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내 최대 사조직인 ‘하나회’ 숙청이 한창이던 1993년 7월 이양호 합참의장 취임 한 달을 맞아 합참 장군들의 회식 자리가 마련됐다. 분위기가 무르익던 무렵 하나회 회원인 합참 작전부장 이모 소장이 갑자기 술잔을 집어 던졌다. “이게 군 개혁이냐. 군을 이런 식으로 막 해도 되느냐”며 선배 장군들 앞에서 언성을 높였다. 하나회 쿠데타설이 흉흉하던 때인지라 파문은 컸다. 이 사건을 문민 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판단한 김영삼 대통령은 즉시 그를 전역 조치하고 하나회 제거에 속도를 높였다.

▦ 이명박 정부 때는 국방장관이 청와대를 들이받고, 장차관이 파열음을 내는 하극상도 연출됐다. 2010년 정부 국방예산안이 대폭 삭감되자 이상희 국방장관이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는데, “군 전력증강이 줄어들면 군 내부뿐 아니라 예비역도 반발할 것”이라고 강한 불만을 나타내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다. 여기에 이 대통령 핵심 측근인 장수만 국방차관은 예산 축소를 주장하는 서한을 장관 몰래 청와대에 보내 ‘콩가루 집안’이라는 비판이 더해졌다.

▦ 계엄령 문건을 둘러싼 송영무 국방장관과 기무사 간부들의 24일 국회 진실 공방은 기존의 하극상과는 양상이 다르다. 하급자가 상관 발언을 정면 반박한 것은 상명하복이 엄격한 군 문화로 보면 ‘하극상’이지만 국회 증언이란 점에서 ‘부당’의 잣대를 들이댈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개 석상에서 장관과 부하가 정면 충돌하는 모습으로 인해 송 장관의 지위와 리더십이 흔들리게 됐다. 기무사로부터 문건을 보고받은 뒤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고 뭉갠 ‘원죄’가 있으니 송 장관은 항변할 입장도 아니다.

▦ 기무사 간부들의 증언을 ‘양심적인 군인들의 소신 발언’이라고만 보는 시각도 적절치 않다. 국회에 출석했던 기무사 증인 중 일부는 문제의 계엄 문건 작성과 직접 관련된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기무사의 철저한 개혁을 주장해온 송 장관이 기무사로서는 부담스러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계엄 문건 특별수사단 조사의 핵심 대상자들이 국회의 증인 요청에 이례적으로 총출동한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서로 처지가 다를 텐데 조직 보호라는 공동목표 앞에서 똘똘 뭉친 듯하다. 분명한 건 기무사 개혁은 추호의 흔들림 없이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무너진 군 기강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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