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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삼각김밥 씹는 청춘, 자본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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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삼각김밥 씹는 청춘, 자본을 만나자

입력
2018.07.26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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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 대학로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만난 고병권이 '북클럽 자본'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지난 23일 서울 대학로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만난 고병권이 '북클럽 자본'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2년간 12권 목표… 펀딩ㆍ강연도 

 “19세기 노동자들이 먹던 빵과 

 지금의 삼각김밥 같지 않나…” 

철학자 고병권(47) 또한 선선히 인정했다. “우리 세대, 혹은 우리 윗세대 정도만 해도 이제 ‘칼 마르크스’나 ‘자본’에 대해 기대를 걸거나 뭘 더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을 거에요.” 확실히 꺾이긴 했다. 2017년은 러시아혁명 100주년, 올해 2018년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지만 조용하다. 이런 주제 좋아할만한 출판계에서조차 ‘칼 마르크스 – 위대함과 환상 사이’(아르테) 정도 외엔 딱히 눈여겨볼만한 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제 그런 건 팔리지 않는 시대다.

그런데 고병권은 왜 ‘자본’을 다시 꺼내 들었을까. 한때 불온했으나 이젠 안전해졌기때문일까. 그는 10여년 전 기억을 끄집어냈다. “몇몇 대학생이 ‘경철초’(경제철학초고)를 읽길래 ‘그게 재밌냐?’했더니 재미있다는 거에요. ‘자본가는 궁정에서 살고 노동자는 토굴에서 산다’,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라서 동물과 다른 건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을 그만 두고 집에서 쉴 때, 다시 말해 동물로 돌아갔을 때 가장 행복해한다’, 마르크스가 들려주는 이런 얘기들이 무척이나 와 닿는다는 거에요.”

그 기억이 각인됐다. “19세기 노동자들이 먹던 딱딱한 빵과 지금 편의점 삼각김밥은 똑같은 게 아닐까, ‘자본’을 절대적으로 추종한 것이 우리 세대였다면 이제 ‘자본’을 철 지난 이야기라고 단정짓는 것 또한 우리 세대의 고정관념 아닐까 싶었어요. 요즘 젊은이들이 읽어본다면 또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일하기싫어증’, ‘소확행’ 같은 건 어쩌면 지극히 ‘자본’스러운 현상일 지도 모르겠다. 고병권이 착안한 지점은 여기다. ‘자본’은 경전이 아니다. 이제 이것이야 말로 절대적으로 옳은 해석이라고 피 튀기게 싸우는 시대는 지나갔다. 그렇다면 더 자유롭게 자기만의 독법으로 제각각 읽어낼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시작했다. 자본을 우직하게 읽어내는 ‘북클럽 자본’ 프로젝트다. 2016년, 2017년 두 차례 ‘자본’ 강연기록을 바탕으로 격월로 한 권씩, 2년간에 걸쳐 모두 12권으로 정리해내는 작업이다.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손잡고 8월 14일까지 1,000만원을 목표로 온라인 펀딩도 받고, 오프라인 강연, 온라인 강연도 함께 한다.

가령 8월말 1권이 정식 출간되면 9월에 이 책을 가지고 오프라인 강연을 하고, 이 오프라인 강연을 녹화해 온라인 강연으로 다시 제공한다. 10월에 2권이 나오면 또 반복된다. ‘이 세 박자가 2년 동안 계속 맞물려 돌아가는 특이한 프로젝트다’라고 쓰고, ‘2년 동안 노예처럼 부림을 당할 고된 구조다’라고 읽어야 한다. “왜 했나 싶지만, 사실은 그래서 꼭 해보고 싶었다”는 게 고병권의 말이다. ‘경철초를 재미있게 읽던 대학생’이 일깨워 준 자본의 현재성 덕분이다.

고병권과 천년의상상 출판사가 손잡고 시작하는 '북클럽 자본' 프로젝트
고병권과 천년의상상 출판사가 손잡고 시작하는 '북클럽 자본' 프로젝트

그러고 보면 ‘자본의 현재성’은 요즘 더 적나라하다. 바로 주 52시간 노동, 최저임금 논란이다. 더 싸게 더 많이 부려먹을 수 있는 권한을 침해하지 말라는 비명소리가 높다. “자본가는 당연히 싸게 오래 시키고 싶고, 노동자는 당연히 비싸고 짧게 일하려 합니다. 마르크스는 양쪽 입장 모두 나름대로는 정당하다고 봐요. 나름대로 정당한 두 논리가 부딪힌다면? 결국 힘에 의해 결정되는 거죠.” 노동시간과 최저임금 논란은 한국 땅에서 여러 세력간 정치적 힘이 어떤 기울기를 지니고 있는지 잘 드러내주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자본’은 여전히 ‘혁명’과 함께 해야 참맛 아닐까. 고병권이 보기에 ‘혁명’은 ‘자본’의 핵심이 아니다. “부제가 ‘정치경제학 비판’이죠. 마르크스는 ‘무자비한 비판’이란 표현을 써요. 흔히 ‘비판보다 대안’이라고들 하지만, 오히려 비판은 무한대로 뻗어나가되 대안은 그 가운데 가능한 것들을 담아 제한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비판 뒤에 미래는 이러해야 한다고 하면 그건 종교나 예언이 되죠. 비판에 집중할 것, 그게 ‘자본’의 참 맛입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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