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주시에서 1년 넘게 야생에서 살다 포획돼 생을 마감한 돼지의 생전 모습. 제주시 제공

지난주 제주 농가에서 새끼 때 탈출했던 돼지가 1년 4개월 만에 붙잡혔다는 뉴스를 봤다. 지난해 3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게 10㎏의 작은 새끼 돼지는 농가를 나와 제주시 삼양동 일대를 누비며 무려 1년 넘게 혼자 숙식을 해결해 왔다고 한다. 1년 전부터 주민들의 목격담이 나왔지만 돼지가 워낙 작고 재빨라 잡지 못했는데 이제 80㎏에 달하는 어른 돼지가 되면서 결국 포획됐다는 내용이었다.

이 돼지가 눈길을 끈 것은 민가와 가까운 풀숲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새벽에 주로 활동하면서 “꿀꿀” 소리도 거의 내지 않아 일부 주민들은 돼지 존재 조차 몰랐다는 점 때문이다. ‘빠삐용’ 돼지의 동화 같은 이야기는 ‘새드 엔딩’으로 끝났다. 포획된 돼지가 결국 살처분 된 것으로 알려지자 온라인에는 “굳이 살처분까지 했어야 했나”, “소리도 내지 않고 살았다는데 마음이 좋지 않다”며 돼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의견이 많았다.

농가 피해 예방과 주민 안전이 우선인 것은 맞다. 사실 주변에 돼지가 출몰한다면 놀랍고두렵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특히 돼지를 신고한 피해 농가의 경우 1년간 콩, 고추, 호박 등 농작물 피해를 입었다고 하니 무작정 돼지 편만 들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소리조차 내지 않고 살았다는데, 농작물을 훔쳐 먹었다고 해서 바로 살처분을 해야 했을까. 돼지가 너무 포악하고 사나워서 내린 결정일까. 제주시에 확인한 결과 살처분을 한 게 아니라고 했다. 제주시 축산과와 삼양동 직원 열 명이 처음에는 돼지를 한쪽으로 몰아서 잡으려고 했는데 돼지의 행동이 민첩해 실패했고, 결국 돼지를 밀쳐 넘어뜨려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돼지는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쳤고 결국 이동 중에 생을 마감했다고 했다. 실제 그날 다른 장소에서 주인을 잃은 채 발견된 염소 10마리의 경우 도축되지 않고 시가 정한 위탁 농장에 보내져 주인을 수소문 중이다. 제주는 지역 특성상 염소, 말 등 가축들이 유기동물로 신고되는 경우가 있는데 개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농장동물 역시 주인을 찾는 공고를 내고, 공고가 끝나면 입양처를 찾는다고 한다.

돼지의 사연을 보면서 지난 4월 사람을 들이받고 도축장을 탈출했다가 붙잡혀 살처분 된 암소가 떠올랐다. 4년 동안 농장에서 살았던 암소에게 주어졌던 자유시간은 ‘빠삐용’ 돼지보다 짧은 여섯 시간뿐이었다. 당시에도 ‘살고 싶었던’ 암소를 빨리 도축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의문이 있었지만 지자체 확인 결과 포획 도중 부상을 입은 소의 상태를 고려해 긴급도축을 했다고 했다. 암소의 ‘반란’은 그렇게 짧게 끝났다.

농장동물은 반려동물과 달리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보기 어렵다. 때문에 그들도 두려움을 알고 똑똑하다는 사실은 감춰진 채 그저 저렴할수록 좋은 먹거리로만 인식되고 있다. 지금도 농장동물들은 폭염 속 밀집사육으로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농장동물들의 처우가 개선되길. 그리고 RIP(평화롭게 잠들길) ‘빠삐용’ 돼지.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