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노동운동사의 획을 그은 1919년 위니펙 총파업(사진). 저들은 한 해 전 캐나다 최초 총파업인 밴쿠버 총파업을 경험했다. searcharchives.vancouver.ca

1919년 위니펙(Winnipeg) 총파업(5.15~6.25)은 캐나다 노동운동 역사상 가장 유명한 노동쟁의로 기억된다. 캐나다 산업자본은 1차 대전 전쟁 특수로 눈부신 호황을 누렸지만 노동자들의 처우는 열악했다. 전쟁 중 유입된 이민자와 전후 귀향 군인 등 풍부한 노동력이 그들의 헐값 임금구조를 떠받치는 데 일조했다. 군인들과 함께 건너온 치명적인 스페인 독감까지 겹쳐 힘겨운 겨울을 난 직후였고, 러시아 혁명(1917)과 사회주의 이념이 북미 노동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때였다.

하지만 캐나다 최초의 총파업은 한 해 전인 1918년 8월 2일 광산ㆍ제련 노동자를 주축으로 단 하루 동안 전개된 ‘밴쿠버 총파업’이었다. 핵심 이슈는 노동자 처우 개선이 아닌 노동운동가 앨버트 굿윈(Albert Goodwin, 1887~1918)의 죽음에 대한 분노와 항의였다.

붉은 머리 색 때문에 ‘Ginger(생강)’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탄광노동자 굿윈은 잉글랜드 요크셔에서 태어나 19세에 캐나다로 건너왔다. 노바스코샤, 브리티시컬럼비아 등지를 떠돌며 광부로 일하던 그는 위험하고 열악한 광산 노동환경에 분노, ‘독학’으로 노동운동을 익히며 자잘한 분쟁을 조직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20대 중반 캐나다 공산당에 입당하며 날개를 달았고, 이런저런 조합과 상위단체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는 등 본격적인 노동운동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굿윈은 인터내셔널 국제주의와 평화주의의 소신으로 노동자 참전에 반대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다. 그것과 무관하게 그는 징병 신체검사에서 진폐 증상과 치아 질환으로 징집 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1917년 당국은 돌연 그의 징병 영장을 발급했다. ‘빨갱이 선동가’를 제압하기 위한 방편인 셈이었다. 그는 도피를 시작했고, 7월 27일 컴벌랜드(Cumberland)의 산속에서 댄 캠벨(Dan Campbell)이라는 경찰 출신 ‘징병 기피자 사냥꾼’에 의해 살해당했다. 법원은 캠벨의 정당방위 주장을 인정했다.

캐나다 노동운동사에서 굿윈은 한국의 전태일과 유사한 위상의 상징적 존재다. 컴벌랜드의 그의 무덤에는 연중 꽃이 놓이고, 시민들은 도시를 관통하는 밴쿠버 아일랜드 19번 고속도로를 ‘진저 굿윈 도로’라 부른다. 최윤필 기자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