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와 16강에서 골을 터뜨린 뒤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는 앙투안 그리즈만. 리옹=AP 연합뉴스

“저에게 유니폼을 주실 수 있나요?”

레알 마드리드 선수 시절, 여느 때와 다름없이 리그 경기를 마치고 나오던 지네딘 지단에게 한 소년이 유니폼을 달라고 요청했다. 스타였던 지단에겐 종종 있던 일이었다. 이날 유니폼을 원했던 소년은 특이하게도 상대 팀 레알 소시에다드의 유니폼을 입은 볼보이였다.

하지만 지단은 경기 후 이미 다른 선수와 상의를 교환한 상태였다. 소년은 시무룩해졌고, 지단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지단은 소년에게 따라오라고 한 뒤 관중들이 볼 수 없는 경기장 구석으로 이동했다. 소년은 내심 지단이 함께 사진을 찍게 해주거나 사인을 해줄 것이란 기대를 하며 쫓아갔다. 뜻밖에도 구석까지 따라온 소년에게 주어진 건 지단이 조금 전까지 입고 경기를 뛰었던 유니폼 바지였다. 팀은 달라도 자신을 좋아해 주는 소년에 대한 지단의 감사 표시였다. 지단의 땀이 고스란히 묻은 유니폼을 받은 소년은 감격했다.

당시 13세이었던 소년은 훗날 ‘프랑스의 에이스’가 된 앙투안 그리즈만이었다. 그리즈만은 지난해 펴낸 자서전에서 “믿을 수 없었다”며 당시 추억을 회상했다.

우상에게 감동적인 선물을 받았던 그리즈만은 프랑스를 20년 만에 월드컵 우승의 자리에 다시 올려놓으며 자신의 영웅이 섰던 자리에 우뚝 섰다. 1998년 월드컵에서 지단이 축구를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팀의 우승을 이끌었듯이 그리즈만도 2018년 월드컵에서 지단 못지않은 활약으로 ‘아트 사커’의 자존심을 되살렸다.

팬들은 그리즈만의 플레이를 보며 20년 전 지단을 떠올렸다. 프랑스 팬들은 이미 그리즈만을 지단의 애칭인 '지주(Zizou)'에 빗대 ‘그리주(Grizou)’라 부른다.

이민자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지단은 알제리 이민자 2세이고, 그리즈만의 아버지는 독일계, 어머니는 포르투갈계이다. 지단이 20년 전 월드컵을 들어 올리며 사회 통합의 상징이 된 것처럼, 그리즈만도 이민자 출신 동료들과 함께 우승을 일궈냈다.

박순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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