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재판연구관 양심선언
확정 직전 대법 스스로 판단 번복 검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6월 1일 오후 경기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직 시절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현직 부장판사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의 상고심 당시, 대법원 윗선에서 판결을 바꾸라는 취지로 재검토를 지시했다는 ‘양심 선언’을 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이후 최초의 내부 고발이다.

A 부장판사는 2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보상금 청구 사건이 들어와, 종전 미쓰비시 사건(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의 판시를 인용한 의견서(판결초고)와 보고서를 주심 대법관께 보고했다’고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 사건을 회고했다. 그는 2014년 2월~2016년 2월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냈다.

그는 ‘(그러자) 난데없이 선배 연구관이 그 판결 이유가 그렇게 나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판결에서 인용한 미쓰비시 사건은 다시 파기환송하기로 돼 있다’고 썼다. 여기서 말하는 미쓰비시 사건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소송이다. 1ㆍ2심은 피해자 패소 판결했지만, 대법원 소부(小部)는 2012년 5월 이를 뒤집고 사상 최초로 일본 전범기업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이 사건은 하급심을 거쳐 2013년 8월 대법원으로 다시 올라왔다. 대법원이 이미 심리한 사건이기에, 확인만 하면 판결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 판결을 다시 파기환송하겠다는 것은 대법원이 스스로의 판단을 뒤집고 미쓰비시 쪽 손을 들어줄 것임을 뜻한다. 이에 대해 A 부장판사는 ‘대법원이 스스로 내린 판결의 정당성을 바로 그 사건에서 스스로 부정한다는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일이 검토되는 데도, (내가 속한) 연구관실에서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이를 보고 받은 대법관은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는 듯 “한일 외교관계에 큰 파국을 가져오는 사건”이라며 “그 사건을 A 판사도 다시 한번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 사건은 아직도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고법 재판부(파기환송심)가 대법원이 이미 내린 결론대로 올렸음에도, 별다른 이유 없이 판결을 5년간 미루고 있는 것이다. 이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의 문건에서 이 사건이 명시돼 있어,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박근혜 정부 입맛에 맞게 결정을 미룬 대표적 재판 거래 사례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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