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민석의 성경 속 이야기] <39> 지식, 어른, 지혜

나이는, 늙음은, 노인은 이제 '꼰대'가 됐다. 그런데 꼭 그러해야만 할까. 게티이미지뱅크

북극을 실제로 가 본 사람은 몇 안 되지만, 지금 어느 누구도 북극을 상상하기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 그곳을 가 본 사람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정보’를 문헌이나 사진, 영상으로 잘 기록하고 보존한 덕이다. 정보화의 큰 유익이 아닐 수 없다.

정보화의 혁명적 발전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면서부터 벌어졌다. 근 30~40년 안에 일어난 일이다. 희귀한 역사 자료 가운데 ‘게니자 문헌(Geniza documents)’이라는 것이 있다. 그 문헌을 직접 보려면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넘게 날아가,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존 라이랜스(John Rylands) 도서관에 가서 까다로운 절차를 밟은 뒤에나 간신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만하면, 그 촬영 사본을 5분 안에 누구든지 볼 수 있다. 화질이 좋기 때문에 직접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정밀한 관찰을 할 수 있다.

19세기 말 이집트 카이로에서 발견된 게니자 문서. 유대교 절기인 유월절에 읽던 글로 중세 중동 지역의 삶을 알 수 있는 주요한 사료다.

참으로 놀라운 발전이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컴퓨터를 배웠을 때, 지금 세대들은 믿겨지지 않겠지만, 정보를 카세트테이프에 기록했었다. 나중에 박사학위를 마칠 즈음에는, 나의 모든 작업물을 작은 플로피 디스크 10장 정도에 다 담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내 인생 전부’를 담은 정보를, 굳이 어디에 저장해서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다. 그냥 ‘구름(cloud)’에 담아 두면 된다. 이 세상 어딜 가도 구름이 날 따라다니기 때문에, 필요하면 그냥 구름에서 빼다 쓰면 된다. 이 구름 이야기가 이해가 안 가시는 분들은 미안하지만 정보화에 좀 뒤떨어져 계시니 분발하시기 바란다.

창고 한 가득 되는 분량의 문서도 이제는 손톱만 한 USB 안에 다 담을 수 있다. 너무 무거워서 이사다닐 때마다 골칫거리인 백과사전이나 전집류도 소장할 필요가 없다. 산뜻한 태블릿PC 안에 디지털로 저장해 놓으면 언제든지 쉽게 열어서 볼 수 있다. 교수이지만 도서관 가는 일이 부쩍 줄었다. 내 책상 위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웬만한 논문들은 다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류의 정보든 이제는 앉아서 검색어만 입력하면 다 습득할 수 있다. 가 보지 못한 여행지를 보고 싶어도,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수면 유도를 하고 싶을 때에도, 이제는 와이파이만 터지면 만사 오케이다. 정말 놀라운 세상이다.

노인은 ‘구글’이자 ‘네이버’

정보를 디지털화하여 혁신적으로 교류하기 전, 우리는 꽤 오랫동안 아날로그 방식으로 정보를 기록, 보존, 전달하여 왔다. 이 방식도 그나마 성능이 좋은 기록, 촬영, 녹음, 인쇄, 복사 기구들이 있어 가능했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거의 2,000~3,000년 전 성서 시대에는 대체 어떻게 정보를 보존했을까? 돌판을 뾰족한 송곳 같은 것으로 긁거나, 금처럼 귀한 종이를 만들어 그 위에 잉크로 적어서 기록을 남기던 시대였다. 복사나 인쇄가 불가능해서, 서기관이란 사람들이 전부 다 옮겨 적어야만 했다. 우리나라 1950~1960년대에는 한 마을에 한 가정 정도가 텔레비전이 있어 온 마을 사람들이 몰려가 시청을 했다고 한다. 구약성서 시대에도 한 마을에 한 집 정도가 책 한 권을 소유했을 것 같다. 책이 있어도 당시 문맹률이 98%에 이른다고 하니, 기록된 정보도 매우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유용했었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남기고 싶은 정보를 대부분 이야기나 속담, 노래로 만들어 사람들 사이에 회람하고 전수하였다.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통찰력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남기고자 하는 정보가 자주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보존 전수가 가능했다. 성경의 수많은 이야기들도 사실 오랫동안 구전되어 오다가 나중에 문자로 적힌 것이 많다. 그러다 보니 당시에는 정보를 보존하고 전달하던 귀한 매개체가 사람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오래 살아서 많이 듣고 보았던 나이든 어른이 제일 중요했다. 당시 정보화 측면에서 보자면 늙은이가 소중했다.

그래서 옛날에는 어른이 네이버며 구글이었다. 지금 젊은이들이 없이는 못 사는 검색 사이트 말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바다의 고래를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 있다면, 그분만이 가장 정확하고 유일하게 고래의 정보를 알려 줄 수 있었다. 그런 분이 마을에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분은 그야말로 전설이 된다. 인생 경험이 풍부한 흰 수염의 할아버지는 탐구심 많은 젊은이들의 경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젊은이들에게 ‘꼰대’라고 조롱받을 아저씨들이, 당시에는 광대역 LTE만큼이나 젊은이들에게 환영받는 존재였다.

어른의 경험을 들으라는 성경

성경의 욥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존경받던 ‘어른’이었다. 그가 옛 생각을 하며 했던 말을 들어보자. “그때에는 내가 성문 회관에 나가거나 광장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젊은이들은 나를 보고 비켜서고, 노인들은 일어나서 내게 인사하였건만.”(욥기 29:7-8) “사람들은 기대를 가지고 내 말을 듣고, 내 의견을 들으려고 잠잠히 기다렸다. 내가 말을 마치면 다시 뒷말이 없고, 내 말은 그들 위에 이슬처럼 젖어들었다. 사람들은 내 말을 기다리기를 단비를 기다리듯 하고, 농부가 봄비를 기뻐하듯이 내 말을 받아들였다. 내가 미소를 지으면 그들은 새로운 확신을 얻고, 내가 웃는 얼굴을 하면 그들은 새로운 용기를 얻었다.”(29:21-24)

이제는 어른을 통해 지식을 얻는 세대가 아니다. 그래서 어른에 대한 공경도 희박해진 걸까? 사람이 지식을 가졌다고 꼭 성공하거나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어떤 이가 귀한 식재료를 많이 구했다고 해서, 그가 꼭 맛난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지식이 있다고 하여 꼭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어느 기독교 단체가 만든 잠언 성구 포스터.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행실만이 옳다고 여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잠언 12:15)

‘지혜의 보고’라 불리는 책이 성경에 있는데 바로 잠언이다. 이 책이 누누이 강조하는 바가, 젊은이는 어른의 ‘경험’을 들으라고 한다. 총명하고 원기 왕성한 젊은이라 하더라도 절대 가질 수 없는 것, 바로 삶의 경륜이다. 살고 겪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것이 경험이다. 성인이 되어 가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치고자 하는 훈육의 목적을 지닌 책이 잠언이었다. 이 책은 자녀에게 부모의 경험을 소중히 배우라고 가르친다. “아이들아, 너희는 아버지의 훈계를 잘 듣고, 명철을 얻도록 귀를 기울여라.”(잠언 4:1) 아이들과 아버지 사이의 가장 큰 간극을 만든 것은 바로 경험의 유무다. “나도 내 아버지에게는 아들이었고, 내 어머니 앞에서도 하나뿐인 귀여운 자식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내 말을 네 마음에 간직하고, 내 명령을 지켜라. 네가 잘살 것이다. 지혜를 얻고, 명철을 얻어라. 내가 친히 하는 말을 잊지 말고, 어기지 말아라.’” (4:2-5)

안 듣는 당신 또한 교훈이 될 것

책으로 연애를 배웠냐는 농담이 있듯이, 진로나 결혼, 직장생활은 지식만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그 길을 직접 가 본 사람의 증언은 그 무엇보다도 귀중하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는, 나보다 먼저 살아 본 어른들만이 선사해 줄 수 있는 인생의 보물이다. 경험이 없는 미숙한 자들에게는 미리 겪어 본 어른의 조언이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어른들의 경험은 어떤 사안이 앞으로 어떻게 되어 갈지 예측을 할 수 있게 하며, 이는 통계적으로 신빙성이 있다. 많이 겪으셨으니 더 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어른이 지식은 빼앗겼어도 지혜만큼은 꼭 쥐고 계시다.

한마디만 더하자. 물론 어른들의 말이 통찰력은 있지만 꼭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기성세대의 말에 늘 고분고분하기만 한 젊은이도 매력 없다. 결국 부모나 어른, 선배의 말대로 세상이 흘러갈 것이다. 그래도 자신의 소신과 이상을 꺾지 않겠다는 멋진 젊은이는 꼭 한 가지 각오를 하기 바란다. 자신의 선택에 결코 후회하지 않겠다고.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당신의 소신은 후대를 위한 또 다른 귀한 지혜로 남겨질 것이다.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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