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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섭기자의 교과서 밖 과학]인류 진화 이끈 육식, 쇠퇴까지 앞당길까

입력
2018.07.28 10:00
수정
2018.08.05 22:1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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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중독’이 불러온 환경 파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쯤 되면 ‘고기 중독’에 가깝다. 전 세계 고기 생산ㆍ소비량은 빠르게 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961년 7,136만톤이던 전 세계 고기 생산량은 2013년 3억1785만톤으로 4.5배 늘었다. 이 기간 고기 소비량도 선진국ㆍ개발도상국 구분 없이 모두 뛰었다. 중국의 1인당 고기 소비량은 1961년 3.79㎏에서 2013년 61.82㎏으로 16배 이상 치솟았다. 미국(88.65㎏→115.13㎏)ㆍ독일(63.85㎏→85.94㎏)ㆍ영국(63.85㎏→85.94㎏)에서도 1인당 고기 소비량은 확대됐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 역시 1970년 1인당 고기 소비량이 5.2㎏에서 2016년 49.5㎏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인류의 육식은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날카로운 석기 등을 토대로 고대 인류가 260만~340만년 전부터 고기를 먹었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다. 육식이 보편화한 건 지금으로부터 150만년 이전 정도로 추정된다.

국민 1인당 육류 소비량 변화
국민 1인당 육류 소비량 변화

스페인 콤플루텐세대학 연구진은 2012년 6월 국제학술지 ‘공공과학도서관(PLoS One)’에 “인류가 최소 150만년 이전부터 고기를 규칙적으로 먹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발견된 150만년 전 유아(2살 이하 추정)의 두개골 파편에서 골 조직이 스펀지처럼 변하는 질병의 흔적을 찾았다. 빈혈과 관련된 이 질병은 육류에 풍부한 철분ㆍ비타민B가 부족하면 발생한다. 이들은 “해당 유아가 젖을 떼고 식단을 바꾸는 과정에서 육류 섭취를 못 했거나, 육류를 제대로 먹지 못한 어머니의 젖에 의존하다가 질병에 걸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대 인류가 육식을 즐겼음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콤플루텐세대 연구진은 “육류를 먹는 식습관은 고대인류가 이미 사냥꾼이었음을 뜻한다”며 “에너지가 높은 육류 섭취가 없었다면 인류는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큰 뇌를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약 28만~35만년 전 아프리카 북부 모로코 지역에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의 머리뼈와 치아 화석이 발견된 곳 인근에선 가젤과 얼룩말, 버팔로의 동물 뼈가 함께 나오기도 했다. 오래전에 시작한 육식이 인류의 진화ㆍ번성을 이끌었다는 얘기다.

육식은 ▦수유 기간ㆍ출산 터울 단축 ▦더 많은 에너지 확보 ▦도구 사용 ▦언어 발전 등을 통해 인류 진화를 도왔다. 가령 인간과 가장 가까운 잡식성 동물인 침팬지의 최장 수명은 60년, 모유 수유 기간은 4, 5년에 달한다. 인간은 평균 수명이 침팬지보다 길지만 수유 기간(평균 2년 4개월)은 오히려 짧다. 스웨덴 룬드대 연구진은 “육식이 수유 기간과 출산 터울을 줄여 인류가 진화ㆍ번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연구결과를 2012년 4월 PLoS One에 발표했다. 육식으로 영양분을 더 많이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젖을 먹이는 기간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출산 터울도 짧아진다. 실제 포유류 70종의 먹이 습성을 비교한 결과 육식성 동물이 초식성ㆍ잡식성 동물보다 젖을 떼는 시기가 빨랐다. 인간은 에너지의 20% 이상을 고기에서 얻어 육식성으로 구분됐다. 사냥을 위해 무리 지어 살게 되자 언어가 발전했고, 도구 개발ㆍ사용법도 터득하게 됐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고기를 잘게 썰어 먹은 것도 인류가 진화하는데 한몫했다. 잘게 썰어 먹으면 고기를 씹는데 드는 에너지와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또한 부피 대비 면적이 커지기 때문에 같은 양의 고기를 먹어도 소화효소가 고기를 더욱 잘 소화할 수 있다. 그만큼 에너지도 더 많이 얻게 된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2016년 3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이 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인류의 뇌가 커질 수 있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기 중독의 끝은 결코 달콤하지 않다. 오래전엔 인류의 진화를 이끌었지만 현재는 오히려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변화 ▦산림 파괴 ▦수질ㆍ공기 오염 ▦물 부족 등은 고기를 향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가축 사육 수를 크게 늘린 결과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2014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현재와 같은 추세대로 육류 소비가 계속되면 가축 사육ㆍ사료작물 재배에 사용되는 토지가 2009년보다 42% 확대되고, 그로 인해 열대우림의 10%가 향후 35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축이 내뿜는 메탄가스 방출 증가, 산림 개간 등으로 식량 생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도 2050년까지 80% 늘어날 것으로 나왔다. FAO는 축산 부문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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