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파리지앵이 없으면 바캉스”란 말이 있다. 실제 프랑스에서 매년 7~8월 바캉스 기간에는 정상 업무가 거의 불가능하다. 관공서와 기업체 직원들은 대부분 장기간 자리를 비우고, 동네 상가나 개인병원도 한 달 또는 그 이상 문을 닫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자리를 지키던 지하철 노숙자들도 일터(?)를 떠났는지 찾아보기 힘들다.

프랑스의 여름 바캉스는 매년 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바칼로레아’가 끝나는 6월 말에 시작해 9월 초에 끝난다. 이 시기 파리는 하루가 다르게 인파가 줄어들고, 출퇴근길 교통체증이 사라지고, 빼곡했던 도심 주차장도 한산해진다. 반면 프랑스 남쪽 지중해변 휴양지로 향하는 A6고속도로(일명 ‘태양의 고속도로’)는 한국의 귀성길 같은 정체가 연일 계속된다. 특히 7월 14일 프랑스혁명일의 ‘대출발(그랑데빠르, Grand Départ)’을 기점으로 8월 중순까지 바캉스가 최고조에 달한다. 파리에 파리시민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 보인다는 바로 그 때다.

바캉스(Les vacances)의 사전적 정의는 ‘근로자들이 업무를 중단하고 많은 인원이 이동하는 법적으로 보장된 기간’이다. ‘비우다’라는 뜻의 라틴어 바카레(vacare)에서 유래한 단어로, 곧 ‘중단’과 ‘비움’이 프랑스의 휴가 문화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어느 소설가는 ‘최고의 근로 조건은 바캉스’라고 지적했다. 프랑스인은 최고의 바캉스를 즐기기 위해 11개월을 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간지 르 파리지앵에 따르면 올해 프랑스 인구의 69%인 4,600만 명 정도가 바캉스를 떠날 계획이며, 이 중 61%가 바닷가를 찾겠다고 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웃 독일이나 영국에 비해 자국 내에서 바캉스를 보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대서양과 지중해 주변에 천혜의 휴양지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요인으로 체크바캉스(chèques vacances) 쿠폰과 알뜰하게 바캉스를 보낼 수 있는 휴양마을(village vacances)을 꼽을 수 있다.

1982년 프랑스는 연간 5주 동안의 유급휴가를 법제화한 동시에 국민들의 여가생활 확대에 대한 실질적 지원책으로 체크바캉스 제도를 신설했다. 체크바캉스는 근로자의 여가 비용 부담 완화, 저소득층과 소외 계층의 여가 불평등 제거 등 자국민의 국내관광을 촉진하는 정책 수단으로 도입돼 오늘날 프랑스 여행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여행경비는 공공기관 및 기업체에서 체크바캉스협회에 가입한 후 근로자와 기업이 적립금 형태로 분담하며, 노사협의회에 의해 쿠폰 형태로 직원들에게 지급된다. 쿠폰은 프랑스 내에서 숙박업소, 스포츠클럽, 항공, 철도, 식당 등 여행과 문화체험 활동에 두루 사용할 수 있다. 8,500개가 넘는 캠핌장, 900여 개의 휴양마을 등 가맹점이 무려 19만 개에 달하고, 전국민의 15%가 넘는 1,000만 명 이상이 이 제도의 혜택을 보고 있다.

이처럼 프랑스 바캉스 문화의 저변엔 휴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배려가 깔려 있는 동시에, 부담 없는 비용으로 누구나 여가를 향유할 수 있도록 치밀한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하고 있다. 덕택에 바캉스 때면 동네 구둣방 아저씨도 한 달간 가게 문을 닫고, 기업체 고위 임원도 눈치 안 보고 바캉스를 떠난다. 니스 해변의 고급 호텔에서 즐기든 캠핑장에서 가족들과 텐트를 치든, 중요한 건 모든 국민이 형편에 맞게 균등하게 여행의 기회를 누린다는 것이다.

OECD 국가 중 프랑스는 휴가일수에서 단연 상위권이고 노동생산성도 높은 국가에 속한다. 반면 한국은 근로시간은 최상위권이지만 노동생산성은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대한민국, 과열로 엔진이 고장 나기 전에 정비와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관광과 휴가 선진국인 프랑스의 정비 매뉴얼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강석목 한국관광공사 파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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