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에 대결구도
법원, 양승태ㆍ박병대 압수수색 영장
2번째 기각해 ‘가이드라인’ 뒷말도
검찰 “법원이 제 식구 감싸”반발
이례적으로 수사 과정까지 공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6월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파문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압수수색영장 청구(검찰)→기각(법원)→출국금지 공개(검찰)→2차 압수수색영장 청구(검찰)→기각(법원).’

전직 사법부 수장까지 노리는 사상 초유의 수사를 놓고 검찰과 법원이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각자 쥔 무기를 십분 활용하는 공방전에서 당장은 법원이 우세한 것처럼 보이지만, ‘적법(適法)’이라는 명분 아래 결과적으로 수사 속도를 늦추는 법원의 ‘몽니’를 바라보는 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만 커지는 형국이다.

허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5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김모 전 기획제1심의관 등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자들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허 부장판사는 “소명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기각하면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추가 압수수색영장만 발부했다. 이들의 공모 과정 입증에 필요한 이메일 보전조치영장 또한 기각했다. 허락할 수 있는 수사의 최종 단계는 ‘임 전 처장까지’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읽힌다.

그래픽 강준구 기자

검찰은 “법원이 제 식구를 감싸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례적으로 수사 과정과 영장 기각 내용까지 공개했다. 대법원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임의제출한 410개 문건과 임 전 차장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이동식저장장치(USB), 임 전 차장 등이 재직 시절 쓰던 컴퓨터 하드디스크 이미징(복제)으로 확인되는 자료 등 대법원 측이 극히 제한적으로 제공한 자료만 분석하고 있다고 강력 반발했다. 법원의 협조나 영장 없이 할 수 있는 압박수단을 모두 동원 중인데, 1차 영장이 기각되자 알려진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 출국금지 사실이 대표적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지금으로선 영장 심사와 향후 재판까지 맡을 법원 측 대응에 맞설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검찰로선 수사 과정 공개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사건이 검찰로 넘어왔을 때부터 법원의 비(非)협조는 예견됐다. 각자 사안의 심각성에 대한 판단이 엇갈려서다. 검찰은 ‘사법부의 근간을 흔든 초유의 사건’이라 규정하는 반면, 법원은 ‘일부 판사들의 일탈’ 정도로 본다는 것이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상고법원 설치라는 정책 추진을 위해 정의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법부가 재판을 일개 ‘거래 대가’ 정도로 여긴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대법원 측은 초기부터 사건 ‘실체’를 파헤치기보다는 ‘절차’를 문제 삼아 검찰 수사에 제동을 걸만한 조치를 반복했다. 검찰이 요청했던 법원행정처 문건, 인사ㆍ재판 자료, 내부 메신저 대화 내용 등 일체 제출할 수 없다는 입장인 데다, 임 전 차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추가 범죄 정황이 담긴 문건도 검찰에 제공하지 않는 식이다. 여기에 영장까지 기각하니 검찰 수사가 좀체 나아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앞서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대국민담화까지 발표했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말이 무색할 정도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사건 초기부터 일부 판사들만의 문제라며 사안을 안일하게 바라본 법원 내부 인식에 현 대법원 수뇌부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더해져 일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법관이 연루된 사건에서는 직업판사가 아닌 법조인이 영장 발부 등을 담당하게 하는 방안(특별재판부)마저 제기된다. 판사 출신 서기호 전 의원은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특별검사처럼 특별재판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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