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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리더] “만족할 게임 아니면 팔지 않는다” 완벽주의로 제2 도약

입력
2018.07.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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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동기 2명과 의기투합

할머니에게서 돈 빌려 창업

본사엔 1만5000달러 차용증

워크래프트ㆍ스타크래프트…

독특한 세계관으로 성공 가도

원작 게임에 영화ㆍ소설도 인기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천재보다 마니아 채용 우선

직원이 하고 싶은 게임 개발 독려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최고경영자(CEO). 블리자드 제공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최고경영자(CEO). 블리자드 제공

스타크래프트ㆍ디아블로 등으로 국내에서 친숙한 게임회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는 가파르게 성장해 왔다. 27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사무실에서 세 명으로 출발해 현재 전 세계에서 5,322명(2017년 기준)이 근무 중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2015년부터 4년 연속 선정된 블리자드를 이끄는 인물은 마이크 모하임 최고경영자(CEO)다. 사내 헤비메탈 밴드 ‘정예 타우린 족장(Elite Tauren Chieftain)’의 베이스 기타 연주자이기도 한 그는 전 세계 게이머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았을까.

우연한 장난에서 시작한 출발

블리자드의 전신인 ‘실리콘&시냅스’는 마이크 모하임, 앨런 애드햄, 프랭크 피어스 등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동창 3명이 1991년 2월 세웠다. 창립 비용은 1만5,000달러(약 1,700만원). 모하임이 그의 할머니에게서 빌린 금액이다. 차용증은 아직도 블리자드 본사에 보관돼 있다. 조촐한 이 출발은 우연한 장난에서 비롯됐다.

같은 대학에 다녔지만 서로 몰랐던 애드햄와 모하임은 교내 컴퓨터 연구실에서 한창 작업 중이었다. 애드햄이 커피를 가지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장난기가 발동한 모하임은 그의 컴퓨터 비밀번호를 ‘조(Joe)’로 바꿔 놨다. 그러나 애드햄이 자리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다시 컴퓨터 자판을 치기 시작하자 당황한 건 오히려 장난을 건 모하임이었다. 같은 비밀번호를 쓰고 있다는 걸 확인한 둘은 이 우연한 계기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대학 졸업 후 컴퓨터 데이터 저장 장치 제조업체인 웨스텐디지털에서 일하던 모하임은 애드햄의 끈질긴 설득에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게임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같은 대학 동창인 피어스도 합류해 실리콘&시냅스를 세웠다.

실리콘&시냅스는 창립 초기 특별한 능력을 지닌 바이킹 3명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담은 ‘로스트 바이킹’과 다양한 무기가 장착된 차량 경주 게임인 ‘로큰롤 레이싱’ 등을 내놨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늘 자금난에 시달려야 했다. 모하임과 애드햄의 신용카드로 회사 운영비와 직원 10여명의 월급을 메웠다.

운영 자금 걱정을 덜기 위해 1994년 교육용 소프트웨어 제작사의 자회사로 편입된 뒤 실리콘&시냅스는 회사 이름을 카오스 스튜디오로 바꿨다. 하지만 같은 이름을 쓰는 회사가 있어 같은 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로 다시 교체했다.

블리자드 순매출액 변화
블리자드 순매출액 변화

이후 블리자드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게임을 속속 시장에 내놓으며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다. 그 계기가 된 게 1994년 11월 발표한 실시간 전략게임 ‘워크래프트: 오크앤드휴먼’이다. 워크래프트는 블리자드의 유명 다중접속 온라인 역할수행 게임(MMORPG)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세계관의 뿌리가 되는 작품이다. 아제로스 대륙이란 곳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오크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이듬해 내놓은 후속작 ‘워크래프트2: 어둠의 물결’이 전 세계적으로 120만장 이상, 1997년 발표한 롤플레잉 게임 ‘디아블로’가 전 세계에서 300만장 이상 팔리며 블리자드는 게임 업계에서 입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2003년 출시된 ‘워크래프트3: 프로즌 스론’은 1,950만장이나 팔렸다. 국내에서 유명한 스타크래프트는 2005년 게임매체 이미진 게임 네트워크(IGN) 선정 역사상 최고의 게임 100선 중 7위(개인용컴퓨터 게임으론 2위)에 올랐다. 이후 발표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하스스톤, 오버워치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

가장 최근 출시한 오버워치 전 세계 이용자 수 변화
가장 최근 출시한 오버워치 전 세계 이용자 수 변화

두툼한 세계관 바탕으로 인기몰이

블리자드 게임이 선풍적 인기를 끈 건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고, 그 이야기들이 얽히고설켜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블리자드가 특정 게임의 확장판을 내놓을 때마다 스토리는 더욱 풍성해진다. 캐릭터가 한 가지 게임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게임에 등장하는 것도 특징이다. 캐릭터들의 풍부한 개인사ㆍ과거사가 게이머의 호기심을 자극해 캐릭터에 얽힌 이야기를 더 알고 싶게 만들고, 해당 캐릭터가 나오는 다른 게임에 대한 관심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캐릭터의 ‘원소스멀티유즈’ 전략을 엿볼 수 있는 단적인 예가 워크래프트에서 오크 종족 영웅으로 나온 ‘스랄(Thrall)’이다. 스랄은 워크래프트 인간어로 노예라는 뜻이다. 그는 워크래프트3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세계관에서도 큰 비중을 갖고 있다. 2014년 출시된 카드 전략게임 ‘하스스톤’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영웅 9명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스스톤은 이용자가 수백 장의 카드 중에서 30장을 고르고 영웅 한 명을 택한 뒤,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카드를 한 장씩 내 상대편 영웅의 체력을 모두 깎으면 이기는 전략 카드게임이다. 마법사ㆍ사냥꾼ㆍ도적ㆍ사제ㆍ전사 등 나머지 영웅들도 모두 워크래프트에서 나오는 인물들로 이뤄졌다.

카드 전략게임인 하스스톤에 나오는 오크족 영웅 스랄의 모습. 블리자드 제공
카드 전략게임인 하스스톤에 나오는 오크족 영웅 스랄의 모습. 블리자드 제공

블리자드의 캐릭터는 게임과 함께 세상에 나왔지만 게임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2016년 개봉한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스랄의 아버지인 오크족장 듀로탄과 인간이 서로 다투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영화 말미에 갓난아기인 스랄도 등장한다. 1994년 첫선을 보인 워크래프트 세계관이 제작비 1억6,000만달러(약 1,800억원)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로 다시 탄생한 것이다. 원작 게임에 기반을 둔 소설ㆍ만화책도 계속 출판하고 있다. 워크래프트 영화가 개봉한 해에 출간된 공식 소설 ‘워크래프트: 듀로탄’은 듀로탄의 과거사를 그리고 있다.

모하임은 영화 개봉에 앞서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 영화화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맞이했다”며 “워크래프트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또 다른 게임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블리즈컨 기자간담회에선 “블리자드는 다양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워크래프트가 첫 번째 주자로 나왔던 거고,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블리즈컨은 블리자드가 매년 주최하는 게임 전시회다. 게임 속 여러 캐릭터의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낸 세계관이 다른 게임이나 영화, 소설 등을 통해 계속 확대되고, 이는 또다시 게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선순환 구조를 계속 확대하려는 것이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로고. 블리자드 제공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로고. 블리자드 제공

게임 마니아를 뽑았던 이유

블리자드의 성공신화에는 모하임의 완벽주의와 유연한 기업문화가 한몫했다. 모하임 등이 만든 블리자드의 핵심 가치 8개 중 하나가 ‘내면의 끼를 받아들이자(Embrace Your Inner Geek)’다. 그래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데, 일례로 블리자드의 성공을 가져다준 워크래프트 개발은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나눈 비슷한 장르의 게임(듄2ㆍ1992년 출시) 이야기가 발단이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문장은 블리자드의 급성장을 관통하는 핵심 비결이다. 워크래프트 성공이후 수 많은 이력서를 받은 블리자드는 직원을 뽑을 때마다 해당 지원자가 게임 마니아인지 여부를 가장 중요하게 봤다. “게임을 좋아해야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스스로가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게임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더 훌륭한 게임이 나올 수 있다”는 게 모하임의 지론이다.

게임 완성도에 대한 모하임의 완벽주의 역시 블리자드가 한층 더 도약하는 데 힘이 됐다. 1996년 내놓은 ‘스타크래프트 알파 버전’이 혹평을 받자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재개발을 주장한 건 유명한 사례다. 결국 개발자들은 이미 만든 상당 부분을 뒤엎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내놓은 스타크래프트는 전 세계에서 1,100만장이 팔렸다. 2002년 스타크래프트에 나온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제작하겠다고 발표한 ‘스타크래프트: 고스트’는 2006년 개발 중단, 2014년 공식 취소했다. 모하임은 “블리자드는 철저한 검증을 통해 성공 가능성이 있는 게임만 내놓는다”며 “게임 개발에 시한은 없으며 만족할 수준이 아니면 발매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제 50대 초반인 모하임은 게임을 이렇게 정의한다. “게임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며 관계를 맺는 도구다.” 기술발전으로 사람들 간의 대화가 줄고, 소외감ㆍ외로움이 커지는 상황에서 그가 내놓을 게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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