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성형 대국’이다. 1만명 당 성형 건수가 한 해 131건으로 세계 1위(국제미용성형학회 2011년 자료)다. 성형외과 의사 수는 2,054명(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 2013년 자료)으로 역시 인구 대비 1위다. 성형 대국의 이면에는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다. 의사가 수술대 10여개를 옮겨가며 공장처럼 수술을 하는 성형외과, 성형수술을 받다가 숨지는 환자 등이 그렇다. 한국일보는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직장을 잃고 2년 10개월째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사례를 통해 무분별한 성형수술이 주는 고통을 전하려고 한다. 또한 성형외과 광고의 허와 실도 짚어본다.

성부자(39ㆍ가명ㆍ성형수술 부작용 환자의 줄임)씨는 서울 강남 유명 성형외과와의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했다. 특히 부작용 사실을 알린 글을 삭제하라는 병원의 가처분 신청에서는 변호사 없이 혼자 승리를 일궈냈다. 유명 병원이 선임한 법무법인과의 싸움에서 그는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침착한 대응과 공익성 호소가 그의 무기였다.

성씨는 2015년 9월 서울 강남 A성형외과에서 돌출 입, 광대뼈 축소, 사각턱 절제 등 수술을 받은 뒤 입 천장에 구멍이 뚫리고 입이 잘 벌어지지 않는 등 부작용을 겪게 됐다.(관련기사☞성형 부작용과의 싸움 2년10개월…아직 끝나지 않았다) 성씨는 이 분야에서 유명하다는 대형병원들을 찾아 다녔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2016년 7~8월 그는 인터넷 사이트에 A성형외과 원장에게 수술을 받고 부작용이 발생했는데 해결방법을 문의한다는 취지의 글과 사진을 무려 80여회에 걸쳐 게시했다. 병원과 의사 이름은 실명으로 적었다.

A성형외과 원장 B씨는 성씨의 게시물이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한다면서 글들을 삭제하고, 향후 동일하거나 유사한 글과 사진을 게시하지 말라는 ‘인격권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성씨는 법원에 낸 ‘인격권침해금지 가처분 답변서’에서 ‘B원장은 객관적 사실만을 말했는데도 불법 허위사실이라고 매도했고, 성형수술의 부작용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맞섰다. 또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헌법상의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답변서는 수술 과정, 현재 자신의 상태, 자신의 게시글을 본 네티즌 반응, 공익의 효과 등을 기술한 것과 증거자료를 포함해 총 260장에 달했다.

20일 서울 신길동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사무실에서 이 단체 안기종(왼쪽) 대표와 성부자(가명)씨가 A성형외과와의 소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게시물의 주된 내용이 안면윤곽 성형수술의 부작용 해결방법을 묻는 등 게시물이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거나, 사실을 왜곡해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B원장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 때에는 적시된 사실이 진실임이 증명되지 않더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위법성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전제하기도 했다.

이후 진행된 항고심도 B원장의 요구를 일부만 수용했다. 서울고법은 성씨가 유사한 부작용을 겪은 다른 사람의 사진을 쓴 것, 그 사람이 보상금으로 45만원을 받았다는 글 등은 문제가 있으므로 삭제하라고 올해 3월 판결했다. 그러나 이 원장이 요청한 ▦게시글 전체 삭제 ▦향후 유사한 내용의 글 게시 금지 ▦간접강제(명령 위반 시 1일 100만원 지급) 등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B원장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역시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0월 ‘언론보도의 진실성은 전체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될 때 인정되며 세부에 있어 약간 차이가 나는 표현이 있더라도 무방하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면서 ‘인터넷 사이트 게시글에 의한 명예훼손에서 그 표현의 진실성 판단에도 같은 법리가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성씨와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은 대형 성형외과들이 수술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의료과실 없음 주장→윽박지름→영업방해 유도 후 경찰 신고→피해보상 회유→보험처리 권유→법적 조치 협박→명예훼손ㆍ손해배상 소송’ 과정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성씨는 병원의 고압적인 태도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소송을 차분하게 준비해 이길 수 있었다”면서 “성씨에 대한 판결들은 의료과실 피해자의 글에 대해 공익성을 인정한 첫 사례로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글ㆍ사진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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