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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남북 철도연결 ②

입력
2018.08.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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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철도연결의 꽃은 경의선이다. 경의선(서울-신의주 497㎞)은 한반도의 정치 경제 중심지역을 관통하는데다, 경부선(서울-부산 451㎞)을 경유하여 일본열도, 안봉선(安東-奉天 260㎞)을 통과하여 유라시아대륙과 접속한다. 1900년 전후 한반도에서 세력을 다툰 제국주의 열강은 지정학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경의선에 눈독을 들였다. 당시 철도는 열강의 세력범위를 결정하는 열쇠였다.

먼저 프랑스가 1896년 7월 경의선의 건설권과 운영권을 차지했다. 프랑스는 미국이 1896년 3월 경인선(서울-인천 31㎞) 이권을 확보한 사례를 들먹이며 한국정부를 압박했다. 마침 고종은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이 두려워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했다. 프랑스와 러시아는 비밀동맹을 맺고, 영국이 경봉선(北京-奉天 842㎞)을 통해 만주, 독일이 교제선(靑島-濟南 469㎞)을 통해 산동으로 진출하는 것을 견제했다. 러시아는 만주를 관통하는 동청철도(滿洲里-綏芬河 1,481㎞, 하얼삔-旅順 大連 943㎞)를 건설하며 세력을 넓혔다. 경의선은 동청철도의 연장선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가 계약기간 3년이 지나도록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자 경의선 이권은 1899년 6월 23일 한국정부에 반환되었다. 이에 부산 출신 박기종(朴琪淙) 등 관민 유지는 1899년 3월 대한철도회사를 설립하고 농상공부에 경의선 이권을 달라고 청원했다. 골자는 5년 이내 기공, 기공 후 15년 이내 완공이었다. 한국정부는 식산흥업의 일환으로 철도자력건설을 표방했으므로, 경의선을 절대 외국에 매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청원을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대한철도회사는 자본을 조달하지 못해 공사에 착수할 수 없었다. 열강은 다시 경의선을 노렸다. 한국정부는 철도이권을 수호하라는 여론을 의식해, 1900년 9월 궁내부 내장원에 서북철도국(西北鐵道局, 총재 李容翊)을 설치하고, 3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1년에 1마일의 협궤라도 스스로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그리고 1901년 7월 서울-개성 노선을 측량하고, 1902년 3월 서대문 밖에서 각국 주한 외교사절을 초청해 성대하게 기공식을 거행했다.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에서 러시아와 맞서는데 경의선이 군사 경제의 긴급 긴요한 도구라 여기고 공략에 나섰다. 일본은 1902년 10월 2일 각의에서, 건설 중인 경부선과 경의선을 연결하여 한국전체를 자신의 세력범위로 귀일시키고, 경의선을 만주로 연장하여 러시아의 동청철도 및 청의 우장철도(牛莊鐵道)와 연통시켜 동북아 간선철도를 모두 장악하겠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그리고 자금조달에 실패한 대한철도회사에 차관의 굴레를 씌워 경의선 이권을 빼앗고, 자력건설을 추진하는 이용익을 정계에서 추방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일본의 차관공세에 휘말린 대한철도회사는 한국 황실과 관계에 로비를 벌여 1903년 7월 13일 서울-평양 철도건설을 전담한다는 칙령을 받아냈다. 이에 서북철도국은 경의선을 감독하는 허수아비 관청으로 밀려났다. 일본은 1903년 9월 8일 대한철도회사와 차관계약을 맺고, 2,500만원을 지원하는 대신 경의선 이권을 독점했다.

러시아는 일본의 책동에 대항했다. 러시아는 한국에서 군사를 제외한 일본의 우세한 권리를 인정하지만, 북위 39도선(평양) 이북은 중립지대이고, 만주 및 그 연안은 일본의 이익범위 밖이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일본의 경의선 장악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일본은 날선 교섭을 벌였지만 결국 파탄으로 끝나 전쟁에 돌입했다. 일본은 선전포고에 앞서 1903년 12월 28일 경부철도주식회사에 경부선을 1년 안에 완공하라는 칙령을 내리고, 1904년 2월 6일 경의선을 군용철도로 직접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두 철도는 전투함 1척 구입이나 1개 사단 증설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밝혔다.

경의선은 결국 일본이 한국의 자력건설을 짓밟고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태어났다. 그 내력을 감안하면 경의선의 남북연결은 실로 가상하다. 그렇지만 경의선이 진정으로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국제간선으로 재탄생하려면, 남북한이 아픈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 ‘우리끼리’라는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 관련 국가의 동참과 협력을 이끌어내는데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경의선의 건설과정도 많은 가르침을 주기 때문에 한 번 더 살펴보겠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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