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제주도에 예멘 출신 난민 500여명이 입국하면서 난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난민 입국을 반대하는 입장부터 인도적인 차원에서 수용을 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난민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다. 그런 와중에 동료 연구자들의 초대로 예멘에서 온 여성 난민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는 2년 전 한국에 왔고, 현재 난민 인정을 받은 상태이다. 예멘 사나 지역이 고향인데, 그곳은 언제 어디에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곳이라고 했다. 폭탄으로 병원도 파괴되고, 폭탄재로 얻은 피부병에 걸린 사람도 많다고 했다. 청년들은 누구와 싸우는지도 모른 채 끌려갔다. 지도를 보여 주며 그는 사나 지역에서 호데이다, 모카, 주부티를 거쳐 한국에 오기까지 여정을 들려 주었다. 여성이 홀로 장거리 이주를 하는 일이 쉽지 않다. 주부티로 가는 과정에서는 300명이 탄 보트가 3시간 동안 멈췄을 때, 죽음을 생각하고, 매 순간 두려움, 외로움, 불안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목숨을 걸고 이동하는 삶은 짐작조차 어렵다. 그래서 내가 그이의 경험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본인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어디든 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누구나 ‘난민’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 또한 그랬다. 삶이 파괴된 곳에서 살기 위해 어디로든 이동하다 보니 난민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한국에 온 그에게 난민 인정이란 생존과 안전,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기회였다. 잠시 에티오피아로 보내졌던 아이들은 지금 한국에서 함께 살고 있다. 어린이집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한국 음식도 제법 잘 먹고 친구도 사귀고,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난민으로 사는 일은 녹록하지 않다. 언어와 문화를 새롭게 학습해야 하고, 일자리도 구해야 한다. 일을 구한다고 하더라도 이력을 쌓거나 지속해서 일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는 식당에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설거지를 했지만 아이 둘을 두고 집을 오래 비우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일할 곳이 생기면 어떤 일이든 할 자신이 있지만, 대게 일용직이나 단기적인 일자리였다.

뿐만 아니라 최근 예멘 출신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면서, ‘예멘 사람=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을 자주 만난다. 친구 남편이 갑자기 직장을 잃는다거나, 평소에 잘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출신국을 묻는 등 예멘 사람 골라내기가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는 한국에 살면서 아이들이 예멘 사람은 나쁜 사람이냐고 물어보거나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10년 전 일터에서 만났던 이주민 동료들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제주도에 난민이 뚝 떨어진 것처럼 여기지만, 실은 오래 전부터 함께 살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는 것은 이미 사회 구성원으로 살고 있는 난민에 대한 배려와 감수성이다. ‘제주도 예멘 난민’을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거나 입국 거부 청원을 하거나 진짜 난민과 가짜 난민을 가르는 일은 함께 사는 이들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된다.

오늘날 난민은 국가 단위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치, 경제, 환경 등 복합적 요인이 뒤섞여 전 세계적으로 출현하고 있다. 나 또한 난민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공유하는 셈이다. 그러니 “왜 (하필이면) 한국에 오느냐?”라는 질문 대신 “누가 난민이 되고, 옆집에는 누가 거주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지금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난민을 배타적인 존재로 거부할 것이 아니라, 이미 옆집에 난민이 살고 있다는 상상력이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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