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정의당 의원 투신

유서에 “정상 후원 절차 못 밟아” 자책
文대통령 “정말 가슴 아프고 비통” 애도
특검팀 충격… 드루킹 수사 답보 전망
지난해 한국일보와 인터뷰 중인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댓글 조작 사건을 주도한 ‘드루킹’ 김동원(49ㆍ구속기소)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의혹을 받던 중이었다. 화려한 언변으로 인기를 끌며 ‘진보의 아이콘’ 역할을 톡톡히 했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지지자와 정치권은 큰 충격을 받았다.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쫓던 특별검사 수사도 일단 멈춰 섰다.

노 원내대표는 23일 오전 9시38분쯤 서울 중구 신당동 한 아파트 현관 앞 바닥에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아파트엔 그의 모친이 머물던 동생 집이 있다. 경찰과 주변 목격자 등에 따르면, 17층과 18층 사이 계단참에서 그의 양복 상의가 발견됐고 그 안에 신분증이 든 지갑, 유서 등이 있었다.

앞서 그는 여야 원내대표 공동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22일 오후 5시쯤 귀국했다. 공항 도착 후 바로 서울 강서구 자택으로 향했다가, 밤 12시쯤 모친이 입원한 강남구 병원을 찾았고, 다음날 오전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황이 뚜렷하고 유족이 부검을 원치 않아 노 원내대표의 죽음을 부검 없이 자살로 처리할 방침이다.

그가 남긴 세 통의 자필유서에는 가족에게 전달하는 말과 드루킹 특검의 수사 관련 내용이 담겼다. 정의당 앞으로 남긴 유서에서 그는 ‘정상적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유서 내용과 당시 상황 등을 종합해 볼 때 노 원내대표는 드루킹으로부터 받은 불법 정치자금과 관련해 양심의 가책이나 부담을 느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보수진영을 비판하되 선을 넘는 일 없이 품위와 재치를 잃지 않던 그의 죽음에 여야는 한 목소리로 애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삭막한 우리 정치판에서 말의 품격을 높이는 면에서도 많은 역할을 했다”며 “정말 가슴 아프고 비통하다”고 말했다. 노 원내대표와 방미 일정을 함께 하고 같이 귀국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귀국 전날에도 과거 노동운동 얘기를 회고하며 함께 술을 마셨는데”라며 비통해 했다.

드루킹 측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혐의를 수사하던 허익범 특검팀도 큰 충격을 받았다. 허 특검은 “평소 존경하던 정치인이었다”라며 침통해 했고, 매일 열던 언론 브리핑도 취소했다. 노 원내대표의 고교 동창이면서 그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도모 변호사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이어, 노 원내대표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수사는 당분간 답보 상태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특검은 노 원대대표 측에 정치자금을 건넨 드루킹 일당의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정의당은 “특검이 노회찬 표적수사를 했다”고 유감을 표했다.

고인의 장례는 정의당장(葬)으로 5일간 치러진다. 발인은 27일이다.

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