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민석의 성경 ‘속’ 이야기]<40>예언자 미가야 투옥 사건

왕궁의 가짜 선지자 400명에 맞서
아합왕의 패배 예언했던 미가야
생전엔 탄압받고 불우했지만
아모스ㆍ호세아 등과 더불어
죽은 뒤 성경에 예언서 남겨
어용들의 글은 한 줄도 안남아
19세기말 율리우스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 작품. 전쟁터에서 활에 맞은 아합 왕.

미가야는 끌려가 감옥에 던져졌다. 끌려가기 전에 뺨도 한 대 후려 맞았다. 그것도 동료 예언자에게 맞아 더 분하고 아팠다. 아무래도 이렇게 될 것 같아 거짓말도 했지만, 이내 못 이기고 소신껏 말하고 말았다. 기원전 9세기, 북 이스라엘 왕궁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가야는 정권의 미움을 받던 자였다. 이유는 늘 소신껏 정권에 비판적인 메시지를 선포하던 예언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고대 서아시아는 신정정치를 하던 곳이었고, 예언자는 그래서 매우 주요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발견된 고대 바벨론의 어느 문헌에 의하면, 왕이 예언자들에게 뇌물을 주기까지 했다. 자기 정권에 유리한 촌평을 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가야는 정치 1번가에 들 수 없었고, 늘 변두리를 떠돌았다.

그날도 왕궁에 거의 끌려가다시피 갔다. 거기에는 동료 예언자 400명이 이미 왕과 함께 와 있었다. 그렇게나 많은 예언자들이 이미 왕궁에 있었는데, 어째서 변두리의 미가야를 굳이 데려다 놨을까?

바알 신을 섬기는 아합 왕

아합 왕이 통치하던 북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잘 나갔다. 어느 기관의 정치와 경제 분석 데이터에 의하면, 아합은 최고의 왕이었다. 그래서 미가야는 더 분노했다. 나라의 부와 성장을 만끽할 수 있는 이들은 소수 기득권층뿐이었기 때문이다. 서민들은 착취와 빈곤에 울부짖고 있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신정정치의 근본이념을 해치는 종교적 배교에 있었다. 그들의 헌법 제 1조가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였지만, 아합 정권은 열렬히 이방 신 바알을 섬겼다. 심지어 하나님을 섬기는 예언자들을 잡아다 투옥하고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때 목숨을 걸고 참 말을 하던 예언자가 바로 미가야였다.

한 날, 아합은 자기를 찾아온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에게 같이 어느 곳을 쳐들어가 땅을 빼앗자고 말하였다. 이때 여호사밧은 먼저 하나님께 그 뜻을 묻자고 제안한다. 당시 고대 서아시아에서는 자연스러운 절차였다. 마치 국회의원들의 동의를 얻듯, 당시에는 예언자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정책 결정에 매우 중요했다.

아합은 곧 예언자를 400명이나 불러 모아놓았다. 그리고는 물었다. “내가 길르앗의 라못을 치러 올라가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그만두는 것이 좋겠소? 그러자 예언자들은 대답하였다. 올라가십시오. 주님께서 그 성을 임금님의 손에 넘겨주실 것입니다.”(열왕기상 22:6)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전원 ‘예스’를 외치는 것이 아닌가?

왕궁에 400명의 예언자가 대기하고 있던 것도 의심쩍지만, 전원이 한 입으로 왕의 의도에 맞추어 대답을 하니 ‘어용의 냄새’가 훌훌 난다. 함께 듣던 유다의 왕도 의심쩍었나 보다. 이 400명 말고 다른 예언자는 없는지 물어본다. 그러자 아합이 이렇게 대답했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라고 하는 예언자가 있기는 합니다만, 나는 그를 싫어합니다. 그는 한 번도 나에게 무엇인가 길한 것을 예언한 적이 없고, 언제나 흉한 것만 예언하곤 합니다.”(8) 여호사밧은 속으로 ‘옳거니’ 하였을 것이다. 아합을 설득하여 미가야를 불러 오기로 한다.

아합 왕에게 협박당한 미가야

뇌물이 통하지 않는 것을 알았는지, 미가야에게는 협박을 했다. 그를 데리러 간 정권의 직원들이 미가야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것 보시오. 다른 예언자들이 모두 한결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였으니, 예언자께서도 그들이 한 것 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오.”(13) 다수의 어용에 굴복하라는 뜻이었다. 얼마나 가기 싫고 심란했을까?

왕궁에 이르자 코미디가 벌어진다. 뜻밖에도 미가야가 ‘예스’를 외친 것이다. 집에 있는 가족이 떠올라 잠시 양심을 내려놓았을까? 아합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자기가 승리할 것이라는 미가야의 예언에 그만 당혹해한다. 그리고는 진실을 털어놓으라고 다그친다. 결국 미가야는 진실을 털어놓는다. “주님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여기에 있는 임금님의 예언자들의 입에 들어가게 하셨으니, 주님께서는 임금님께 이미 재앙을 선언하신 것입니다.”(23) 다른 예언자들의 말은 거짓이라는 말에, 동료 예언자 시드기야가 분노의 한방을 미가야의 뺨에 날렸다. 그리고 아합은 이렇게 외쳤다. “내가 명하는 것이니, 이 자를 감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빵과 물을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이라고 하여라.”(27) 맞은 것도 아프고 굶을 것도 걱정이지만, 인간 미가야는 당연히 가족 걱정을 했으리라. 전쟁 동안 어떻게 살련 지.

활에 맞아 죽은 아합 왕

미가야의 이 이야기는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었다. 당시 예언자들 사이에 큰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학자들은 성경 곳곳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누가 참이고 누가 거짓 예언자인지를 두고 서로 간에 다툼이 있었다. 다들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는데, 예언자들의 말이 서로 달랐다. 어느 예언이 참이고 거짓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성경은 그저 예언이 이루어지면 참이고 아니면 거짓이라고만 가르친다.(신명기 18:22) 한 없이 기다려야 답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가야의 이야기에서는 빨리 그 결과가 드러났다.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한 아합이 전쟁을 나갔고, 그만 활에 맞아 죽은 것이다. 왕궁에 있던 400명의 예언자는 거짓이었고 이에 대항했던 한 명 미가야는 참이었다.

당시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들의 성격은 이렇게 구분 지어진다. 거짓 예언자들은 다수였고 권력에 기생하는 어용이었다. 학자들은 이들을 ‘구원 예언자’라 부른다. 이름만 듣기 좋을 뿐, 사실 뭐든 ‘잘 된다’며 권력에 아부하던 자들이었다. 반면 참 예언자들은 극소수였고, 부패 정권의 핍박을 받으며 정치 핵심에서 밀려나 있던 자들이었다. 권력을 향해 살벌한 예언을 자주 외쳤기에 이들은 ‘멸망 예언자’라 불린다.

한스 쇼이펠라인의 1517년 목판화. 거짓 예언자를 조심하라고 제자들에게 경고하시는 예수님.

사실 멸망 예언자들의 예견대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동방의 제국으로부터 멸망당하고 말았다. 그들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문제는 긴 시간이 흐르고 그들이 죽고 난 후에야, 실제로 나라가 망했다는 것이다. 살아있던 동안에는 그들이 참 예언자임을 밝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참과 거짓 예언자들의 삶은 너무 대조적이었다. 소수의 참 예언자들은 늘 똘아이(?) 취급받으며 도망다니듯 살아야 했다. 늘 아내와 자녀에게 미안했을 삶이다. 반면 거짓 선지자들은 인기도 많고 살기도 편했으며,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었다.

멸망 예언자만 성경에 남아

나라가 정말로 망하자, 과격한 반사회적 인물이라고 여겨졌던 참 예언자들의 어록이 다시 부각되었다. 가까스로 보존했던 그들의 예언은 성경에까지 안착하게 되었다. 이들이 바로 성경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예언서를 남긴 아모스, 호세아, 미가 등등이다. 다수의 어용 예언자들은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졌다. 살아있을 때 가족과 함께 잘 먹고 잘 살았고, 넉넉하기에 출판사(?)에서 책도 많이 출간했겠지만, 그들의 글은 단 한 줄도 성경에 남아있지 않다.

아합이 죽고 나서 미가야는 어떻게 되었을까? 왕의 죽음에 침통하던 정권이 그를 곧장 죽였을까?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지만 성경은 더 이상의 정보를 전하지 않는다. 성경 밖의 전승에 의하면, 예언자들의 말로가 대부분 불우했다. 왕궁 예언자여서 화려하게 살았던 이사야마저도 톱으로 잘려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미가야가 어떤 죽음을 당했는지, 혹 빨리 은퇴하고 농사짓고 살았는지, 아니면 변절자가 되어 왕궁에 취직했는지 알 길은 없다.

살아서 평안하고자 한다면, 죽은 뒤 부끄러울 수 있다. 살아서 불우했지만, 죽어서는 영원히 빛을 남기는 삶이 있다. “의인의 하찮은 소유가 악인의 많은 재산보다 나으니, 악인의 팔은 부러지지만, 의인은 주님께서 붙들어 주신다.”(시편 37:16-17)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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