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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폭염과 환경권

입력
2018.07.3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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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을 기준으로 폭염 일수가 14.7일을 넘어섰다. 역대 최고가 1994년 17.6일이지만, 올해는 최대 40일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온열 질환자가 2,000명에 육박하고 사망자는 18명에 이르며 가축도 234만마리가 폐사했다. 폭염은 ‘침묵의 살인자’가 되어 지구의 온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2050년까지 발생 빈도가 지금의 5배에 이른다니 폭염은 감기처럼 달고 살아야 할 불편한 자연현상이 되는 듯하다.

지구 온도는 자연변동과 온난화에 의해 좌우되지만, 최근에는 후자의 가속화가 전자에 의한 온도 상승 폭을 넘어서고 있다. 온난화가 온실가스의 과다 배출로 인한 것이라면, 최근 폭염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대기오염과 같은 환경오염의 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종전의 환경오염과 차이가 있다면 온실가스로 인한 대기오염이 2차 반응을 거쳐 더 악화하고, 광역화한 정도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인위적 수단으로 쉽게 통제할 수 없는 행성적 스케일로 확장되면서 폭염은 자연현상처럼 되었다.

이 점에서 폭염을 자연재난으로만 규정하는 것이 옳은 =지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비슷한 예가 고농도 미세먼지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고농도 미세먼지를 황사처럼 자연재해로 규정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미세먼지는 심화하고 확장된, 그러면서 악화한 대기오염의 한 변형태일 뿐이다. 온난화에 의한 폭염도 마찬가지다. 광범위한 지역의 모든 생명체에 위험과 위해가 가해지기 때문에 전 사회적인 긴급대응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폭염을 자연재해로 규정하는 것은 정책적으론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온난화로 인한 폭염의 발생 빈도가 잦아지면 재난대응체제로만 대처할 수 없다.

우선, 지구 평균온도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온실가스 감축을 전 지구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구환경 보전은 이제 인류의 보편적 책임이자 의무로 접근돼야 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폭염이란 환경악화로부터 누구나 차별없이 건강한 생명적 삶을 살 수 있는 권리가 보호되고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이 언명이 함의하는 바는, 재난으로 규정해 특정 피해집단을 한시적으로 구제하는 임시방편적 접근이 아니라 헌법상 환경권 보호 차원으로 폭염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헌법 제35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2항은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환경재난으로서 폭염의 위해가 모든 사람에게 획일적으로 끼치는 것 같지만, 실은 사회 취약층에게 상대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폭염이란 환경위해에 대처할 수 있는, 즉 쾌적한 환경에 생활할 수 있는 역량과 자원의 불평등한 배분이 특정계층으로 생명적 피해를 집중시킨다. 이 불평등한 배분은 시장과 정책을 통해 동시에 이뤄지고 있고, 피해집단은 환경적으로 부당한 차별과 불평등을 겪는 환경 약자다. 폭염에 따른 사망 위험은 가난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8% 높다는 서울대 연구팀의 연구는 이를 극명히 보여 준다. 1995년 시카고 폭염에서도 폭염에 갇히게 한 ‘취약층의 사회적 고립’이 7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주된 원인으로 밝혀졌다.

오염으로 인해 환경은 편익보다 비용을 더 많이 발생시키고 있는 게 ‘인류세(人類世) 시대’ 환경문제의 특징이다. 온난화에 의한 폭염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시대 누구나 쾌적한 환경에서 생명적 삶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을 보장하는 환경권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이는 환경적으로 정의로운 삶을 사는 ‘환경정의(環境正義)에 관한 권리’이기도 하다. 폭염으로부터 스스로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받을 수 있는 기회, 자원, 제도에 대한 공평한 접근의 보장은 환경정의를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조명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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