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용현동 라곰 하우스

인천 라곰하우스는 여행과 커피, 그리고 카페를 사랑한 한 부부가 1976년에 지어진 집을 리모델링해 지은 집이다. 텍스처 온 텍스처 제공.

커피 향기로 가득한 카페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순간, 우리는 누구나 카페 같은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원한 것이 그런 집이 아니라 그런 시간임을 깨달은 뒤에도 그 바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카페 같은 집이 우리의 비속한 삶을 커피 향기로 채워줄 수도 있을 테니까. 인천시 남구 ‘라곰 하우스’는 여행과 커피, 그리고 카페를 사랑한 한 부부의 집이다. 아궁이 자리까지 남아 있는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하면서 그들이 요구한 것은 “집 같지 않은 집”이었다.

“카페와 집은 엄연히 다르다”
옛집에서 안방이었던 곳을 주방으로 바꾸고 한가운데 카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싱크대를 놓았다. 텍스처 온 텍스처 제공
TV는 거실에서 떼어내 다다미 방에 두었다. 다실 겸 게스트룸으로 쓰이는 곳이다. 텍스처 온 텍스처 제공

집 같지 않은 집이란 뭘까. 노란 장판과 장롱으로 대변되는 일상의 냄새는 누군가에겐 반가운 약속이지만 누군가에겐 권태로운 기약이다. 일상의 권태를 벗어나 이색적인 공간을 원했던 건축주 부부가 가장 많은 영감을 받은 곳은 다름아닌 카페다.

“한국이나 일본의 카페를 보면 디자인적인 면에서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런 곳을 다니다 보니 자꾸 공간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결국 아파트, 오피스텔 생활을 청산하고 내 집을 짓기로 했습니다.”

부부가 찾아낸 집은 인천시 남구, 오래된 주택이 밀집한 용현동 골목의 다락 딸린 단층주택이다. 1976년에 지어진, 남쪽에 큰 안방이 있고 북쪽에 좁은 부엌이 자리한 전형적인 옛 주택이었다. 건축주는 집 안에 있는 벽을 모두 터서 오픈형 스튜디오 주택으로 리모델링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현장을 찾은 남혜영 스튜디오 오브릭 소장은 “완전히 반전이었다”고 말했다.

“겉보기엔 괜찮았는데 뜯어보니 너무 낡고 상태가 안 좋았어요. 연와조(붉은 벽돌을 쌓아 올려 벽을 만드는 구조)주택이라 벽을 함부로 허물 수도 없었고요. 마루를 철거하고 나니 그 밑에 깊이 1m가 넘는 빈 공간이 나오더군요. 옛집 마루 아래에는 통상 50㎝ 정도의 빈 공간이 있긴 하지만 여긴 아찔할 정도였어요.”

공사 당시의 모습. 마룻바닥을 걷어내니 1.2m 높이의 빈 공간이 나왔다. 스튜디오 오브릭 제공

구조상 탁 트인 공간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건축가는 역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철거할 수 없는 벽 안에 “일상에 필요한 공간을 전부 밀어 넣기로” 한 것. 그 자신도 스튜디오형 주택에서 산 적이 있는 남 소장은 “카페와 집은 엄연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요즘 이런 스튜디오형 주택을 원하는 젊은 부부들이 많은데 그 분들에게 반드시 이해시켜야 하는 게 집과 카페의 차이에요. 카페는 사는 곳이 아니지만 집은 사는 곳이거든요. 세탁기, 수납장, 옷장, 신발장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넣는 공간이 꼭 확보돼야 해요.”

건축가는 허물 수 없는 벽을 기준으로 집을 둘로 나눴다. 한쪽은 카페, 한쪽은 생활공간인 셈이다. 생활공간 안에는 수납장을 빽빽하게 짜 넣고 세탁실, 화장실, 파우더룸, 욕실, 창고를 빈틈없이 배치했다. 바깥엔 벽과 같은 흰색의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문만 닫으면 벽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외부인은 볼 수 없는 집 주인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자 “현실의 자질구레함”을 수납하는 공간이다.

현관에 들어서면 보이는 문(왼쪽 사진)을 열면 주인만 사용하는 사적인 공간(오른쪽 사진)이 나온다. 신발장, 옷장, 세탁기, 화장실까지 빈틈없이 배치한 생활 전용 공간이다. 텍스처 온 텍스처 제공
안방은 주방으로, 주방은 안방으로

리모델링 과정에서 안방과 부엌의 위치도 바뀌었다. 남쪽의 넓은 안방은 주방이 되고, 북쪽의 좁은 부엌은 침대만 쏙 들어간 아담한 침실이 됐다. “옛날엔 안방이 집의 중심이었잖아요.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 장소였고요. 지금은 1,2인가구가 늘면서 안방은 잠만 자는 공간으로 용도가 바뀌었어요. 대신 주방이 집의 중심이 됐죠.”

주방 한가운데에는 카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멋진 싱크대가 놓였다. 자연스런 색감의 목재에 스테인리스 상판을 놓은 것으로, “벽보고 설거지하고 싶지 않다”는 건축주 부부의 바람을 따라 특별히 제작한 것이다.

등을 보이며 설거지하고 싶지 않다는 부부의 바람에 따라 싱크대를 특별히 맞춤 제작했다. 텍스처 온 텍스처 제공

주방과 거실 사이에는 단차를 뒀다. 건축가는 마루 밑 공간을 메우는 대신 이를 디자인 요소로 끌어 들여 계단식 공간을 구성했다. “평면상으론 주방과 거실이 하나로 트여 있지만 실제로는 단차를 둬서 구분하는 게 공간이 더 풍성해질 것 같았어요. 오르내릴 수도 있고 걸터앉을 수도 있고요. 거실 높이를 그대로 살려 층고도 50㎝ 가량 더 얻을 수 있었습니다.”

카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거실에서 TV도 떼어냈다. 떼어낸 TV는 다다미가 깔린 다실로 옮겨졌다. 건축주 부부가 일본으로 여행을 갔을 때 다다미 방에서 차를 마셨던 경험을 살려 만든 방이다. 다실에는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손님이 왔을 때 묵어 갈 수 있게 했다. 부부의 짐 중에서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했던 책은 3평짜리 다락을 미니 서재로 만들어 해결했다.

부엌이었던 곳을 침대만 쏙 들어가는 아담한 침실로 개조했다. 텍스처 온 텍스처 제공
3평짜리 다락은 미니 서재로 탈바꿈했다. 텍스처 온 텍스처 제공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카페 같은 집을 완성하는 건 집주인의 부지런함이다. 지난해 10월 입주한 이후 근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집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물론 두 사람만 사는 집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집 이름인 ‘라곰’은 스웨덴어로 ‘적당한’, ‘충분한’ 이란 의미로, 소박하고 균형 잡힌 삶의 경향을 뜻한다. 건축주는 카페 같은 집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기 집을 짓고 싶은 사람들 중 카페에서 영감을 받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카페에서 본 이미지들을 실제 집으로 옮겨올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그게 바로 생활입니다. 거긴 생활이 없으니 짐이 필요 없고, 그래서 수납 공간이 필요 없죠.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생활의 요소를 떼어놓을 수 없는 만큼,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적당히 조율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시멘트 담장 대신 모던한 외관에 어울리는 철망으로 담장을 둘렀다. 텍스처 온 텍스처 제공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이프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