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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박근혜 7시간 명예훼손 선고 ‘대본’ 미리 쥔 양승태 행정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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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박근혜 7시간 명예훼손 선고 ‘대본’ 미리 쥔 양승태 행정처

입력
2018.07.27 04:40
수정
2018.07.27 08:1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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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고 한달이나 전에 앞서 파악 

 재판장이 꾸짖는 광경까지 적어 

 ‘무죄’ 최종결과까지 낱낱이 

 행정처, 문건 228건 추가공개 

가토 다쓰야(왼쪽)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가토 다쓰야(왼쪽)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양승태 사법부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 관련 명예훼손 사건 형사재판부의 판결 이유 낭독 내용을 사실상 ‘대본’ 형태로 미리 파악한 정황이 드러났다. 한 달이나 전에 미리 선고 당일 재판장의 법정 행위와 심증은 물론 최종 결론까지 낱낱이 꿰고 있는 ‘재판 개입’ 정황이 짙은 문건이라 검찰이 작성 경위 등을 살피고 있다.

26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법원행정처는 양 대법원장 때인 2015년 11월 16일 당시 박 대통령 심기를 건드린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52) 전 지국장의 명예훼손 사건 관련 대외비 문건을 생산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 재판장이 ‘선고 당일’ 읽어내려 갈 판결 이유가 대본처럼 쓰인 문건이다. 가토 전 국장이 쓴 기사는 ‘허위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히고 판결서 이유에도 해당 보도의 허위성을 명백히 판시할 것으로 예정’이란 문구가 실렸다.

아울러 재판장이 선고 날 가토 전 국장을 준엄하게 꾸짖을 것이란 미래의 법정 풍경마저 담겼다. 문건에는 ‘일국의 대통령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허위 보도한 것에 대해 재판부의 엄중한 질책이 있을 것’ ‘매서운 질타 및 경고 메시지 전달’이라고 적혀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허위사실 공론화’ 등의 문구도 있다. 법원행정처는 선고 결과까지 미리 알았다. ‘다만, 법리상 부득이하게 무죄 선고 예정’이라고 문건에 적은 것이다.

한 달 뒤인 12월 17일 열린 선고공판은 ‘대본’ 문건과 판박이로 진행됐다. 재판장은 판결서를 낭독하며 우선 가토 전 지국장이 허위 사실을 썼다고 못 박았다. 그가 박 대통령이 참사 당일 정윤회(최순실씨 전 남편)씨와 만났고, 둘이 긴밀한 관계임을 암시하는 사실을 쓴 것은 허위라 했다. 다만, 범죄구성 요건인 비방 목적이 없어 형법상 죄를 물을 순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재판장의 강한 질타가 이어졌다. “기사에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다” “대통령을 조롱하고 희화화했다”고 했다. 그가 한국 정치 상황을 쓴 칼럼 8건도 일일이 법정에서 읽고 “한국 국민으로서 피고인 시각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문제적 글이지만 그래도 헌법상 언론 자유가 중요함을 감안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선고공판 3시간 내내 서 있던 가토 전 지국장이 “다리가 아프다”고 앉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재판장이 “서 있으라”고 거부해 ‘장시간 세워 벌주기’한 셈이란 뒷말도 나왔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양 대법원장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추진에 대통령 협조가 필수라 보던 때라, 검찰은 사법 수뇌부가 대통령 호감을 사기 위해 최대한 성의를 보이는 법정 광경을 연출하기 위해 재판부와 교감하며 재판에 개입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선고 석 달 전인 그 해 9월 작성된 ‘대법원장 현황보고’에도 ‘박 대통령 7시간 의혹은 허위란 취지로 판결문에 기재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돼 행정처가 지속적으로 이 재판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당시 재판장인 이동근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황당하다. 당시 수석부장이나 행정처 인사 누구에게도 심증을 밝힌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문건 출처로 의심되는 당시 사법정책실 실장이던 한승 전주지법원장에게 문건의 배경 등에 관해 묻기 위해 수 차례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법원행정처는 이날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문건 410개 중 미공개 문건 228건도 익명화 작업을 거쳐 조속히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요구사항을 수용한 것이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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