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 파나넨 글로벌 게임회사 슈퍼셀 CEO
“가장 힘없는 CEO 되겠다”
최고 인재로 셀 조직 만들어
수평적 위치서 창의성 극대화
‘클래시 오브 클랜’ 이어
‘클래시 로얄’로 히트 행진
세계 유일 빌리언셀러 2개 보유
MMORPG 게임이 대세 속
AOS게임 ‘브롤 스타즈’
다섯 번째 선수 후보
32세에 슈퍼셀을 창업해 단 4개의 게임으로 글로벌 모바일 게임 시장을 석권한 일카 파나넨 CEO. 슈퍼셀 제공

제조업 회사가 설립 3년 만에 전 세계 100여 국가에 진출하고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정보기술(IT)에는 이런 한계가 없다.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단시간에 전 세계 서비스가 가능하고 매출 역시 순식간에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수 있다. 만약 사업 아이템이 컴퓨터 게임이라면 흥행 성공 시 폭발력은 더욱 커진다.

2010년 6월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출발한 슈퍼셀은 ‘잘 만든 게임 하나’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입증했다. 슈퍼셀은 설립 3년 만인 2013년 5억1,900만 유로(약 6,800억원), 2014년에는 15억4,500만 유로(약 2조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명실상부 글로벌 게임회사로 발돋움했다.

동시에 슈퍼셀 공동창업자인 일카 파나넨(Ilkka Paananen) 최고경영자(CEO)도 독특한 기업문화로 주목 받으며 글로벌 기업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가장 힘없는 CEO’를 지향하자 슈퍼셀은 가장 강력한 모바일 게임사로 거듭났다. 꼭지점인 CEO 아래 전 임직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우리 기업문화로 봤을 때는 아이러니다.

게임 4개로 모바일 게임시장 석권

20일 슈퍼셀에 따르면 파나넨 CEO는 1978년 6월 서핀란드주의 작은 도시 카우하요키에서 태어났다. 핀란드 헬싱키공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2000년 모바일 게임회사 수미아(Sumea)를 설립, 유럽 게임업계에서는 슈퍼셀 창업 이전부터 꽤 알려진 인물이다.

수미아는 2004년 미국 게임회사 디지털 초콜릿(Digital Chocolate)에 매각됐지만 파나넨은 2010년 초까지 대표를 맡아 계속 회사를 경영했다. 이 10년 간의 게임회사 운영 경험은 결과적으로 슈퍼셀이 초고속 성장을 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4명의 공동창업자를 모아 슈퍼셀을 세운 파나넨은 해외 언론 인터뷰 등에서 “내가 평소 꿈꿔온 회사를 만들기 위해 슈퍼셀을 창업했다”고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이유를 밝혔다.

‘최고의 사람들이, 모든 이가 오래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게임을 만든다’는 게 그의 목표였다. CEO의 의지대로 슈퍼셀은 서두르지 않았다. 지난 8년간 정식으로 출시한 게임은 달랑 4개뿐이다.

슈퍼셀은 2012년 여름 ‘헤이데이’와 ‘클래시 오브 클랜’을 잇따라 내놓으며 성공가도에 올랐다. 클래시 오브 클랜을 불과 3개월 만에 미국 게임시장 1위에 올리면서 파나넨은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과 슈퍼셀이란 회사를 각인시켰다.

2014년 3월 한국지사를 설립한 슈퍼셀은 국내에 클래시 오브 클랜을 출시하며 게임 마케팅 판도까지 바꿔버렸다. 지상파와 케이블TV 광고를 비롯해 쇼핑몰과 지하철역 등을 도배하다시피 한 엄청난 광고는 과도한 물량공세란 비판도 받았지만 이후 대작 게임 마케팅의 기준이 됐다.

슈퍼셀은 2016년 출시한 ‘클래시 로얄’을 세계 131개국 게임차트 1위에 올리며 또 한번 도약했다. 그 해 3월 슈퍼셀의 게임들은 처음으로 전 세계 하루 사용자 1억명을 돌파했다. 클래시 오브 클랜은 지난 10년을 통틀어 애플 앱스토어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게임으로 꼽힌다. 클래시 로얄은 출시 2년 만에 누적 매출 20억 달러(약 2조2,480억원)를 기록했다. 슈퍼셀은 10억 달러 이상 매출을 올린 ‘빌리언셀러’ 게임 2개를 보유한 전 세계 유일한 게임회사가 됐다.

한 해에도 모바일 게임을 서너 개씩 쏟아내는 다른 회사들과 비교하면 느려도 너무 느린 전략이 적중했다. 하루에만 전 세계에서 750개 넘는 모바일 게임이 출시된다고 하는데, 그 중 수백 개는 나온 줄도 모르고 사라진다. 하지만 슈퍼셀 게임들은 여전히 매일 1억 명에 이르는 사용자를 끌어 모으고 있다. 간단한 방식으로 재미있게 지인들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슈퍼셀 게임들의 장수 비결로 꼽힌다.

슈펴셀이 지난 8년 간 정식으로 출시한 4개의 게임. 슈퍼셀 제공
성공 발판이 된 파나넨의 경영철학

슈퍼셀이란 회사명은 ‘최고의 인재들로 이뤄진 작은 셀 조직’이란 의미다. 세포를 뜻하는 셀은 슈퍼셀에서 작지만 독립적인 팀이다. 5명 내외로 이뤄진 각각의 셀들은 게임 개발 전 과정에서 자율성을 보장받고, 셀 구성원들은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자율적으로 한다. 수직적인 관료주의를 없애고 개인의 창의성을 극대화하려는 파나넨의 가치관이 셀에 투영됐다.

그는 창업 초기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CEO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스포츠 구단의 CEO처럼 각 포지션 별로 가장 우수한 선수들을 모은 뒤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 조성까지를 자신의 역할로 한정했다. 일일이 지시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CEO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여기에 파나넨은 실패를 축하해주는 독특한 ‘실패 장려 문화’를 만들어 인재들의 도전과 혁신을 유도했다.

슈퍼셀이 설립 이후 단 4개의 게임을 선보인 데는 이 같은 기업문화가 영향을 미쳤다.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할 수 있다고 구성원들이 확신한 게임만 정식으로 출시한 것이다.

게임을 만드는 이들이 스스로 재미있다고 느끼지 못하면 개발하던 게임도 주저 없이 폐기했다. 한참 개발을 진행하다 쓰레기통으로 간 게임이 14개에 이르고, 초기 단계에서 폐기한 프로젝트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슈퍼셀이 처음 개발한 게임 ‘건샤인’ 역시 베타 버전이 6개월 만에 약 50만명의 사용자를 모았지만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폐기되는 운명에 처했다.

표면적으로는 실패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실패가 아니었다. PC와 모바일 기기에서 모두 플레이가 가능한 건샤인 폐기는 슈퍼셀이 PC 게임을 포기하고 모바일 게임에만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 파나넨은 “실패가 없다는 것은 혁신이 없었고 모험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실패 없이는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직원들에게 실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난해 베타 버전이 출시된 슈퍼셀의 모바일 게임 '브롤 스타즈' 로고. 슈퍼셀 제공
도전은 계속된다

클래시 로얄의 대성공으로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슈퍼셀의 주인은 2016년 6월 중국의 거대 인터넷 기업 텐센트로 바뀌었다. 고작 서비스하는 게임 4개에 전 직원 230여명에 불과한 슈퍼셀 지분 84%를 인수하는 데 텐센트가 투입한 금액은 무려 86억 달러(약 9조7,000억원)다. 중국 기업의 인수합병(M&A) 중 가장 많은 인수금액으로 알려졌다.

최대주주는 변경됐어도 슈퍼셀은 본사를 헬싱키에 유지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일본 도쿄, 한국 서울, 중국 상하이의 지사도 그대로다. 파나넨도 계속 경영을 전담한다.

중국 자본이 접수한 슈퍼셀은 클래시 로얄 이후 2년여 만에 신작 게임 출시를 저울질하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캐나다에서 애플 아이폰용 iOS 베타 버전 테스트를 하고 있는 ‘브롤 스타즈’다. 전략 액션게임(AOS)으로 분류되는 브롤 스타즈는 1년 넘는 테스트 기간 동안 수 차례의 업데이트를 거치며 완성도를 높여가는 중이다. 정식 출시까지 이뤄진다면 슈퍼셀의 다섯 번째 선수가 된다.

신작을 2년 넘게 선보이지 못한 슈퍼셀은 지난해 전 세계 매출 18억 유로(약 2조3,000억원)를 올렸다. 2015년 21억900만 유로로 정상을 찍은 뒤 2016년 매출이 21억 유로로 소폭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더 떨어졌다. 아직 연간 영업이익이 9,000억원 규모로 1조원에 육박하고 있지만, 기존 인기 게임들은 전성기를 서서히 지나가고 있는 양상이다.

슈퍼셀에겐 차기작 투입과 또 한번의 성공이 절실한 시점이지만 최근 몇 년 새 모바일 게임 시장은 급속히 변했다. 한국 게임회사들이 선두에 서 있는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 모바일 게임의 대세로 부상했다.

2016년 말 넷마블이 내놓은 ‘리니지2:레볼루션’을 필두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모바일’ 등 한국 MMORPG는 정교하고 화려한 그래픽과 풍부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글로벌 유저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2015년 5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연단에 선 파나넨은 “2010년 창업 당시 세계 게임업계를 주도한 한국 게임회사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 게임이 슈퍼셀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글로벌 모바일 게임 시장을 평정한 그는 이제 한국 게임의 거센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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