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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현장서 발견된 지문… 조작인가, 유죄 증거인가

입력
2018.07.29 14:00
수정
2018.07.2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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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 주 : ‘일본 미제사건 갤러리’는 일본의 유명 미제 사건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열도 서남부 끝자락에 자리잡은 여름의 땅, 가고시마(鹿兒島). ‘불의 신(火神)’이란 별명답게 동튼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은주는 30도를 넘나들었다. 2009년 6월19일 오전 6시15분쯤, 가고시마시 시모후쿠모토(下福元)쵸 경찰서로 신고 전화 한 통이 날아들었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부모님이 살해된 것 같아요.” 

아들 C씨의 전화였다. 출동한 경찰은 시모후쿠모토 한 주택에서 A(91)씨와 B(87)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의 머리는 무언가에 맞은 흔적으로 가득했다. 강력범죄를 의심한 경찰은 그날 오후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A씨와 B씨를 부검대 위에 올렸다. ‘둔기에 의한 뇌 손상’이란 사인이 나왔다. 특히 범인이 한 두 번도 아니고, 수십 차례 머리를 내려친 점으로 미뤄볼 때 원한 범죄가 의심됐다. 작정하고 죽였다는 것이다.

10일 뒤인 6월29일. 경찰은 가고시마시 산와(三和)쵸에 사는 전직 목수 D(70)씨를 유력 용의자로 긴급 체포했다. 사건 현장에서 D씨 지문이 나온 것이다. D씨는 “A, B씨의 집에 간 적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백 개의 말도 한 개의 증거 앞에선 초라해지는 법. 가고시마 검찰은 D씨를 강도살인, 주거침입 혐의로 그 해 9월 기소했다. D씨가 재판에 넘겨져 법의 심판을 받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때까진 그랬다.

 검찰의 무리수 

재판에서 증거란, 목사의 성경과 같다고 한다. 늘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증거가 반드시 사실만 전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대다수의 증거는 사실의 한 조각일 뿐, 사실 그 자체를 증명하진 않는다. 유력한 증거의 확보가 유죄 가능성을 무조건 상승시키진 않는다는 이야기다. 어떤 사람 집에서 술병을 발견했다고, 그를 알코올중독자로 몰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검찰이 D씨의 범행을 확신한 건 지문 때문이었다. 범인이 A, B씨 집에 침입할 때 깬 것으로 보이는 유리창 조각과 뜯어진 방충망에서 D씨 지문이 검출된 것이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D씨가 새벽녘 창문을 깨고 노부부 집에 침입, 삽으로 머리를 난타해 살해한 것이라 추정했다. 현장에선 A, B씨 혈흔이 묻은 삽이 발견됐다. 유력한 범행 도구로 추정됐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삽에선 D씨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 삽은 노부부의 머리에 남은 폭행 흔적과도 모양이 일치하지 않았다. 검찰은 침입 현장에서 지문이 발견됐고, 알리바이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D씨를 범인으로 몰아세웠다. 또 살해 현장에 현금 등 귀중품이 그대로 남아 있었음에도 범행 동기를 절도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무리수’가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증거의 늪 

D씨 변호인은 지문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검찰이 사후 유리창 조각에 D씨 지문을 묻힌 게 아니냐는 것. 일본에서 검찰의 증거조작은 중범죄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일본 후생성 간부의 뇌물 수수 사건(2010년)이다. 일본 법원은 당시 수사를 맡은 오사카 지검 특수부가 증거서류의 날짜를 조작한 사실을 확인한 뒤 주범 격인 주임 검사에 징역 1년 6개월, 차장 및 부장검사에겐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D씨 측 주장에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하지만 법원은 D씨 측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줬다. 특히 경찰이 지문 입수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놓지 못 한 게 실책이라면 실책이었다. D씨의 지문을 언제, 어디서 얻었는지 증명할 ‘증거의 증거’가 사라진 셈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D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법원이 보기에 검찰 논리엔 구멍이 많았다. 일단 범행 동기부터 석연치 않았다. 절도가 목적인데도 현금 등 귀중품을 모조리 두고 갔으며, 범행 도구로 추정되는 삽에선 D씨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 또 고령(70세)인 D씨가 두 사람의 머리를 수십 차례씩 내려쳐 살해하는 게 가능한지도 의문이었다.

무엇보다 A, B씨의 집 유리창과 방충망에서 D씨 지문이 발견됐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D씨를 범인으로 확정할 순 없었다. 법원은 7개월 동안 11차례의 공판을 거쳐 2010년 12월, D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정황 증거만으로 피고를 범인으로 인정하는 건 허용할 수 없다. 필요한 조사가 다 이뤄졌는지 의문”이라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 결과를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한 1958년 이후 1심에서 사형이 구형됐으나 무죄 판결이 난 9번째 사례였다.

 용의자 사망, 사건은 영구 미제로 

검찰은 법원 판결에 불복, 후쿠시마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항소심 공판 과정은 1심만큼 치열했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공판이 한창이던 2012년 3월, 용의자 D씨가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것. 고법은 D씨가 사망하자 사건의 공소를 기각했다. 같은 달 검찰도 수사 종료를 발표하면서 A, B씨 사건은 영원히 미제로 남게 됐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송영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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