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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군에 문민장관, 앞당길 때 됐다

입력
2018.07.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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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엄령 문건, 역으로 군의 실력 노출 

 사회에 뒤처진 군의 조직과 현실인식 

 민간인 출신 장관, 지금 군에는 적임자 

국가 비상사태에 군이 계엄을 통해 사회를 통제하는 것은 ‘시민종교’ 헌법이 정한 내용이다. 우리 현대사의 악몽인 계엄을 현실로 불러낸 게 기무사 계엄령 문건이다. 문건은 군의 무력을 잊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 내용의 조악함이 놀랍게도 안도감을 준 게 사실이다. 이 모순 같은 공포와 안도의 이중성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계엄령 문건의 구시대적 조치와 문구들이 우리 사회에서 뒤처진 군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편인 연유일 것이다. 경직된 군 수뇌부의 현실인식은 그런 문건이 사회적 논란이 될 것이란 예상조차 못하고 ‘보존’ 조치를 내리도록 했다. 문건 공개과정에서 은폐 의혹에 휘말린 국방부 판단에서도 그런 실상은 여실하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지방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문제의 문건 공개를 미뤘다고 한다. ‘송영무식’ 국방개혁이 청와대에서 보류되는 과정에서 계엄령 문건이 의원실에 넘겨져 공개됐다면 그의 정무적 판단은 믿을 수 없게 된다. 송 장관과 기무사 간 공방에서 노출된 군의 모습은 경악할 일이고, 군의 오만이기도 하다. 일반 조직에서도 흔치 않을 일이 군에서 발생했다고 해서 군 기율의 문제로만 볼 건 아니다. 하지만 장악 안 되는 군, 장악 못하는 장관의 한계가 동시에 전국에 생중계 된 셈이다. 군 지휘관은 영어로 리더(leader)가 아니라 커맨더(commander)라고 부른다. 집단 선두에서 이끄는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라, 명령하고 지배한다는 의미에서다. 보다 못한 대통령이 나서 기무사의 해체에 가까운 개혁과 국방장관의 경질을 시사했지만, 군에는 이보다 더한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계엄령 문건의 진실, 그것이 민주주의를 무력으로 진압하기 위한 쿠데타 음모인지는 민군 합동수사단에 맡겨져 있다. 비록 수사단의 조사대상은 아니지만, 이번 사태에서 공개된 군의 실상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냉전 초기 군이 사회 다른 부문보다 앞서 있던 때 군의 현실 참여는 세계적인 현상인 때도 있었다. 가정이지만, 지금은 군이 권력을 잡는다고 해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게 자연스런 결론이다. 우리 민주주의가 그만큼 성숙된 측면도 있으나, 군이 사회 발전을 따라오지 못하면서 사회를, 국가를 리드해나가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제 군인의 시대가 뒤로 물러나고 있는 시점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군의 현실은 문민 통제를 강화하고 앞당길 필요성을 높인다. 군에 대한 문민 통제는 당연한 것이지만, 국방장관은 군복 벗은 장군들의 자리였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군을 아는 인사가 필요한 때문이었다. 지금은 문민 출신이라고 해서 장관직 수행을 못할 일도 아니고, 문민장관이 오히려 군 현실에 절실하고 적격일 수 있다. 육군이란 군 파워집단을 개혁하는데 비육군에 해공군 출신만 있는 게 아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는 사실 문민 통제의 승리였다. 젊은 대통령과 기업인 출신 국방장관은 발발 진전까지 간 핵전쟁을 피하려 내부와도 맞서야 했다. 소련에 본때를 보여주고자 군부는 선제폭격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결국 미사일 추가 반입을 막기 위한 해상봉쇄 작전이 시작되며 위기는 현실로 다가온다. 현장 지휘권이 군에 맡겨진 작전에서 국방장관 맥나마라는 군부의 돌발적 행동을 견제하기 위해 상황실을 지킨다. 마침내 소련 군함이 봉쇄라인을 넘고, 교전수칙에 따라 경고포격이 준비된다.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이 순간 평화와 국익을 앞세운 문민 통제가 관철되면서 충돌위기는 모면된다. 보기에 따라선, 미소가 물밑타협으로 핵전쟁의 위기를 건넌 다리는 문민 통제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는 유엔군 사령관에서 전격 경질되고 나서 소감을 묻는 언론에 “민간의 질서가 군의 질서를 앞서는 것은 자랑스런 역사”라고 했다. 그것이 우리의 역사가 될 수 있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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