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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파라다이스, 낙원일까 실낙원일까

입력
2018.08.03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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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제공
문학동네 제공

호텔에서 바캉스를 즐긴다는 뜻의 유행어 ‘호캉스’가 어르신들 대화에도 오르내린다. 호텔이라는 비일상적인 호화로운 휴식 공간이 어느새 일상 속에 자리 잡은 모양이다. 호텔의 어원으로 알려진 라틴어 ‘호스피탈레(Hospitale)’가 ‘순례자를 위한 숙소’를 뜻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오늘의 그 쓰임새가 자못 흥미롭게 여겨진다.

소윤경 작가의 신작 그림책 ‘호텔 파라다이스’에는 대형 판형 그득히 그야말로 꿈인 듯 비일상적이고도 호화로운 호텔 이미지가 펼쳐진다. 꽃 덩굴 늘어진 호텔 리조트 수영장은 수영을 즐기거나 그저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거나 비치 파라솔 아래서 책 읽는 이들이 띄엄띄엄 한적한데, 표지의 위쪽 끝은 야자수 너머 모래 사막이다. 그 사막 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진한 핑크빛 홀로그램 압인(壓印)으로 후가공한 제목 ‘호텔 파라다이스’가 반짝인다.

반짝이는 것을 그저 스칠 수는 없다. 글자 하나 하나에 눈길을 멈춰 들여다본다. ‘호텔’이고도 ‘파라다이스-낙원-걱정이나 근심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이라니! 우리나라 곳곳에 동명의 호텔이 실재하는 덕분에 납작하게 눌렸던 이 조어의 양감을, 새삼 제 질량대로 감각하게 된다. 그렇게 머뭇거리며 표지를 열자 윌리엄 모리스 벽지를 연상케 하는 아르누보풍 패턴의 속지가 또 다른 화려함으로 눈을 덮친다. 이어지는 도입부 장면, 거대한 유리 벽을 사이에 둔 공항과 활주로 풍경, 비행기의 내부와 외부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면을 보면서는 슬며시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 이상의 이야기와 그림을 보게 될까? 과연 무엇을 더 보게 될까?

부모와 남동생과 함께 가족 여행을 떠나온 주인공 소녀는 고대 유적지 한편에 건설된 호텔로 입성한다. 핑크색이 인상적인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무슬림 예술의 손꼽히는 건축물 타지마할, 그 둘을 합친 듯한 호텔 파라다이스의 환상적인 전경은 앞서의 걱정을 가볍게 뒤집으며 풍성한 이미지를 계속 펼쳐낸다. 호텔 외관 못지않게 웅장한 로비, 캐노피 침대와 파스텔톤 카우치 소파가 놓인 고전적 분위기의 전망 좋은 객실, 풍성한 만찬과 신비롭고 우아한 전통 춤 공연, 쾌적하고 깨끗한 수영장 장면은 소녀가 첫 장면에서 얘기한 바 ‘커다란 선물 상자’ 같은 여행의 뚜껑을 천천히 열어 보여준다. 원주민 여성들의 마사지 서비스며 면세점 쇼핑을 즐기는 엄마, 시뮬레이션 게임에 마음껏 빠져보는 아이들, 카지노 슬롯머신에 붙박인 아빠… 일가족은 안전하고 안락한 인공 낙원 곳곳으로 흩어져 각자의 취향대로 선물을 즐기며 호텔을 소비한다.

소윤경의 전작 대형 그림책 ‘레스토랑 Sal’과 ‘콤비’를 누렸던 독자들은 이쯤에서 색다른 선물이 등장하리라 짐작한다. 작가는 예민하고 호기심 많은 주인공 소녀를 낙원의 경계 지대로 내보낸다. 사막으로 열린 호텔의 뒤뜰에서 목마른 소년과 할아버지와 낙타 나그네들에게 물을 건네고 선물 받은 커다란 유리구슬, 그것은 소년의 목소리와 함께 원래의 낙원과 이후의 실낙원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지금의 인공낙원이 훼손한 삶과 참 낙원의 복원을 각성하고 촉구한다.

우여곡절 끝에 모래 위 호화로운 누각이 사라진 듯 사막에 내던져진 일가족이 지나가던 버스에 구조되어 여행을 이어간다는 결말은 첫 장면의 분위기와 자못 다르다. 작가는 인공 낙원의 쾌적한 공간과 전혀 다른 세상인 만원 버스, 그 땀 냄새와 모래 먼지투성이 현지인들 사이에 흩어져 앉은 가족들을 보여준다.

호텔 파라다이스

소윤경 지음

문학동네 발행∙64쪽∙1만8,000원

꼬박 3년을 작업했다는 이 그림책 장면 장면은 네팔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를 두루 여행한 작가의 경험 및 작업 전후의 구상과 인쇄에 든 공력과는 별도로 수천 수억 번의 펜 드로잉이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귀하게 소장하여 거듭 펼치고 펼치면서, 인류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떠올리거나 고갱 명화의 배경이자 유럽인들이 ‘지상의 낙원’으로 일컬었던 타히티를 새로이 경험하거나 헤르만 헤세가 ’유리알 유희’에서 그린 유토피아 카스탈리엔까지 떠올리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무엇보다 버스 전면 창의 백미러에 매달린 ‘사랑과 구원의 신 크리슈나’의 가호와 함께 작가가 건네는 인사를 잘 챙겨두자. “나마스테-당신 안의 신에게 절합니다!”

이상희 시인∙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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