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기자, 폭염 속 거리 노동자들과 동행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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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민원 처리 한전 근로자
방염복에 보호장갑 착용 후 작업
시간 지체 땐 민원인에 양해전화
“서비스직인만큼 감안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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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청소노동자
폭염에 음식물쓰레기 금방 썩어
구더기 탓에 두드러기로 고생도
“더워도 긴팔 입고 일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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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대행업체 기사
저녁에도 30도 넘다보니 일 늘어
마이크 부착된 헬멧으로 연락
“덥더라도 절대 벗을 수가 없죠”
그래픽=박구원 기자

"아니,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35도가 넘는 거예요?"

25일 오후 2시, 마트 배달기사 이중호(58)씨 트럭 운전석에서 측정한 온도계 수은주가 35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차량 에어컨에서 더위를 쫓는 건지 보태는 건지 모를 미지근한 바람이 나왔다. 이씨는 “냉장시설을 탑재한 트럭이라 출력(힘)이 달려서 에어컨 바람이 세지 않다”고 했다. 시원한 물이라도 한 잔 하면 좋으련만. 그는 “요즘 같은 더위에 물이나 과일을 들고 타봐야 금방 미지근해져서 잘 챙기지 않게 된다”고 쓰게 웃었다. 이날 서울 강남 일대를 도는 이씨 배달 일에 동행하기로 한 기자는 차량에 탑승한 지 5분이 지나지 않아 창문을 열었다. “차라리 에어컨을 끄는 게 좋겠어요.”

온라인마켓에서 장을 본 고객들의 물품을 2시간 안에 배달해야 하는 이씨는 최근 폭염경보(이틀 연속 낮 기온 35도 이상) 발효가 계속되면서 더더욱 바빠졌다. 찜통 더위 때문인지 집 밖을 나오지 않고 온라인으로 장보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주문량이 덩달아 급증해서다. 이씨가 일하는 업체의 이번 달 온라인 매출액은 올 3월과 비교하면 15.2% 증가했다.

25일 오후 3시, 배달기사 이중호씨가 어깨에 물품을 이고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다세대 주택 5층에 올라가고 있다. 이혜미 기자

이날 폭염 못지 않게 이씨를 고통스럽게 한 건 ‘한 무게’하는 배달 품목들이었다. 2ℓ짜리 생수 팩에다 음료수 묶음, 수박 등 누군가에게 더위를 이기는데 도움을 줄 물품들이지만 이씨에게는 거꾸로 체감온도를 높이는 원망스런 짐이었다. 첫 배달지는 역삼동 소재 5층짜리 다세대주택. “엘리베이터가 없어요”라는 동행 기자의 탄식에도 이씨는 “힘들다고 느긋느긋하게 올라가는 것보다 차라리 빨리 올라가서 물건을 놓고 오는 게 덜 힘들다”고 무거운 박스를 어깨에 인 채 두 계단씩 성큼성큼 올라갔다. 5층까지 한 걸음에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이씨 머리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연두색 유니폼의 등 부분은 땀으로 젖어 진한 초록색이 됐다.

‘○○년만의 기록적 무더위’라는 말이 2주 넘게 터져 나오고 폭염(최고기온 30도 이상)이 어김없던 25일, 본보 기자들이 ‘거리의 노동자’들을 만났다. 에어컨, 선풍기 등 냉방장치가 없어 폭염에 고스란히 노출된 노동자들 일터를 동행하면서 그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보기 위해서다. 질병관리본부의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따르면, 5월 20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온열환자는 1,644명(18명 사망)으로 80%가 실외작업장이나 길가, 논밭 등 실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오후 1시쯤 종로구 혜화동에서 만난 청소노동자 이모(47)씨는 구더기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씨의 근무시간은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여느 때처럼 주택 앞에 쌓인 쓰레기를 수거하는데 음식물쓰레기가 더위에 곧바로 썩으면서 구더기가 등장한 것이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쓰레기봉투에서 드문드문 떨어지는 구더기를 보여주며 “구더기가 미화원들 몸 속에 들어와 기어 다니는 탓에 피부가 약한 사람들은 두드러기 때문에 고생을 하곤 한다”며 “약을 발라도 소용이 없으니 아무리 더워도 긴 팔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악취는 또 다른 적이다. 주민들이 음식물쓰레기를 플라스틱 수거함이 아닌 바깥에 방치하면 길고양이가 봉투를 뜯어버리고, 곧 악취가 진동을 하게 된다. 이씨는 “악취 민원이 쏟아져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하고 물청소까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밝혔다.

[저작권 한국일보] 기온이 33도를 넘던 25일 오후 수수부꾸미 노점을 운영하는 강성훈(43)씨가 수수부꾸미를 지지고 있다. 노점 안에 놓아둔 온도계는 42도 넘게 올라갔다./2018-07-26(한국일보)

폭염은 땡볕에서 장사하는 노점상에게도, 폐지 줍는 노인에게도 반가워할 수 없는 불청객이다. 종로3가 광장시장 부근 노점에서 부꾸미(기름에 지진 떡의 일종)를 파는 강성훈(43)씨는 “전년 여름과 비교해도 매출이 30%나 줄었다”며 “장사 12년째인데 아무리 더워도 매출이 이렇게 최악인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오후 6시30분, 평소라면 당연히 북적북적할 광장시장도 한산했다. 불판 앞에서 일하는 강씨 근처 주위로 가져간 온도계는 33도를 가리키다 10분 정도 지나자 42도까지 치솟았다. 강씨는 “불 앞이라 숨이 턱턱 막힌다”면서도 “떨어지는 매출이 더위보다 더 걱정”이라고 답답해했다.

25일 오후 4시쯤 관악구 인헌동에서 황현철(76) 씨가 폐지를 줍고 있다. 사진 체증 당시 온도 33도.

해질녘이 돼도 더위는 기승을 멈추지 않는다. 관악구 인헌동에서 만난 황현철(76)씨는 “폐지를 주운 지 올해 10년 됐지만 이렇게 지독한 더위는 처음”이라고 했다. 해가 저무는데도 온도계는 34도를 가리켰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한차례 폐지를 주운 뒤 휴식을 취하고 오후 4시에 다시 나온 황씨는 기자와 만난 3시간 동안 리어카를 끌고 언덕을 오르며 82㎏에 달하는 폐지를 수거했다. ㎏당 50원으로 1,000원짜리 지폐 4장과 100원짜리 동전 하나(4,100원)가 그의 손에 쥐어졌다. 땀 범벅이 된 황씨가 “생수라도 한 병 사 먹고 싶은데…”라고 말을 하면서도 편의점을 그냥 지나쳤다. 생수 한 병을 1,000원 주고 사면 하루 벌이 4분의 1을 지출하는 셈이다. “정말 목이 마르면 집에 들러 마시고 오는데, 그게 더위를 이기는 방법”이란다.

[저작권 한국일보] 25일 오후 배달대행업체 기사 안종선(20)씨가 노원구의 한 음식점에서 배달 음식을 받고 있다. '경찰팀 폭염 기획'/2018-07-26(한국일보)

오후 9시, 노원구 상계동에서 만난 배달대행업체 기사 안종선(20)씨에게 주문 콜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렸다. 저녁에도 30도가 넘다 보니 대다수 사람들이 식당을 찾지 않고 음식 배달을 주문하기 때문. 기자가 동행한 1시간 동안 안씨는 바람이 통하지 않은 헬멧을 쓴 채, 오토바이를 타고 떡볶이, 치킨 등을 배달했다. 안씨는 “배달대행업체와 연락할 수 있는 스피커와 마이크가 부착돼 있기 때문에 덥더라도 헬멧을 벗을 수가 없다”며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두피에 땀이 찬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유난히 더운 티 못 내고 물 한 모금 편하게 못 마시는 이들도 있다. 전력량이 급증해 과부하가 걸리면서 발생하는 ‘정전 민원’에 분주하게 뛰어다녀야 하는 한국전력 근로자들이다. 아무리 더워도 불편을 겪는 주민들 앞에서 티를 낼 수 없다.

[저작권 한국일보] 25일 오후 3시, 한전 직원 오규석(33)씨가 변압기 교체를 위해 크레인을 타고 올라갈 준비를 하는 중이다. 온도계가 34도를 가리키고 있다. /2018-07-26(한국일보)

종로구 통의동에서 만난 한전 서울지역본부 배전운영실 근로자 최준채(41)씨와 오규석(33)씨는 36도가 넘는 땡볕에서 방염복과 안전모, 두꺼운 보호장갑을 착용한 채 전신주 변압기 교체 작업 중이었다. 직전에 명륜동에서 퓨즈 교체 작업을 하고 곧바로 달려온 이들은 요즘 하루에 20~30건의 정전 민원을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도로에 아지랑이가 피어나 인근 주민이 호스로 물을 뿌려줄 정도로 더웠지만 이들의 작업은 50분간 계속됐다.

[저작권 한국일보] 기온이 33도를 넘던 25일 오후 한전 직원 오규석(33)씨가 통의동에서 변압기 교체를 하고 있다. 온도계 수은주가 34도에서 37도로 이동했다./2018-07-26(한국일보)

지상에서 작업을 보조하던 최씨는 중간중간 민원인들에게 전화를 걸며 양해를 구했다. 최씨는 “민원인들에게 이렇게 작업이 길어질 때면 도착이 늦어진다고 전화를 한다”며 “그분들 입장에선 짜증나고 불편한 게 이해가 간다. 서비스직인만큼 그런 부분을 당연히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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