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민건강 수호 약사궐기대회'. 약사들은 폭염 속에 정부의 편의점 약품 판매 확대 정책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쳤다. 연합뉴스

“4년간 40차례나 규제개혁을 건의했는데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다. 천 번 만 번 얘기해도 지치지 않을 만큼 절박하다.”(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과거 15, 20년 동안 규제개혁을 외쳤는데, 왜 안 되는 겁니까.”(문재인 대통령)

규제가 또 다시 공공의 적으로 떠올랐다. 과도한 규제가 신사업을 가로막고 일자리 창출도 어렵게 한다는 재계의 단골 레퍼토리뿐이 아니다. 대통령은 정부 부처에 규제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며 예정된 회의까지 취소하는 압박을 가했다. 누구 하나 규제개혁이 틀렸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 뽑기, 박근혜 정부의 액티브X 철폐가 여전히 기억날 만큼 그 때도 규제개혁은 요란한 이슈였다. 까짓 규제 과감하게 풀면 될 것을 그것 하나 못 하냐는 한편의 비아냥도 그대로다.

김동연 부총리는 지난 2월 재계 대표들과의 첫 대면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상비약을 슈퍼에서 왜 못 팔게 할까요.’ ‘의사 간호사 수는 왜 늘리기 어려울까요.’ ‘카풀 앱은 왜 출퇴근 시간 외엔 못쓰는 걸까요.’

모두 이런저런 규제에 막혀 진전이 없는 일들이다. 김 부총리는 이런 설명을 더했다. “모든 규제는 필연적으로 ‘보상 체계’를 만든다. 그 규제로 이득을 보는 기득권층이 생기고, 규제 변화로 그 이익이 박탈되는 이들은 극렬하게 저항한다”고 말이다.

일반 국민에겐 편리하기만 할 것 같은 상비약 슈퍼 판매를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요즘 거리로 나선 약사들이다. 이들은 슈퍼에서까지 상비약을 팔면 무분별한 약 남용으로 국민의 건강권이 위협 받을 거라 주장한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건 그로 인해 줄어들 약국의 수입이다. 마찬가지로 의사 간호사 수 증원은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의사, 간호사와 병원들이 반대한다. 카풀 앱 확대는 택시업계가 들고 일어선다.

이런 대결 구도는 일부 이익집단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다. 모두가 바라는 청년실업 해결에도 규제는 걸려 있다. 청년에게 새로 일자리를 주려면 누군가는 비켜줘야 한다. 경기가 초호황이어서, 신산업이 폭발해서가 아니라면 기업이 무한정 고용을 늘릴 순 없다. 어느 정도는 고용주에게 적용되는 해고 관련 규제를 풀어줘야 틈이 생긴다. 하지만 노조까지 갈 것도 없다. 고용 안정을 위협할 규제 완화는 절대 안 될 일이란 목소리가 벌써 선하다.

우리나라의 전기값은 세계적으로 저렴한 편이라 한다. 공기업(한전)이 전력공급을 맡고 있어 시장 원리대로 가격을 올리지 못한 덕이 크다. 일종의 가격 규제다. 이로 인한 전기 남용, 얌체 사용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 그런데 정부가 어느 날 전기 가격 규제를 풀겠다고 나서면 또 난리가 날 것이다. 규제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원체 많아서다.

국민 다수가 원칙에 찬성하는 탈원전에도 규제는 걸림돌이다. 탈원전이 성공하려면 곳곳에 친환경 전력 생산 시설, 그 전기를 모아 옮길 변전ㆍ변압ㆍ송전 시설이 필수다. 이런 시설을 주민 동의 없이 짓기 어렵게 하는 것도 결국 일종의 규제다. 탈원전은 좋지만 내 주변에 그런 시설은 안 된다는 사람들이 규제 수호를 위해 머리띠를 두르고 나선다.

김동연 부총리는 규제 개혁을 위한 참고점으로 이런 해외사례를 들었다. “호주나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우버 기사들이 손님을 태울 때마다 지역 택시 기사들을 위해 1달러씩을 모은다고 한다.” 규제 완화로 얻는 이익, 그로 인한 손해를 양쪽이 조금씩 분담하는 게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미다.

누군가에게 뭘 풀어주자는 얘기는, 돌고 돌아 내가 가진 것의 일부를 내주자는 얘기와 같다. 그게 세금이든, 월급이든, 정년이든. 좋게 말하면 양보고 거칠게 말하면 손해다. 규제 완화를 얘기하기에 앞서 각자가 서로에게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양보할 준비 되셨습니까.

김용식 산업부 차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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