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부자 증세’를 통해 저소득층을 지원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로빈 후드의 선행’ 같은 이런 얘기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깜찍한 거짓말에 가깝다. 조세를 통한 소득재분배 과정을 거쳐 막대한 사회복지 예산과 각종 저소득층 지원에 필요한 조세 부담을 주로 짊어지는 건 소수의 부자들이 아니다. 별로 넉넉하지 않아도 열심히 사는 다수의 ‘중산층’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정부의 ‘선심’이 떠넘긴 부담을 짊어지는 게 현실이다.

▦ 간단한 조세 통계만 봐도 사실은 명확해진다. 2016년 국내 근로소득자는 총 1,774만 명이다. 그 중 약 47%, 830만 명 정도는 아예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결국 930만 명이 세금을 내는데, 그 중 과세표준으로 쳐서 연소득 1억5,000만 원 넘게 버는 부자는 0.95%인 8만8,000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근소세의 대부분은 연소득이 5,000만~1억5,000만 원 이하인 920만 명 정도의 세금 내는 중산층이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에도 현행 세제 상 중산층(연간 총급여 6,500만 원 이상)은 각종 세제나 복지 혜택에서 거의 배제된다.

▦ 그래도 중산층 소득이 계속 늘어나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2006년부터 10년 간 국내 근로자 연봉이 21% 오르는 동안 근소세만 71% 급증했다. 여기에 물가와 사회보험료 상승 등의 부담까지 증가하면서 중산층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정체됐다. 그런 가운데 세제 및 복지혜택으로 저소득층 가처분소득은 계속 늘어나다 보니, 결국 중산층 가처분소득이 점점 저소득층과 비슷해지는 소득의 하향 평준화가 진행되게 된다.

▦ 오바마 재임 시절 미국 중산층은 소득 정체 속에 복지 증세까지 감당하면서 소득 하향 평준화를 우리보다 먼저 겪었다. 2013년 미국에서 가장 소득이 낮은 20%의 소득 비중은 전체 소득의 2.2%에 불과했지만, 각종 복지지원을 적용한 가처분소득 비중은 전체의 12.9%로 6배나 급등했다. 반면 중산층(소득하위 40~60%)은 혜택에서 배제돼 애초 소득 비중(12.6%)이나 가처분소득 비중(15.4%)이 별 차이가 없었다.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이 가처분소득으로 치면 별 차이가 없게 된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얼마 전 소득 하향 평준화에 대한 중산층의 분노가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을 도왔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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