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구나! 생생과학]

#1
실 단면이 다양한 섬유 사이엔
틈이 생기며 땀 빠르게 흡수, 배출
#2
온도 오르면 액화, 기화하여
열 흡수하는 물질도 사용
#3
체감 온도 2~3도 낮추는 효과
세탁하면 기능 조금씩 사라져
흡한속건섬유 단면.

낮 최고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그 어느 때보다 땀을 많이 흘리는 요즘, 의류업체들은 ‘더 시원하게!’를 외치며 앞다투어 냉감(冷感) 소재나 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내놓고 홍보하고 있다. 더위에 지친 소비자들도 조금이라도 더 시원한 옷을 찾아 나서고 있어 아웃도어 업체 블랙야크는 7월 냉감 소재 제품 판매 증가율이 지난달 보다 약 30%포인트 급등했다. 냉감은 말 그대로 차가운 감촉이다. 옷을 입으면 조금이라도 더 더워질 것 같은데 반대로 시원해지는 냉감 소재 속에 숨은 과학을 살펴본다.

냉감 소재는 화학반응을 통해 만든 고분자 물질을 가늘고 길게 뽑아 만드는 화학 섬유(실)에다 여러 가지 기능을 보유한 첨가재를 혼합해 만든다. 여러 의류업체들이 저마다 냉감 신제품을 출시했다며 성능을 홍보하지만, 제조기법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먼저 여름철 대표적 냉감 기능성 제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소재가 흡한속건(洽汗速乾) 섬유다. 흡한속건 실은 이름 그대로 땀을 빠르게 흡수하고 건조시키는 성질이 뛰어나다. 그 비밀은 바로 실의 단면에 있다. 단면이 원형인 면과 달리 흡한속건 실은 단면이 열십자 모양이나 직사각형, Y자 모양, 클로버 모양 등 여러 형태를 띤다. 이런 실로 옷을 만들면 면보다 섬유 사이에 굴곡이 많이 생기고, 굴곡이 있는 부분마다 모세관이 만들어져 모세관현상에 따라 더욱 빠르게 물(땀)을 흡수할 수 있다. 모세관현상은 가느다란 유리관을 물속에 넣으면 유리관의 안쪽을 따라 물이 따라 올라오는데, 이처럼 매우 가는 유리관 같은 공간의 벽을 통해 액체가 따라 올라오는 현상을 말한다. 흡한속건 실은 또 굴곡이 많다 보니 실 단면 표면적이 원형인 면보다 훨씬 넓다. 면적이 넓을수록 공기와 닿는 면적도 넓어져 더 빠르게 건조될 수 있다. 이 때 액체 성분인 땀이 기체로 증발되면서 주위의 열을 빼앗아가는 흡열반응이 일어나 몸은 시원하게 느낀다. 물(땀) 1g이 증발할 때 기화열은 540㎈이다.

박성우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의류소재연구본부장은 “면은 땀 흡수율에서 흡한속건섬유 보다 뛰어나지만, 물과 친한 성질을 띠어 빨리 증발시키지 못해 축축한 느낌 때문에 불쾌감을 주는 반면 합성 화학섬유는 대부분 흡수율은 조금 떨어지지만, 발산이 매우 빠르다”고 말했다.

흡한속건 섬유는 땀에 젖은 옷을 빠르게 말려 몸에 달라붙지 않게 해 쾌적한 착용감이 필요한 스포츠웨어나 언더웨어에 많이 사용된다. 이 더운 여름날 야외 활동 때 굳이 양팔에 흡한속건 섬유 재질의 ‘쿨토시’를 착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일정 온도에서 고체에서 액체로, 액체에서 고체로 변하며 주변 에너지를 흡수하고 방출하는 상변환물질(Phase Change MaterialㆍPCM)을 첨가한 섬유도 냉감 소재로 잘 이용된다. 화학섬유에 PCM 성능을 갖춘 첨가제를 넣어 실을 뽑기도 하지만, 주로 PCM원료를 마이크로캡슐에 넣어, 천에 후(後) 가공을 통해 냉감 기능을 추가한다. PCM으로 사용되는 자일리톨 파라핀 등의 물질이 열에 민감해 제작과정에서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PCM을 응용한 코오롱스포츠 ‘아이스팩(ICEPACK)’은 파스나 쿨링 화장품 등에 사용돼 시원한 느낌이 들게 하는 '캄포(Kamphor)'라는 물질을 이용했다. 녹나무에서 추출한 캄포를 3~5㎛(1㎛=0.0001㎝) 크기로 캡슐화하여 사람의 피부에 닿는 의류의 안쪽 면에 프린트 찍듯 인쇄한다. 이 옷을 착용해 땀을 흘리거나 몸이 옷이랑 닿으면 캡슐이 터지고, 땀과 반응하거나 팽창된 피부 기공으로 캄포 성분이 들어가 청량감을 준다. 코오롱스포츠 관계자는 “티셔츠 속옷 남방 팬츠의 피부 면에 아이스팩 가공을 하는데, (코팅 시 필요한) 실리콘 유연제 사용이 불가능해 작업이 까다롭다”며 “세탁을 20회 할 때까지 냉감 기능이 유지된다”고 말했다.

자외선 차단 섬유는 이산화규소나 산화타이타늄 등이 섬유 내부에 첨가돼 자외선을 흐트러뜨리는 역할을 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자외선이 ‘실리카’라고 불리는 모레 성분인 이산화규소와 머리카락보다 가는 금속인 산화타이타늄에 부딪히면 산란돼 피부에 닿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고농도 열전도 첨가제를 복합해 피부 열을 대기로 방출하는 냉감 기능을 첨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냉감 소재를 활용한 옷은 정말 시원할까. 한국섬유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의복 내 쾌적성의 주요 요인은 ▦의복과 피부표면 사이 공간의 온도 습도 기류 ▦의복으로부터 피부가 받는 압박감 ▦피부가 느끼는 감각 등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의복 내 온습도가 쾌적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인데, 보통 온도는 섭씨 32±1도, 습도는 50±10%RH, 기류는 초당 25±15㎝일 때 사람은 쾌적하다고 느낀다. 박성우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의류소재연구본부장은 “날씨가 30도일 때 보통 냉감 소재의 의류를 입으면 2~3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며 “2도가 큰 효과가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직장인들이 한여름 냉감 소재 옷을 입어 실내 냉방온도를 2도 정도 높일 경우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60만~290만톤 줄이는 경제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냉감은 차가운 느낌이란 말처럼 주관적인 감각에 크게 좌우되는 데다 영구적이지 않는 냉감 효능때문에 소비자들이 기대한 만큼 만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코오롱스포츠 관계자는 “PCM 섬유의 경우 세탁하게 되면 조금씩 냉감 기능이 약해진다”고 말했다.

냉감 기능 검증이 의무화되지 않은 것도 소비자들에게 혼란스럽다. 의류업체들이 자체 연구개발로 냉감 소재를 활용한 옷을 내놓으면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 등과 같은 공인 기관에서 실제로 냉감 효과가 있는지를 테스트한다. 그러나 이 테스트는 권고사항이라 강제성이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 기업의 홍보문구를 그대로 믿기 어려운 이유이다.

섬유 가공염색 전문연구기관인 다이텍연구원의 윤석환 총괄기획본부장은 “테스트는 일정 기준을 정해 합격 불합격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냉감 효과를 수치화해 의뢰한 기업에 결과를 통고한다”며 “기업들이 이런 실험 결과를 앞세우며 ‘냉감 기능이 뛰어난 상품’이라고 강조만 하지 그 수치가 얼마인지 공개하지 않는 데다, 설사 수치를 공개하더라도 소비자가 얼마 정도의 효과가 있는지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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