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유명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홍보 차 지난 4월 한국을 찾았을 때 홍역을 치렀다. 몸을 앞으로 숙인 뒤 두 손을 모으고 불교식 합장 인사를 반복한 것이 문제였다.

구설에 오른 데는 그의 고집 탓이 컸다. 컴버배치는 출국장에서 그의 합장이 한국 전통 인사가 아니라고 외치는 한국 팬에 고개를 흔들며 “아니, 난 내가 뭘 하는지 알고 있어”라고 답해 논란을 키웠다. 그는 입국 할 때도 합장 인사를 했다. 한국 팬과 영화 관계자들이 합장은 한국의 인사 방식이 아니라고 수 차례 언급을 해줬음에도 말을 듣지 않았다.

컴버배치는 불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불교 문화에 심취했다고는 하지만 불교가 국교도 아닌 한국에서 합장 인사를 고집하는 게 좋게 보일 리만은 없다. 심지어 컴버배치는 기자회견에서 주먹을 감싸 쥐고 ‘포권’ 인사를 했다. 불교식 인사가 논란이 되자 이번엔 중국식으로 인사를 한 것이다. 결국 한국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컴버배치의 인사 해프닝은 서양의 동양에 대한 고정관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인도와 중국 혹

은 일본식 예법이 아시아 문화의 전부인 줄 아는 편견이다. 웃고 넘길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아니라고 하는데도 밀고 나간 그의 오만이 섬뜩했다.

컴버배치 얘기를 꺼낸 건 요즘 연예계에서 오만의 물결이 가득해서다. 진원지는 지난달 사흘 동안 18만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 최대 음악 축제로 자리 잡은 울트라뮤직페스티벌(UMF)과 ‘어벤져스’ 시리즈 등 할리우드 마블 스튜디오 작품을 배급해 영화 시장을 휩쓸고 있는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다.

UMF는 지난달 미국 힙합의 산증인이라 불리는 아이스 큐브를 무대에 세웠다. 큐브는 국내에서는 물론 미국 내 한인 1세대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1991년 낸 노래 ‘블랙코리아’로 반한 감정을 부추겼다. 같은 해 3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한국인이 흑인 소녀가 음료수를 훔치려 했다며 다투다 총으로 쏴 소녀를 숨지게 해 흑인 사회에서 한국인에 대한 적의가 들끓었을 때 발표해 파장이 더했다. 이젠 한국 힙합의 대부가 된 래퍼 타이거JK가 당시 이 노래를 듣고 분해 한국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 ’콜 미 타이거’를 낸 일은 유명하다. ‘블랙 코리아’가 나오고 5개월이 지난 이듬해 4월 로스앤젤레스에선 흑인 폭동이 일어나 한인 타운이 쑥대밭이 됐다.

이런 큐브를 굳이 국내 무대에 세워야 했을까. 그의 출연에 비판적 의견이 나온 것을 두고 UMF코리아에 입장을 묻자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자세한 내용을 파헤쳐가며 캐스팅을 하지는 않았다” “큐브의 과거 언행이 2018년 우리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큐브가 한인회에 가서 사과한 것으로 아는 데 왜 옛일을 들추며 감정 낭비를 하느냐는 얘기였다. 한국 정서에 대한 몰이해와 무례를 ‘쿨’할 필요가 있다며 넘기려는 적반하장의 끝장판이 따로 없었다.

영화계 사정도 다르지 않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오역 논란으로 관객들의 성토가 쏟아졌는데도 한번도 공식 입장을 내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았다. 논란이 거세지자 최근 개봉한 ‘앤트맨과 와스프’에선 엔딩 크레디트에 번역가 이름을 빼버린 것에서 모자라 누가 번역했는지조차 함구했다. 번역에 집착하지 말고 주는 대로 보란 오해를 사기 충분한 처사다. 오죽 화가 났으면 관객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찾아가 ‘외화 번역가 공개를 의무화해 달라’며 신문고를 울렸을까.

방탄소년단은 지난 5월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노래 ‘페이크 러브’의 가사를 바꿔 불렀다. 한국어 가사 ‘니가’를 ‘결국’으로 노래했다. 미국 정서를 고려해서였다. 니가란 한국 발음이 흑인을 비하하는 ‘니거(nigger)’로 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고 한다.

영향력이 클수록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의 책임도 커져야 한다. UMF코리아와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는 모두 미국에 본사를 둔 영향력 있는 외국계 회사다. 이들은 언제 오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양승준 문화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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