도의 심정이었다.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차이점은 각 나라의 디스플레이 방식 정도였는데, 그것을 위해 12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9만 Km를 날아간다는 것은 목수에게는 상당히 허탈한 것이었다.

‘세상의 물건이 같아졌다’라는 사실은, 목수를 비롯한 공예가들에게 재앙과도 같다. 하지만 이 재앙이 단지 공예가들에게만 적용된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윈스턴 처칠은 1943년 10월, 폭격으로 폐허가 된 영국 의회의사당 재건축을 약속하며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라고 말한다. 건축가 승효상 역시 이 말을 인용하며 “나는 건축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고 믿는 자이다”라고 말한다. 목수인 나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라고 믿고 있다. 때문에 내게 세계가 사용하는 물건에 다양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각 문화권의 다양성이, 개인의 주체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징조로 읽히기에 충분했다.

파리의 패션 디자이너와 독일의 철학자, 영국의 변호사와 한국의 기업인이 모두 똑같이 장 프루베가 디자인하고 비트라사에서 판매하는 스탠더드 에스피(Standard SP) 의자에 앉아 카시나사의 LC6 테이블 위에서 작업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불편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일차적으로는 ‘공예’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예는 기본적으로 ‘일품(一品)’ 생산을 특징으로 한다. 공예품은 공예가와 주문자와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만들어진다. 공예가와 사용자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제작되기에, 또한 ‘물성(物性)’과 ‘수작업(手作業)’이라는 특성상 단 하나도 같은 물건이 나올 수 없다. 그 하나의 물건 속에 공예가가 수련한 시간과 취향, 사용자의 필요와 취향이 어우러진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취향과 안목에 기대 안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공예품이 유명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회사들의 물건보다 덜 기능적이거나 세련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20세기의 위대한 건축가 중 한 명인 ‘아돌프 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다시 나만의 벽 안에서 주인이 되고자 한다. 우리가 안목이 없다면, 좋다. 안목 없이 꾸밀 것이다.”

물건은 삶을 만든다. 모두가 똑같은 물건을 쓰는 세상은 아름답지 않을뿐더러 비민주적이기까지 하다. 유럽의 상점들을 돌아보며 나는 이제 한국사회가 유명 상점이나 백화점의 리빙관으로 들어서기 전 곳곳에 자리 잡은 공방의 작은 문을 노크하는 사회가 되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김윤관 김윤관목가구공방 대표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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