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씨방 녹고 수박 속 짓물러
사과 껍질 타고 고추는 시들시들
밭떼기 계약 중간상인 매입 포기 속출
경북 영주시 순흥면 농민 김창동 씨가 폭염으로 속이 썩은 복숭아를 내보이고 있다.

“복숭아 농사 20년에 이런 폭염피해는 처음입니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서 20년간 복숭아농사를 지었다는 김창동(67)씨. 지난 28일 오후 4시30분쯤 자신의 농장에서 기자를 맞은 그는 대뜸 썩은 복숭아를 주워 들어 보이더니 이렇게 한숨을 쉬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법도 한 시간이었지만 따가운 햇살은 여전했고, 땅바닥에서는 열기가 후끈거렸다. 기자의 이마에도 금세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6,000㎡의 밭에 복숭아를 재배하는 김씨는 “며칠 전부터 갑자기 복숭아 씨방이 썩으며 희멀건 물이 차더니 떨어지기 시작했다”며 “아무리 더워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가리키는 복숭아 봉지 속에는 정작 복숭아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김씨는 “복숭아는 꼭지가 민감한데, 이런 폭염에 견디겠나. 줄잡아 30~40%는 떨어졌다”고 했다. 떨어진 복숭아를 집어 들어 반으로 쪼개니 씨방이 비어있다. “이제 15일 정도면 수확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얼마나 남아 있을지 걱정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같은 피해를 보상해 줄 농작물 재해보험이 있지만, 폭염피해를 복숭아에 적용해줄지도 걱정이다. 우팔용 순흥면장은 “농촌진흥청과 농협중앙회 농작물 피해담당자가 최근 현지를 방문해 조사했지만 영양부족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발생했을 수 있다는 말에 농민들이 크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 영주시 단산면 최면기 씨가 햇빛에 타 변색된 사과를 내보이고 있다.

순흥면과 인근 단산면 단곡리 최면기(62)씨의 사과밭도 사정은 비슷했다. 퇴직공무원으로 사과농사 3년차인 최씨는 “묘목을 심어 올해 첫 수확인데 날벼락을 맞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나무에 달린 사과 상당수가 뜨거운 햇볕에 껍질부분이 짓무르는 일소현상으로 정상적인 수확이 어렵게 됐다. “날마다 알이 굵어지는 즐거움에 힘든 줄도 몰랐는데 며칠 폭염에 이 모양이 됐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수박은 더하다. 상당수 수박밭은 속이 물러 폐기했다. 남은 수박도 당도가 떨어져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김학동 예천군수가 지난 28일 감천면 수박밭을 방문했을 때 한 농민은 “밭떼기로 계약한 중간상인이 남은 수박도 매입을 포기하는 바람에 고스란히 손해로 남게 됐다”고 울상을 지었다.

폭염피해와 거리가 멀 것만 같던 인삼도 잎이 마르고 성장을 멈추는 휴면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농민들이 긴장하고 있다.

김학동(왼쪽) 예천군수가 폭염피해로 수박농사를 망친 농민을 만나 위로 하고 있다. 예천군 제공

경북도에 따르면 30일 현재 고추 53.6㏊를 비롯해 포도 사과 복숭아 등 밭작물 199㏊의 폭염피해가 접수됐다. 안동 124㏊, 상주 34.9㏊, 영주 16㏊ 등으로 보고됐으나 현장조사가 끝나면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고추는 시들고, 포도는 잎이 타버려 알이 제대로 굵지 않는 등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가축 피해도 잇따라 지난 29일 현재 닭 오리 등 가금류 32만9,331마리와 돼지 2,983마리가 폐사했다.

도는 폭염피해예방 예비비 15억원과 폭염대책 재난안전특별교부금 6억9,000만원을 확보하고 상황관리 TF팀을 운영하는 등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글 사진 이용호기자 ly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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