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12>먹방 크리에이터 밴쯔, 정만수

달랑 시청자 1명과 ‘맨투맨 대화’하던 유튜버
지금은 262만 구독자 보유한 크리에이터로
‘평생 내가 모신다’…어깨에 부모얼굴 문신으로
“좋은 유튜버 아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먹방’ 크리에이터 밴쯔 정만수씨. 꾸준한 운동으로 몸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근육의 날이 서 있는 어깨 뒤쪽에 그가 문신으로 새긴 양친의 얼굴이 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븅~신, 뭐 하냐?”

처음은 미약하다 못해 초라했다. ‘그래 일단 해보기나 하자’며 달려든 인터넷 ‘먹방’(먹는방송)의 첫 방송. 시청자 수는 달랑 3명이었다. 게다가 첫 댓글은 이런 비아냥. 지금도 잊히지 않는 다섯 글자다.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러나 이 영민하고 독한 ‘방송인’은 티 내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뭐하냐고 물었으니 뭘 하고 있는 지를. “제가 국립대로 편입을 하려고 하는데, 면접 점수가 중요하더라고요. 말하기 학원은 비싸서 갈 수가 없었어요. 대신 방송으로 말하는 태도, 내용, 목소리를 평가 받아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첫 댓글을 단 시청자가 방을 나갔다. 당황스럽고 황당한 상황. 말문이 막혀 방송사고가 났을까. 아니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실제 면접에서도 내가 답변하는 중에 면접관이 ‘자, 다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는 나머지 2명이라도 방에 머무르도록 최선을 다해 먹었다. 친구 집에서 부모님이 차려주신 밥상을 받듯이, 공손하고 감사하게. 그로부터 두 달 여 뒤, ‘어제 왔었는데 또 왔어요’란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점점 낯익은 닉네임이 많아졌다. 5년 뒤 구독자만 262만 명의 ‘먹방 크리에이터’로 성장한 밴쯔(28ㆍ본명 정만수)의 시작이다.

자신이 월급 주는 직원이 14명, 건강기능식품 회사(잇포유) 대표에, 연 매출이 10억 원에 이르는 성공한 크리에이터. 그런데 정작 밴쯔는 냉면집에서 곁들이 음식으로 만두를 시킬 수 있음에 행복해 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스무 살 무렵, 아버지와 함께 냉면을 먹으러 갔을 때 기억 때문이다. “냉면에다 만두도 한 접시 시키자는 말이 차마 나오지가 않더라고요. 대신 ‘여기 냉면 양이 많으니까 이것만 먹어요’라고 했죠. 그랬더니 아버지가 ‘그러자’고 하시더라고요. 여유가 있었다면 ‘남기더라도 만두도 먹어보자’면서 시키셨을 거예요.” 그는 되레 죄송한 마음이 컸다고 돌이켰다. “내가 능력이 있다면 사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는 지금 ‘평수가 더 큰 옆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다’던 어머니의 10여 년 소원까지 이뤄줬다.

그의 결핍은 성공해야 할 이유를 넘어선 행복의 근원이다. 왼쪽 어깨에 새긴 양친의 얼굴 문신이, 그 각인이다. “어머니, 아버지를 평생 어깨에 짊어지고 가겠다는 의미에서 했어요. 저로 인해 부모님이, 누나가, 지인들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저는 행복해요.”

‘간단한 야식’으로 한 번에 달걀 7알을 넣어서 라면 6개를 끓여, 그 국물에 밥 한 공기까지 싹 비워내는 먹방이 행복할 수 있는 비결 역시, 초 절제의 생활 덕분이다. 이 하루 한번의 ‘맛있는 방송’을 하려고 그는 나머지 끼니는 생식을 하고, 매일 6~8시간씩 운동을 한다.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청년의 눈이 그토록 깊은 데에는 압축된 생의 희로애락이 있었다.

#
첫 ‘먹방’ 시청자는 달랑 3명
그마저도 1명은 중도 퇴장
두 달 되니 ‘또 왔어요’ 팬 생겨
밴쯔를 2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그가 사는 대전에서 올라오는 길, 예상치 못한 도로 사정으로 길이 막혀 늦자 그는 허리부터 넙죽 숙이며 들어섰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왜 먹방을 하게 됐나요?

“제가 대학 때 편입을 준비하던 때였어요. 학점은 4.21이어서 나쁘지 않은 편이었는데, 면접 비중이 크더라고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말이 잘 나올 것 같지가 않았어요. 그렇다고 ‘말하기 학원’을 다니자니, 학원비가 비싸서 그건 엄두가 안 났고요. 당시에 인터넷 방송을 저도 많이 봤던 때라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 어조나, 태도, 말투 이런 걸 평가 받아볼 기회가 되겠다 싶어서요. 마이크랑 캠코더를 사놓고도 창피해서 용기가 나지 않다가, 부딪혀보자 해서 시작했어요. 먹는 걸 좋아했으니까 ‘먹방’으로요.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 삼각김밥, 도시락… 뭐 보이는 대로 다 사왔죠. 지금은 방송용 밥상이 따로 있는데, 그때는 안 쓰는 컴퓨터 본체를 누이고 먹었어요. 그 때가 2013년 5월 27일이에요.”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네요.

“그럼요. 처음 (채팅방) 접속(시청)자 수가 3명이었죠. 제가 그때 즐겨 보던 인터넷 방송들은 접속자가 몇 천 명씩 들어왔거든요. 그러니 저도 딱 시작하면 몇 백 명은 쫙, 들어올 줄 알았어요. (웃음) 지금 생각하면, 제가 무슨 유명인도 아니니 당연한 거였는데.”

-반응이 어땠어요?

“첫 댓글이 이거였어요. ‘븅~신, 뭐하냐?’ 지금도 잊지 못해요.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상황을 설명했죠. 뭐 하냐고 물어보니까. (웃음) 그런데 불쑥 나가더라고요. 실제 면접 상황에서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 테니까 마음을 다스렸죠. 물론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면접 준비 때문에 시작한 거니까. 또 내가 이걸 평생 할 것도 아니니 괜찮아’라고 추슬렀죠.”

-자제력이 대단하네요.

“어릴 때부터 해야 하는 건 참고 꼭 해냈어요. 그때도 (면접이라는) 목적이 있었으니까요. 어떤 날엔 접속자가 1명이어서 ‘맨투맨 대화’를 한 적도 있어요. (웃음) 되게 감사하더라고요.”

-뭐가 감사했나요?

“일단 제가 말을 할 수 있게 그 자리에 계셔주니까요. 그래서 대화를 했으니까요.”

-인터넷 방송 중에서도 왜 먹방을 하기로 했나요?

“어릴 때부터 먹는 걸 좋아했고 또 잘 먹었어요. 그래서 맘 편하게 도전했죠.”

-얼마나 잘 먹었기에요?

“음, 라면을 1개만 먹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라면을 먹으면 한번에 2, 3개씩 먹었어요. 거기다 밥까지. 그래서 지금도 라면 1개는 (맛있게) 못 끓여요. 물 양을 못 맞춰서. (웃음)”

-먹방을 하면 먹는 양이 점점 늘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맞아요. 방송 초기만 해도 라면 5개 먹으면 ‘와, 쟤 배 터지겠다’는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른 건 더 안 먹어?’ 할 정도로 바뀌었죠. 그런데 먹을 때 제 철학은 ‘먹고 기분 나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기분이 좋고 나쁘고의 차이는 ‘한 젓가락’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컨디션이 안 좋거나, 이 정도 먹으면 배 부르겠다 싶으면 밝히고 그만 먹어요. 그런 날이 별로 없긴 하지만. 시청자는 더 자극적인 걸 원하기 마련이거든요. 만약 시청자가 원한다고 억지로 먹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저도 방송 자체가 싫어질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 자제를 하는 거죠.”

-첫 방송 시작한 이후에 ‘어, 뭐가 되나 보다’ 느낀 적은 언제인가요?

“세 달 정도 됐을 때인가? 처음으로 접속자 수 100명을 찍었어요. 그러더니 그 즈음부터 ‘어제 보고 또 왔어요’ 하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팬들이 축적되니까, 저도 ‘아 빨리 내일 또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더라고요. 인터넷 방송할 때 채팅창(댓글)을 보고 얘기하는 게 마치 친구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느낌이거든요.”

-처음에는 ‘이거 오래 할 것도 아닌데, 뭐’라고 생각했다면서요.

“그렇죠. 그런데 점점 재미있더라고요. 사실 방송 시작하고 1년 정도는 대리운전, 막노동 같은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일주일에 적어도 3번은 해야 했어요. 먹방 식비도 벌고, 학비도 마련하려고요. 친구들과 놀지도, 주말에 쉬지도 못했죠. 그때 먹방이 사실 저에게는 쉬는 시간이었어요.”

#
‘먹방’ 수입으로 아버지 첫 시계 선물
“먹기 괴로우면 뱉으면 안되냐고?
축구선수가 힘들다고 그라운드 떠나나”
대학에 진학하자 마자 부친의 사업이 어려워져 가세가 기울었지만, 그는 처지를 비관하기 보다 ‘이것도 숙명이라면 받아들이고 대처하자’고 마음 먹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당시 가정 형편이 어려웠군요.

“대학 첫 학기를 마치자 마자 군대에 간 것도 그 탓이 컸어요. 아버지가 전기공사 시공 사업을 하셨는데, 사업이라는 게 잘 될 때도 있지만 크게 흔들릴 때도 있잖아요. 사업에 악순환이 계속 되면서 가세가 많이 기울었죠.”

밴쯔는 그 즈음의 경험을 인생을 나누는 경계로 설명했다. 집에 혼자 있을 때 빚쟁이들이 몰려온 거다. 이 기억이 트라우마가 됐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거나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이후 “아들로서 내가 더 열심히 살아 도움이 돼야겠다”는 책임감과 다짐이 그의 가슴에 남았다.

“어머니는 지금도 저에게 미안해 하세요. 한참 놀고 즐길 때 군대에 보냈다고.”

-본인은 어때요.

“저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잘 사는 집의 자녀로 태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잖아요. 저의 숙명이랄까요? 그렇다면 받아들이자고.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잘 대처해야 하잖아요. 그러니 일단, 군대에 가면 밥 주고 재워주고 운동도 시켜주니 입대부터 하자고 생각했죠.”

-제대하고 오니 가정 형편이 나아졌던가요?

“조금 좋아지긴 했지만, 크게 나아진 건 아니었어요. 사실 그게 그거였죠. 그러니 학비도 제가 벌어야 했고요.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일했어요. 편입을 준비한 이유 중 하나도 당시 다니던 사립대보다 비교적 학비가 싼 국립대(한밭대)로 가기 위해서였죠.”

-아르바이트를 많이 할 때는 어느 정도로 했나요?

“새벽 5시 30분까지 인력소로 나가는 막노동을 할 때였어요. 하루는 ‘내가 종일 일하면 얼마를 벌 수 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오후 3시 30분 현장 일이 끝난 뒤 바로 이어서 택배 회사로 갔죠. 짐을 싣고 내리고 하는 일을 이튿날 새벽까지 했어요. 거의 잠을 자지 않고 꼬박 24시간을 일한 거예요. 그랬더니 제 손에 쥐어지는 돈이 채 14만원이 안되더라고요. ‘아, 내가 몸으로 종일 열심히 일해봤자 이것 밖에 벌지 못하는구나’ 싶었죠. 그때 진지하게 앞으로 뭘 하며 살 지를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면접을 준비하려 시작한 먹방에서 미래가 보였군요.

“네, 방송을 ‘아프리카 TV’에서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터 방송에서 (시청자에게) 받는 ‘별풍선’(일종의 기부형 시청료) 만으로 식비가 충당 되더라고요. 그래서 방송에 더 치중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 기특한 아들은, 돈이 벌리기 시작하자 부친에게 선물부터 안겼다. 언젠가 신문 광고를 보며 아버지가 ‘이거 예쁘네’라고 한 적이 있는 시계였다. 명품도, 고가도 아니었지만 태어나서 (그때까지는) 가장 큰 돈을 들인 선물이었다. “뿌듯했어요. 내가 번 돈으로 아버지가 갖고 싶어 하셨던 걸 사드렸으니까.”

-먹방은 많잖아요. 그런데 왜 많은 이들이 밴쯔의 먹방을 볼까요?

“제 방송은 재미가 없어요. 욕을 하지도 않고, 흘리기도 하면서 마구 먹지도 않고요. 다만, 제가 지금까지 갖고 있는 초심은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친구 부모님 앞에서 밥 먹는 것처럼 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방송 할 때마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하는 건가요?

“네,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았어요. 또 친구 집에 가면 설사 음식이 짜더라도 ‘이거 안 먹을래요’ 하지 않잖아요.”

-그래도 먹기 힘든 때가 있기 마련일 텐데요.

“딱히 그런 적은 없어요. 다른 맛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그 비싸고 귀한) 트러플(송로버섯)도 모두가 좋아하지 않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 설사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걸 맛있게 먹는 사람도 있으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먹어요. 그런데 정말 맛있는 걸 먹을 때는 제 표정부터 달라지기는 하죠. (웃음) 닭뼈나 돼지갈비찜 같은 걸 먹을 때 실수로 뼈를 ‘와작’ 씹어서 이에 금이 갈 정도로 아프거나, 실제 어금니가 부서져서 나중에 뺀 적도 있죠. 그래도 내색하기가 싫어서 방송에서는 참고 먹어요.”

-안 먹거나 뱉을 수도 있잖아요. 특히 너무 매워서 괴로워할 때도 있던데 왜 참아요?

“축구선수가 힘들다고 그라운드에서 나갈 수 없잖아요. 제가 그걸 먹겠다고 했으니 먹어야죠.”

-정신력이 강하네요.

“그런데 제 먹방을 보면서 애 같다거나, 혹은 멍청하게 보인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저는 그게 좋아요. 회사에서 아무리 높은 직급이고 근엄한 사람도 친구들을 만나면 애처럼 놀잖아요. 저는 방송에서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 편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월급 주는 직원 14명… 가계 빚도 거의 정리
“가족들이 행복한 걸 보면 나도 행복해”
이미 연예인급 인지도를 누리고 있는 ‘방송인’ 밴쯔는, 카메라 앞에서도 어색함이 없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성공한 크리에이터인데,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 밝힐 수 있나요?

“아, 이 대목에서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제 연 수입이 10억 원으로 알려졌는데, 수입이 아니라 매출액이에요. 매출이 10억 원이라 하더라도 소속사와 나누고, 직원들 월급 주고, 투자할 것도 있고요. 그렇게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순수익은 그저 (수준이) 낮지 않은 회사원 월급 정도거든요.”

-먹방으로 성공해서 가계에 많이 도움이 됐나요?

“많이 도왔죠. (웃음) 빚 있던 것도 거의 다 정리했고요. 그렇지만 마무리는 하지 않았어요. 그건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하시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죠. 지금까지 드린 용돈 만으로도 아마 빚을 다 갚을 수 있는 정도일 테지만.”

-왜요?

“그래야 아버지가 창피하지 않고 당당하실 거 같아서요. 아버지의 자존심을 존중해드리고 싶었어요.”

-집도 이사를 했다고요?

“좀 큰 평수의 아파트로 옮기는 데 보탰죠. 예전부터 어머니의 꿈이었거든요. 지금 사는 아파트의 바로 옆 동이에요. (웃음) 8, 9살 무렵에 처음 이사 왔는데, 종종 어머니가 옆 동을 보면서 ‘아빠 일이 잘 되면 저기로 가자’고 하셨거든요. 누나가 결혼할 때 신혼여행 비행기 티켓을 선물로 사주기도 했고요. 그런 게 저는 참 행복해요. 제가 행복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저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행복하면 행복해요. 제가 열심히 일해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면 부모님이 행복해 하잖아요. 그걸 보는 게 행복해요.”

밴쯔 어머니의 한 때 오랜 기도 제목은 이거였다고 한다. ‘우리 아들이 싱싱한 과일 먹게 해주세요.’ 시장에서 늘 값이 싼 낙과를 사서 손질해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은 좋은 과일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설사 낙과를 먹더라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과거, 그럼에도 열심히 살았던 기억과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먹방을 할 때 보통 몸에 좋지 않은 인스턴트 음식도 많이 먹잖아요?

“그래서 방송을 안 할 때는 무염식이나 생식을 해요. 저는 원래 음식 본연의 맛을 좋아해요. 예를 들어 방울 토마토도 색에 따라서 맛이 다 달라요. 그걸 즐기죠.”

-먹방 때 섭취하는 칼로리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계산해본 적 있나요?

“없어요. 숫자에 한번 (생각이) 꽂히면 숫자의 노예가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몸무게도 거의 재지 않아요.”

-운동을 굉장히 열심히 하잖아요?

“하루에 7, 8시간씩 하죠. 웨이트 운동 2시간, 나머지는 유산소 운동을 해요. 먹방을 하다 보니까 건강에 더 신경을 쓰게 돼요. 또 더 많이, 맛있게 먹으려면 운동을 해야 했죠. (요즘 출연 중인) Jtbc ‘랜선 라이프’ 시청 후기를 보니까 많은 시청자들이 ‘먹방 하려고 하루 몇 시간씩 운동하고, 쉬지도 못하네. 즐길 시간도 없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한마디로 행복해 보이지 않다는 거죠. 그런데 저는 되게 행복해요.”

-어릴 때는 꿈이 뭐였어요?

“자주 변했어요. 유도를 했던 중학생 때는 유도 선수, 유도를 그만 둔 뒤 급격히 찐 살을 빼려고 헬스를 열심히 했던 고등학교 땐 트레이너가 꿈이었죠. 당장 눈 앞의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꿈이 자꾸 바뀌더라고요.”

-초등학교 때는 투포환을 했다면서요.

“5학년 때 선생님이 시켜서요. (웃음) 학교마다 덩치 크고 키도 큰 애들 있기 마련이잖아요. 제가 그 중 하나였거든요.”

-재미있었어요?

“네, 재미있었죠. 그런데 시합 나가보니까 저보다 잘 던지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어린 나이에도 ‘이건 좀 힘들겠네’ 싶어서 그만 두겠다고 했어요.”

-그 판단을 빨리 했네요.

“네, 저는 뭘 하나 시작하면 그 길의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투포환을 시작했으니 그 끝은 올림픽인데, 제가 올림픽에 나갈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한테 ‘저는 이걸로 세계대회에서 메달은 못 딸 것 같아요’라고 했죠.”

-유도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중학교 때 친구가 다니는 유도장에 친구 만날 겸 구경하러 갔다가요. (웃음) 정작 친구는 안 왔는데, 저는 (친구를) 기다리면서 놀다가 유도에 매료됐죠. 멋있는 스포츠잖아요. 다음날 바로 유도장에 등록했어요.”

-그런데 유도는 또 왜 그만 뒀어요?

“중3 때 소년체전 출전하고 나서 때려 치웠어요. 16강전은 이기는 데 30초도 안 걸렸는데, 8강에서 억울하게 판정패를 당했거든요. 진 게 너무 분했어요. ‘실력 만으로 되지는 않는구나’ 싶어서 홧김에 그만 뒀죠. 그 뒤로 유도는 취미로 했어요.”

#
하루 한끼 ‘먹방’ 위해 8시간 운동
‘벤츠의 신사’ 닮으려 닉네임 ‘밴쯔’로
‘먹방’ 초기의 밴쯔(왼쪽 사진)와 유도선수로 활약하던 중3 때 매트에 앉아 시합을 기다리는 밴쯔.

-운동은 매일 하나요?

“(먹방을 하는) 5년 간 거른 날이 없을 정도로 했어요. 작년 이 맘 때 뉴욕에서 두 달 간 살던 중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2주를 빼고.”

-뉴욕엔 왜 갔나요?

“영화에 뉴욕이 배경으로 많이 나오잖아요. 어릴 때 특히 ‘나 홀로 집에’를 정말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뉴욕에 살아보는 게 꿈이었어요. 뛰어서 1, 2분이면 타임스퀘어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숙소를 잡았죠. ‘에어비앤비’(숙박 공유 사이트)로 빌렸는데도 비용이 엄청나게 들더라고요. 위치가 위치다 보니까.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 그때가 먹방을 계속 하느냐를 두고 걱정이 들던 때이기도 했거든요.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자기가 좋아하던 일을 방송으로 시작했다가 그게 본업이 되면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 해요. 저 역시 ‘먹는 게 좋아서 시작했는데 이게 일이 되어 취미를 잃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서 어떻게 지냈나요?

“쉬면서 생각해보자고 떠났는데 어느 순간 제가 (일상을 동영상으로 찍는 ‘브이로그’) 방송을 하고 있더라고요. 하하. 뉴욕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카메라를 켠 것이었으니까. ‘내가 지금 하는 건가’ 싶었죠. 그래서 카메라를 내려놓고 2주일 간 집 밖에 안 나가고 누워만 있었어요. ‘내가 정말 행복하게 방송 한 때가 언제일까, 그때는 어땠나’를 찬찬히 떠올려봤죠. 그리고 그 때 마인드로 돌아가자고 마음 먹었어요. 그 이후 뉴욕에서 지내는 동안은 이곳 저곳을 걸어 다니고, 허드슨강까지 뛰어도 보고, 밥도 동네에서 대충 사먹으며 (자유롭게) 지냈어요. 정말… 진짜, 행복했어요. 한국 돌아와서 이전과 같은 생활을 했지만, 마음은 더 편해졌죠.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먹는다는 건 자신한테 어떤 의미인가요?

“행복한 거죠. 좋아하는 게 일이 됐지만, 그 취미로 돈을 버니까요. 그리고 그걸로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그걸 보니 저도 행복하고요.”

-먹방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요? 일의 수명도 고려해야 하는 법인데요.

“저는 (그래서) 좋은 유튜버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좋은 유튜버가 되고자 한다면, 사람들은 그에게 좋은 콘텐츠를 기대할 거예요. 그런데 제가 좋은 애라서 제 방송을 보는 거라면, 제가 나이가 들어 양갱을 먹어도 시청해주지 않을까요? 친구가 좋으면 그 친구 땀냄새도 싫지 않은 법이잖아요. 나무가 어느 정도 크게 자라면, 웬만하면 그냥 둬도 잘 자라거든요. 그러려면 줄기가 굳건해야죠. 그 줄기는 저라는 사람이고요. 센 놈이 남는 게 아니라 남는 놈이 센 거니까요. 저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몸에 문신이 있던데요.

“왼쪽 어깨 뒤에요. 부모님 얼굴이에요. 작년 겨울에 했어요.”

-왜 부모님 얼굴을 새겼나요.

“문신 할 때도 통증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 통증은 어머니가 저를 낳으실 때와는 비교도 안될 거예요. 문신을 새기면서 어머니는 그 보다 훨씬 큰 고통을 겪으며 저를 낳아주셨다는 것을 생각했고요. 어깨에 새긴 이유도 있어요. 짊어지고 가겠다는 의미를 담았거든요. 어머니, 아버지를 평생 제가 모시겠다는 뜻이요.”

-닉네임이 왜 ‘밴쯔’예요?

“스무살 즈음에 친구들이랑 식당에 간 일이 있어요. 좋은 레스토랑도 아니고 백숙하는 집이었는데, 그때 마치 ‘회장님’처럼 보였던 어르신이 직원에게 팁을 주면서 아주 점잖게 ‘이 테이블 잘 부탁 드려요’ 하는 거예요. 엄청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식당을 나서는데 그 분이 벤츠를 타고 가더라고요. ‘아, 벤츠 타는 사람은 저런 품성을 갖고 있구나’ 싶었죠.”

흥미로운 일화다. 돈만 있는 게 아니라 품격도 갖춰야 ‘멋있는 사람’이란 것을 그는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걸까. 지금까지 지켜온 삶의 도를 묻자, 그는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라고 간명하게 답했다. 중ㆍ고생을 대상으로 한 특강을 가면 그가 종종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가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말한 단어는 ‘행복’이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들에 깊이 뿌리를 둔 그 감정의 기원이 왠지 안쓰러웠다.

-너무 ‘자기’가 없는 삶 아닌가요?

“방송할 때는 제가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말 다 하잖아요(미소). 그렇게 해서, 부모님이 행복해 하는 걸 볼 때 행복하고, 여자친구와 가고 싶은 곳에 함께 갈 때 행복해요. 또 하린이(조카) 선물도 사주고... 저는 그런 게 좋아요.”

아마도 ‘인간 정만수’를 이루는 총체에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일 테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밖이 웅성거렸다. 알리지도 않고 회사 구석의 회의실에서 조용히 인터뷰했는데, 지나가며 창 너머로 그를 알아본 사람들의 입을 타고 소문이 났나 보다. 시나브로 직원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1일1방(매일 시청) 하고 있어요!”, “초창기부터 팬이에요.” 선망의 눈망울들이 ‘팬심(心)’을 전했다.

밴쯔가 가고 난 뒤, 그들에게 그의 방송을 왜 보는 지 물었다. “매너가 좋아서”, “운동까지 열심히 해서”, “먹방 유튜버 중에 목소리가 가장 부드러워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먹성이 좋아서’, ‘많이 먹어서’ 같은 이유는 없었다. 밴쯔는 자신의 소망을 이미 이룬 것 아닐까.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은 사람, 정만수’이므로.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피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