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3인 ‘노년층 진입 앞둔 베이비붐 세대’ 좌담

“윗세대처럼 꼰대 되긴 싫은데
실제론 꼰대적 이야기가 전부
후배들에 가르치려 하지 말고
배우며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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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뇌성마비장애인 직업재활센터 나로센터의 카페에서 고영직 문화평론가,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왼쪽부터)이 노년을 맞이하는 베이비부머 세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0년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자)의 선두주자가 고령의 기준점인 65세에 다다르는 해다. 전체 인구의 14.3%에 달하는 720만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층으로 점점 다가섬에 따라 이들이 어떤 노년을 맞이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인 모색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를 연구한 학자들은 “이들은 ‘노인’으로 불리며 경로석 양보를 받기도 싫고, 윗세대처럼 ‘꼰대’로 불리기도 싫은 상태에서 노년을 맞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행복한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 베이비붐 세대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지난 23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뇌성마비장애인 직업재활센터 나로센터에서 고영직 문화평론가, 사회학자인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을 만나 베이비붐 세대의 노년 준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지난 1월 베이비붐 세대 3인의 생애를 듣고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라는 제목의 책을 공동으로 펴냈다.

사회(박소영 기자)= 베이비붐 세대는 기존 세대와 어떤 점이 다를까.

김찬호= ‘통기타, 생맥주, 청바지’로 대표되는 청년문화가 베이비붐 세대에서 나왔고, 처음으로 세대의식이 형성됐다. 비록 대학 진학 비율은 10%대에 머물렀지만 상징성이 크다. 베이비붐 세대는 아무래도 규모가 크다 보니 사회적 연대가 강하고 이 네트워크가 계속 삶의 자원으로 작동하는 듯하다. 벤처 붐도 베이비붐 세대가 주축이었고,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온 윗세대와 달리 역사를 주도해 왔다는 역사의식이 충만하다. 반면 이들의 구체적인 생활을 살펴보면 윗세대와 다르지 않은 부분이 꽤 많다. 가족관계나 가부장적인 의식 등이다. 이런 점에서 윗세대를 극복했냐고 묻는다면 또 그렇게 답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사회= 베이비붐 세대는 분명 소외 문제가 두드러진 지금의 노년층과 다른 황혼기를 꿈꿀 것 같다.

조주은= 베이비붐 세대 여성들이 바라는 노년은, ‘밥 안 하는 삶’이다. 이들은 친구들이 늘 있는 데다 지역 주민들과도 네트워크가 활발한 경우가 많아 노년이 돼도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퇴직하고 집에 있는 이른바 ‘삼식이(세끼 찾아 먹는 남편)’ 아빠들 밥 해주고 돌봐주는 데 상당히 부담을 느끼고 있다. 평생 시부모를, 그리고 간혹 친정 부모 중 하나를 보살펴야 하고 남편과 자식을 돌봤으니 60이 넘어 자유롭고 싶다는 갈망이 크다는 걸 느꼈다.

김찬호= 이들은 스타일에 대한 욕망이 있지 않나 싶다. 1970년대 자유주의 사상을 맛보면서 ‘개인’을 처음으로 체험했다. 개성과 자유를 갈망하지만 이후 이를 실현시킬 자기 콘텐츠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겉멋으로 갈 위험도 있다. 꼰대는 되기 싫은데 실제로는 꼰대적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는 상태에 처하는 것이다. 윗세대는 사라져가는 데 대해 불안해하면서도 순응해가는 측면이 있는데 베이비붐 세대는 그렇게 늙어 가려하지 않는다.

고영직= 베이비붐 세대들은 경제적 고민도 무척 깊다. 최근 평균 퇴직자가 55세 정도인데, 65세가 돼야 국민연금이 나온다. 10년간의 재정절벽 상태라 그 기간을 너무 일자리나 경제적인 문제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김찬호= 이들의 경제적 공포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은 고도성장 한가운데에서 쭉 성장해 왔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일하면 차가 커지고 집이 커지는 상황을 누려왔는데 노년기 들어설 초입에 경제가 저성장 국면을 맞이했다. 여기서 베이비붐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다. 자신의 필요를 최소화하고 라이프스타일을 단순하게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의 삶에 적응되지 않을 텐데, 이 부분은 논의가 많이 되지 않았다.

사회= 심각한 노인문제 중 하나가 소통부실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이 됐을 때 이들은 후배 세대와 격의 없이 어울리는 소통이 가능할까.

김찬호= 한 회사에 사원들 대상 강의를 간 적이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나이인 사장이 들어왔다. 사실 기업 강의가 가장 힘든 건 CEO가 있으면 웃어야 할 타이밍에 웃지 않는 일이다. 먼저 CEO 주변에 사원들이 앉질 않는다. 그 회사의 사장도 진보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원들은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더라. 또 사장은 제일 마지막에 들어왔는데, 그게 다름 아닌 구태다. 미리 와 직원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데 마지막에 들어오고 사원들은 다 떨어져 앉아있어 강의가 힘들었다. 지금은 권위주의가 통하지 않는 시대인데, 베이비붐 세대는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면 어깨에 힘을 빼야 하는데, 그러려면 ‘취약성 기반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자신의 찌질함, 약함을 먼저 드러내고 대화를 시도하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

고영직= ‘대화적 대화’라는 말이 있다. 계속 말을 이어나가는 대화를 가리킨다. 영어에서는 ‘as if’ 가정법이라고도 한다. ‘내가 네 입장이라면, 이해가 된다’는 방식으로 말하는 게 대화적 대화 방법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후배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대화적 대화 방법이 더 필요하다.

사회= 노년을 맞이할 베이비붐 세대를 위해 어떤 조언을 해 줄 수 있을까

조주은= 노년이 풍요로우려면 첫 번째로 자기 콘텐츠가 필요하다. 노후를 걱정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 가족, 직장 관계 말고는 아무런 관계나 특기나 취미, 여가생활이 없는 분들이 있다. 그럼 ‘이들은 퇴직하면 뭐 하고 살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 중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결국 돈 없이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또 하나는 취미생활의 필요성이다. 문화예술 콘텐츠를 갖춘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걱정 없이 산다. 오히려 여기서 앞으로 먹고살 길이 나올수 있다.

고영직= 지난해 50플러스 서부캠퍼스에서 진행한 ‘인생학교’에서 만난 베이비붐 세대들은 그동안 해 보고 싶었는데, 현실적 한계로 인해 못해본 것들을 해보고 너무나 즐거워했다. 이들을 보면서 ‘하마터면’이라는 부사가 떠올랐다. 하마터면 내가 놓치고 지나가 버렸을 뻔했던 것들이 있더란 거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안 해본 것에 도전하고, 한 번도 되어보지 못한 자기 자신이 되어보는 일. 그걸 하려면 한 줌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 용기를 내면 자기가 이때까지 알았던 프레임을 넘어 정신의 운동장이 넓어진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전혀 다른, 낯선 것을 보더라도 배척하는 대신 포용할 수 있다.

김찬호= 베이비붐 세대는 선배세대로서 후배를 위한 공공성을 생각해야 한다. 나도 나이가 60세로 향해가면서 언제 가장 죽음으로부터 덜 공포를 느끼고 인생이 덜 허무하게 느껴지냐면 바로 후배를 키울 때다.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후배에게 봉사하고 씨앗을 뿌릴 때 뿌듯하다. 우리는 자꾸 후배를 가르치려 하는데, 그게 아니라 그들과 공통의 경험을 가지면서 배우고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조주은= 보통 어르신 세대의 부정적인 모습을 생각하면 버럭 화를 내는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분연히 일어서는 정의로운 분노와 다른, 일상의 버럭 문화가 지금 베이비붐 세대 남성들에게도 있다. 그런데 그건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전략이다. 버럭 문화의 본질은 자기 열등감, 자기 열등감의 뒤에는 자기 성찰 부족이 있다. 자기가 왜 저 말에 대해 화가 날까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 열등감을 직면하고 내면에 병들어있는 자아를 어루만지는 과정이 이뤄져야 ‘버럭’ 성질이 고쳐진다고 생각한다. 베이비붐 세대에서 그런 성찰이 이뤄진다면, 세대 간 소통 문제만 아니라 남녀 간 성별갈등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않을까 싶다.

정리∙사진 =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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