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별세한 최인훈 작가의 빈소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빈소엔 문인들 추모 발길 줄이어

남북 분단이 어쩌면 끝날지도 모른다는 기운이 움튼 올 봄, ‘분단 작가’ 최인훈은 암투병 중이었다. 최 작가는 병상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장면을 챙겨 보고 기뻐했다고 한다. 말기 대장암 진단을 받은 그의 몸은 기쁨조차 견디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아들 윤구씨는 23일 “TV로 회담 모습을 잠깐 보시고 나면 힘들어서 종일 주무셔야 했다”며 “아버지의 마지막 생명의 빛이 꺼지는 것 같아 안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최 작가가 그 감격을 글로 전하기엔 남은 시간이 짧았다. 유족은 그가 말로 남긴 소회를 공개했다. “통일보다 재통일이 더 위대하다. 처음부터 통일되어 있어 끄떡없는 것보다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했다가 여태까지의 흐름을 거슬러서, 그렇게 다시 한국이 통일된다면 참 위대한 일이다. 마치 3단뛰기라는 운동의 원칙처럼, 한 번, 두 번, 세 번, 같은 뜀박질이라도 세 번째 한 것이 더 위대하다. 그것이 변증법이라는 말의 진정한 가치다.” 분단을 누구보다 깊이 사유한 작가의 유지는 ‘통일을 끝내 포기하지 말라’는 절절한 주문이었다.

최 작가가 마지막까지 마음을 쓴 또 다른 하나는 중편 ‘하늘의 다리’(1970)였다. 주간한국에 연재했다 단행본으로 펴낸 소설에 삽화를 꼭 넣어 달라고 가족에게 부탁했다. “그래야 모던해진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아버님한테 사랑만 받았다”는 며느리가 연재 당시 삽화를 국회도서관 등에서 찾아 가제본 책으로 만들었다. 책을 받아 든 최 작가는 더없이 기뻐했다고 한다.

최 작가는 병상에서도 작품 다듬기를 멈추지 않았다. 문병 온 제자, 평론가들을 격려했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유족은 “문병객을 맞고 나면 고열과 고혈압에 시달려 안타까웠다”며 “지켜보기 괴로웠지만 ‘최인훈다운’ 모습이라 생각해 말릴 수 없었다”고 전했다.

김병익 문학평론가, 정현종∙김형영 시인, 이인성 소설가,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등이 서울대학병원에 차려진 빈소를 찾아 추모했다. 오랜 지기지우인 김병익 평론가는 “최 작가는 행동 대신 글로 사회에 참여하고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며 “한국문학사는 최인훈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녀 이은규가 그린 할아버지’라는 제목의, 최 작가 얼굴 그림이 빈소 한 쪽에 놓여 있었다. 그림 속 최 작가는 따뜻한 표정으로 조문객을 맞이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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