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문건 첫 폭로한 민주당 이철희 의원

합참 계엄과에 지시하지 않고
보안 우려해 기무사에 맡긴 게
실행 의도가 있다는 걸 보여줘
군이 병력 동원 계획을
대통령 모르게 세울 수 없어
나중에라도 청와대에 알렸을 가능성
합참의장이 군령권 갖고
장관은 군정권만 갖도록 조정
문민 국방장관 체제 대비해야
기무사 계엄 문건을 처음 폭로한 이철희(왼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충재 논설위원과 계엄 문건 사태의 전개과정과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배우한 기자 /2018-07-20(한국일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 시 군이 촛불시위대를 무력 진압한다는 내용의 계엄령 문건이 공개돼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나 가능했던 반민주적이고 초헌법적인 발상도 놀랍지만 그 한가운데에 악명 높은 보안사의 후신인 기무사가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것도 충격적이다. 특별수사단 수사에서 실행계획 여부와 청와대의 관련성 등이 밝혀지겠지만 대통령의 호위무사 노릇을 한 기무사, 나아가 군 수뇌부 개혁이 불가피해졌다. 여기에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판단 잘못까지 겹쳐 혼란스런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문건을 처음 입수해 폭로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계엄령 문건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은 2016년 말 촛불시위가 한참 진행될 때 이 의원이 위수령에 대해 질의해서 답변자료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때 왜 그런 질의를 한 건가.

“전혀 별개다. 내가 말한 건 위수령이 이미 사문화한 법이니 폐지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차원이었다. 그런데 그 후 2017년 2월24일 국방부에서 가져온 두 건의 문건 중 하나는 위수령 폐지에 대한 법률적 검토였고, 다른 문건은 ‘질서유지를 위한 병력 출동 검토’라고 돼있어 의아했다. 거기에 ‘논란을 피하려면 계엄령이 가장 낫다’고 돼있기에 국방부에 물어보니 ‘오해 소지가 있네요’라며 얼버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과 지금 공개된 계엄령 문건이 같은 종류인 것 같다.”

-이번에 공개한 8쪽짜리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은 어떻게 입수한 건가.

“지난 3월16일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계엄 문건을 보고했다는 얘기를 4월초에 어디선가 전해 들었다. 송 장관에게 문건을 달라고 했더니 차일피일 미루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주겠다고 했다. 그러다 6월 말에 장관이 주겠다고 연락해왔고 7월2일 받아서 5일에 공개했다. 알고 보니 6월28일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을 내게 건네준 것이다.”

-이 의원이 2월24일 보고받은 문건과 이번에 공개된 문건이 관련돼 있다고 보나.

“두 건이 연결돼 있다고 본다. 2월24일 가져온 문건은 법무관리관실이 작성한 문건인데 한 전 장관이 이것을 보고 기무사에 세부계획을 세워보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 계엄 관련 문건을 처음 작성한 정확한 시점은 모르나 촛불시위가 시작된 2016년 11월쯤부터 한 전 장관과 기무사 간에 여러 번 지시와 보고가 오갔고 계엄 문건이 계속 버전 업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관건은 계엄 문건이 과연 실행 계획이었는지, 아니면 비상사태 대비용이었는지 하는 것이다.

“청와대가 공개했듯이 합참 계엄과에 매뉴얼이라 할 수 있는 ‘계엄실무편람’이 비치돼 있다.만약 한 전 장관이 합참에 ‘이번 상황에 맞게 업데이트 하라’고 했다면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기무사에 맡긴 것이 의구심을 낳는다. 기무사는 계엄이 발동하면 일종의 수사활동인 합동수사본부를 담당할 뿐이다. 실행 의도가 있으니 보안을 우려해 은밀하게 기무사에 맡겼다고밖에 볼 수 없다. 세부계획에 여소야대 국회가 계엄 해제 표결에 나서지 못하게 방법을 제시한 것은 단순한 비상사태 대비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다.”

-보수 야당에서는 군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은 의당 해야 할 일 아니냐고 주장한다.

“다른 건 둘째치고 문건에 보면 부대동원 계획이 자세히 명시돼 있다. 특히 전방부대를 빼서 수도권 진압에 동원한다고 돼있는데 그렇게 안보를 중시한다면서 이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탄핵 후 비상사태 대비라는 논리는 노무현 정부 때와 비교하면 얼마나 허구인지가 드러난다. 그때 과연 군이 계엄을 준비했는지 묻고 싶다.”

-국회의원 체포 등의 문건 내용을 보면 과연 한 전 장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의문이 생긴다. 배후에 누가 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드는데.

“계엄령은 대통령 재가를 받아야 하는 사안인데 군이 대통령 모르게 일방적으로 병력 동원 계획을 수립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 사실을 나중에 청와대가 알고 쿠데타를 하려 한 것 아니냐고 문제 삼으면 어쩔 건가. 누구 지시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중에라도 청와대에 알려줬을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정권은 탄핵이 기각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오리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 경우 막을 방법은 군밖에 없다는데 생각이 미쳤을 수 있다.”

-송영무 장관이 안이하게 대처한 데 대한 책임론도 커지고 있다.

“전해듣기로는 기무사령관으로부터 계엄 문건을 보고받은 송 장관이 상부(청와대를 의미)에 보고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통상 기무사의 경우 국방부와 청와대에 동시 보고를 하거나 청와대에 먼저 하는 게 관례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해 기무사에서 의아해했다고 한다. 송 장관은 나중에 기무사 개혁에 활용하려는 생각이 강했던 모양인데, 파장이 이토록 커질 줄 몰랐던 것 같다.”

-송 장관의 늑장보고가 원인이지만 청와대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좀 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가 청와대에 문건을 정식 보고한 것이 6월28일이고 내가 문건을 공개한 것은 7월5일이다. 그 사이 청와대가 긴박하게 움직였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에 긴급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가장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곳이 국방부의 보고 창구인 안보수석실과 비서실인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문제다.”

-이 의원이 폭로한 기무사 문건 가운데 ‘세월호 사찰’ 문건도 큰 충격을 줬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 이후에도 버젓이 사찰을 해왔다는 얘긴데, 기무사가 사실상 정권의 호위무사였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정치공작 측면에서 기무사가 국정원보다 한 수 위다. 국정원은 워낙 감시의 눈이 많으니까 그나마 신경을 쓰는데 기무사는 은밀성이 보장되니 사령관이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구조다. 국정원 댓글 공작도 아이디어는 기무사가 제공했다. 광우병 촛불시위 후 기무사가 청와대에 제안한 것을 받아들여 국정원과 기무사, 사이버사령부, 경찰 등에 역할을 분담한 것이다. ‘국정원 위에 기무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기무사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불가피해졌다. 일각에선 국방부의 외청으로 독립시키자는 얘기도 있던데, 어떤 방향이 바람직한가.

“‘국군정보청’으로의 독립은 말이 안 된다. 청장이 차관급인데 그러면 지금 기무사령관 계급인 중장보다 더 높아진다. 인원을 대폭 줄이고, 순수 보안ㆍ방첩부대로 역할을 재조정하자는 데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만 일선 부대 지휘관 동향파악과 관련해서는 양면성이 있다. 연대장급 이상의 인사자료 필요성을 주장하는 청와대 입장도 일리가 있지만 기무사가 악용하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자료 의존도가 크다면 입법화를 통해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는 게 말썽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

-기무사 개혁방안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국방부의 갈등설이 있지 않았나.

“송 장관은 거의 해체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기무사를 다 깨서 각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할 정도로 각오가 세다. 문제는 그럴 경우 기무가 각군 총장 예하로 가는데, 감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부작용이 있다. 청와대가 우려하는 것도 바로 그런 부분이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기무사를 지키려고 하는 그런 차원은 아니다.”

-송 장관과 기무사 간부들과의 공방을 보면서 군 수뇌부의 민주의식이나 헌법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차원의 개혁도 시급하다고 보는데.

“송 장관의 태도도 문제지만 기무사의 조직 지키기 저항이 만만치 않다. 이번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군 수뇌부의 인식은 국민이 기대하는 군의 모습과 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보수정권 10년을 거치면서 군은 계속 보수가 정권을 잡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다 촛불시위를 거쳐 대통령이 탄핵되고 진보정권이 들어서자 ‘이게 뭐지’라며 혼란이 왔고, 이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느끼는 과정이다. 물론 선진국처럼 ‘군인은 제복 입은 시민’이라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단시일 내 인식의 전환은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군의 개혁을 가속화하는 수단으로 문민 국방장관 체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국방장관은 ‘군정권’과 ‘군령권’을 모두 갖고 있다. 군 전체의 통합사령관인 셈인데 권한이 비대하다. 장관 궐위 시 차관이 대행하도록 돼있는데, 군 서열로 보면 각 군의 대장 8명이 차관보다 더 높게 돼있는 것만 봐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문민 국방장관이 들어설 때에 대비해 장관은 군정권, 합참의장은 군령권을 갖도록 조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남북관계 등을 고려할 때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지만 가급적 빠를수록 좋다. 청와대도 미리 문민 국방장관 체제에 대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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