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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나는 결혼하고 싶지 않습니다

입력
2018.07.20 18: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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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저녁, 어머니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누구누구가 사윗감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한 번 만나보라는 내용이다. 이런 메시지가 올 때면 으레 이렇게 답신한다. ‘생각 없어요.’ 사실 한창 가상현실 기기로 핵폭발 후 세계를 탐험하는 중이었던지라, 결혼 같은 식상한 이야기를 이어갈 시간이 없었다.

결혼한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늘 결론이 비슷하다. ‘정말 행복한데, 하지 마라.’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촌철살인이다. 이만큼 오늘날 결혼에 대한 인식을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 또 어디 있을까. 청년들은 이를 정언으로 받들어 정말로 결혼을 하지 않는다.

미혼, 또는 비혼. 최근엔 이것이 저출생 문제의 진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출산을 따지기 전에 아예 결혼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30대, 1인 가구 비율은 30년 새 2~3%에서 30%대로 급격히 상승했고, 비혼율도 비슷한 수준에 이른다.

무엇 때문에? 우선 당연히 돈이 문제다. 평균 결혼비용이 2억원을 훌쩍 넘어가고, 육아 비용도 월 100만원에 이른다. 부담이 안 될 수가 없다. 거기에 가계 부양의 책임, 경력 단절의 공포까지 생각하면 결혼하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실제 기혼자 비율은 임금 수준이 올라갈수록 단계적으로 높아진다. 허탈할 정도로 정직하게.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순 없다. 다들 청년들의 팍팍한 삶을 이야기하지만 절대적인 삶의 질이 과거보다 떨어졌다 보긴 어렵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투입하는 돈은 근 십수 년 새 10배 이상 늘어났지만 출생아 수는 급격히 줄고 있다. 돈만 문제가 아니란 방증이다.

사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그냥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경제가 성장하며 노동구조도 변하고, 인권의식도 올라갔으니 인식도 변한 것이다. 다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그 정도가 유독 심하긴 하다. 그건 왜일까. 여기서 문화의 충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없다.

사실 내게 ‘사윗감’이란 좀 몸서리쳐지게 하는 말이다. 결혼이 나와 배우자의 것이 아니라, 집안의 것, 다른 사람의 것이 되는 것 같다. 어느 정도는 실제로도 그렇다. 혼기가 차면 압박이 들어오고, 누군가 좋은 배필을 소개한다. 마치 중세 시대의 결혼처럼. 스무 살 때 나는 결혼이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필 혼기에 만나고 있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속칭 신성한 결혼의 우스꽝스러운 이면이었다.

결혼이 짐이 되는 것도 수없이 보았다. 부모나 조부모가 원한다며 원치 않는 결혼을 하는 것을 보았다. 결혼을 지켜야 한다며 이미 무너진 관계를 억지로 묶고 있는 것도 보았다. 배우자라는 이유로 상대의 삶에 간섭하고 비난하는 것 또한 진저리나게 많이 보았다. 이것이 결혼이라면 당연히 피하고 싶다.

그래도 기성세대는 여전히 결혼을 신성하고 유일한 것으로 취급한다. 그게 누군가에겐 결혼을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족쇄로 만든다. 같은 결혼을 보며 느끼는 그 사고의 차이, 그 문화 충돌이 비혼 확대의 근간일지도 모른다. 변화가 급격했던 만큼 충돌도 극렬하게 일어난다. 결혼 제도를 수호해야 한다며 나온 ‘우리 모두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같은 구호는, 예수님이 당한 의문의 1패는 차치하고, 사람을 갑갑하게 한다. 결혼, 그냥 안 하고 말지.

그 족쇄를 풀어버린다면 어떨까. 만나고 사랑하고, 때론 아이를 갖고 결혼하고 또 때론 이혼하는 것이 온전히 우리의 선택이 된다면. 결혼이 절대적인 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랑하는 이들의 결합이 된다면, 더 많은 이들이 진짜 축복 속에 결혼을 택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비혼조차도 삶의 형태로 긍정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비혼 문제를 해결할 열쇠일지도 모른다.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결혼하고 싶지 않습니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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