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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불교의 연꽃은 어떻게 군자가 되었을까?

입력
2018.07.2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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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이에 맞춰 사찰과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연꽃 축제가 한창 무르익고 있다. 연꽃 하면 떠오르는 종교는 단연 불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불교는 연밥과 연차 그리고 연근 요리 등으로 가장 많은 연을 소비하는 종교이기도 하다. 즉 불교는 연꽃을 종교의 상징으로 존중하는 동시에, 인간의 유익함을 위해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연꽃은 불교에 있어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도 같다.

연꽃의 원산지는 인도 쪽이다. 즉 연꽃은 불교를 타고 동아시아로 전래된 외래적인 요소인 셈이다. 그런데도 연꽃은 배타성이 강한 중국문화의 미의식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고대 중국인들이 풍만함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당나라 이래 동아시아에서 최고의 꽃으로 인정받는 것은 모란이다. 설총의 ‘화왕계’에 등장하는 꽃의 임금이 모란이며, 당태종이 선덕여왕에게 보낸 꽃도 모란이 아니던가! 또 ‘학어집’ 같은 곳에는 ‘꽃의 임금은 모란이고, 재상은 작약’이라는 언급이 있다. 작약은 모란보다는 작지만 역시 만만찮게 풍만한 꽃이다. 이와 같은 풍족한 미감의 선호는 커다란 모습의 연꽃이 동아시아의 문화 전통 속에 쉽게 녹아들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연꽃은 내용적으로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고 하여, 더러운 곳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학 같은 고아함을 갖추고 있다. 때문에 불상은 연꽃을 상징화한 좌대인 연화좌에 앉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는 번뇌 속에서도 번뇌에 물들지 않은 붓다의 청정함을 상징한다. 이를 불교에서는 ‘처세간여허공(處世間如虛空) 여연화불착수(如蓮華不着水)’ 즉 ‘번잡한 세속에서도 걸림이 없는 허공과 같고, 연꽃에는 물이 묻을 수 없는 것처럼’이라고 노래하곤 한다. 더러움을 떠나서 홀로 청정한 것이 아닌, 더러움 속에서도 그것에 물들지 않는 모습이야말로 더욱 더 멋스러웠던 것이다.

또 연꽃은 화려하지 않으면서 단아하고, 향기는 강하지 않으면서 그윽하다. 이러한 지나치지 않은 부드러운 기상은 동아시아가 추구하는 겸손의 미덕을 상징하기에 맞춤하다. 때문에 연꽃은 불교를 넘어서 고ㆍ중세 동아시아인들을 강하게 매료시키게 된다.

실제로 연꽃의 덕을 찬탄하고 이를 규정하는 최고의 인물은 불교의 승려가 아닌 북송시대를 산 유학자 주렴계(1017~1073)이다. 주렴계는 신유학의 시원적인 인물로 이 분의 학문적인 흐름에서 후일 주자학과 양명학이 나오게 된다.

주렴계는 연꽃을 사랑하는 이야기인 ‘애련설(愛蓮說)’을 남기는데, 이 글은 중국 최고의 문장들을 집대성한 ‘고문진보(문편)’에 수록된 명문이다. 이에 따르면 국화는 꽃 중의 은자(隱者)며 모란은 부귀한 자인 반면, 연꽃은 군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 모란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국화는 유독 도연명이 좋아했고 연꽃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따를 사람이 없다고 단언한다.

신유학의 시조인 주렴계가 연꽃을 ‘화중군자(花中君子)’로 규정했기 때문에 연꽃은 유교에서도 폭넓은 사랑을 받게 된다. 즉 불교를 넘어서는 연꽃의 초종교적인 영광이 펼쳐지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연의 존재 유무와 관계없이, 물이 고인 모든 곳을 ‘연못’이라고 할 정도로 연꽃은 동아시아에 일반화된다. 실제로 연꽃은 사찰을 넘어 경복궁 경회루나 창덕궁 후원(비원)에서부터 안동 도산서원에 이르기까지 두루 확인해 볼 수 있다. 즉 연꽃은 불교를 타고 전래한 인도의 꽃에서 시작되어 유교의 미감을 사로잡은 불교 속의 군자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연꽃이야말로 종교적 가치를 뛰어넘는 동양정신의 상징인 동시에, 단순한 관상용이 아닌 실생활에도 유용한 최상의 ‘꽃 중의 꽃’이 아닌가 한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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