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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산 고갯마루에 나다(Nada)라는 이름의 식당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별 것 아닌, 아무 것도 아닌, 이라는 뜻.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볼륨을 높인 텔레비전 소리가 맞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좀 더 들어가면 텔레비전 앞에 나란히 앉은 노부부가 보이고, 식사 할 수 있어요? 물으면 물론, 아무데나 원하는 곳에 앉으셔. 말을 해놓고도 한동안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노부부의, 정말 여기 식사가 되는 곳이긴 한가, 그곳에 데려간 친구에게 눈짓으로 항의를 해보게 되는, 아주 오래된 낡은 식당.

이 길이 옛날에는 내륙으로 가는 가장 큰 길이었어.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다 이 길로 다녔다고. 전망 좋지, 산마루에 자리도 넓게 잡았지, 사람들이 얼마나 북적거렸는데. 저기 사진 보이지? 이 집 아들이야. 꽤 유명한 투우사였어. 경기가 있는 날엔 다들 여기까지 와서 파티를 하고 그랬는데. 이 집 어머니는 못하는 음식이 없어. 맛은 또 얼마나 좋은지. 자 골라 봐. 스페인 음식의 모든 것이 여기 다 있다구.

친구가 직접 가져다 준 메뉴판을 보니 아무래도 식당 이름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아무 것도 없는’에서 ‘원하는 건 뭐든’으로. 메뉴판이 거짓말 조금 보태 그야말로 노래방 책. 에피타이저에서 디저트까지, 뽕짝에서 힙합까지. 이게 정말 다 돼? 물론이지. 잠깐 고민 좀 해봐도 될까? 도대체 뭘 불러야 팡파르가 울릴까. 내가 아는 노래라고는. 아이고 머리야. 사전을 찾아가며 메뉴판을 넘기고 있는데. 할머니가 와서 메뉴판을 딱 덮는다. 아스파라거스 먹어. 오늘 아침에 산에서 아스파라거스 따왔거든 아주 좋아. 어제 비가 와서, 밤새 얼마나 예쁘게 자랐는지. 아스파라거스 볶음하고. 이거 농부들의 저녁 먹어. 디저트는 나티야. 됐지? 그러고는 주방으로 총총 사라진다. 아이참 처음부터 그렇게 추천을 해주시든가. 친구가 웃는다. 후회하지 않을 거야. 물론 후회하지 않았다. 그렇게 향기로운 아스파라거스 요리는 처음 먹어봤다. 후식까지 먹고 식당을 나서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고맙다 인사를 했더니, 할머니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데 나다(De nada). 별 거 아냐.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식당이 있다. 돈키호테와 산초가 사라고사 인근에서 묵은 주막. 공중을 나는 새, 땅을 걷는 새, 바다에서 나는 생선까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모두 준비되어 있다는 주막. 산초는 다 필요 없고, 그저 병아리 새끼 두 마리만 구워 달라 부탁한다. 그러자 주인은 마침 솔개들이 병아리를 깡그리 채가서 없다고 다른 걸 먹으란다. 그렇다면 연한 새끼 암탉 한 마리만 구워 주쇼. 아이고 어쩌나 어제까지 쉰 마리 이상이나 되는 암탉을 도시에 팔아버렸는데, 그거 말고는 다 되니 원하는 걸 다시 말씀해보시지요. 그렇다면 송아지 고기나 산양고기가 될까요? 아이고 조금 전에 딱 떨어졌지만, 다음 주에는 철철 넘칠 예정이랍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그럼 계란은 되오? 이 양반이 참 둔하시긴, 아까 암탉들을 다 팔아버렸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소, 그런데 어찌 계란이 있겠소, 그러니 괜찮으면 다른 맛있는 걸 생각해 보시지요. 모든 게 다 준비되어 있으나, 원하는 건 마침 없는 식당. 결국 산초는 두 손을 든다. 그냥 가지고 있는 걸 주시라.

결국 그날 산초가 먹은 것은 바로 이 요리. 송아지 발을 닮은 소 발톱인지, 소 발톱 같은 송아지 발인지를 푹 삶아 병아리콩과 양파를 넣고 끓인 스튜. 물론 산초는 맛있게 먹었다. 발톱인지 발인지를 두 손으로 붙잡고 쪽쪽 빨아가며. 산초보다 그 요리를 더 좋아했던 사람은 객줏집 주인양반이었다. 냄비를 들고 왔다가 자연스럽게 합석해 앉아 함께 식사를 했으니. 어쨌거나 이런 식당 참으로 정겹다. 아무 것도 아닌 이름을 내걸었든, 뭐든 다 되는 이름을 내걸었든, 결국 주인이 캐온 그 날의 재료로, 주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내 주는 식당. 어찌 맛이 없을쏘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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