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무 국방부 장관(왼쪽)이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 관련 긴급회의에서 이석구 기무사령관 뒤를 지나가고 있다. 이날 송 장관은 작년 3월 촛불집회 당시 작성된 기무사 계엄령 문건에 등장하는 부대의 지휘관을 소집해 문재인 대통령 지시와 관련한 사항들을 논의했다. 홍인기 기자 /2018-07-16(한국일보)

조국 수석의 미심쩍은 기무사 개혁 방향

송영무 장관과 회의서 계엄 문건은 뒷전

군부통치에 필요한 비선기관 인식 바꿔야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했다는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수행방안’ 문건의 파장이 심상찮다. 정상회담을 위해 인도를 국빈방문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기구 설치를 통한 엄정한 수사를 지시한 데 이어 관련 문건 일체를 대통령에게 즉각 제출하라고 추가 지시할 정도로 급박하고 위중한 사건이 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불거졌던 사드 추가반입 논란을 국기 문란 사건으로 몰아갔던 그 퍼런 서슬이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지난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선고 직전 작성했다는 문건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근거로 대규모 소요 발생 시 군 당국의 위수령과 계엄의 요건 및 절차, 조치사항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문건에는 지역별 병력 배치 방안까지 나와 있고, 청와대가 추가 공개한 세부자료에는 국회 제압과 언론 통제 등이 매우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일부에서 법률 검토 보고서에 불과해 내란 예비음모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군부의 시위 군중 진압 구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문건 작성 경위나 의도, 실행 여부 등 시시비비를 대통령의 명을 받은 특별수사단이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의 화살은 당시 지휘라인이던 한민구 국방장관, 조현천 기무사령관 및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향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송영무 국방장관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불똥이 튀었다. 송 장관은 지난 3월 기무사의 계엄 문건을 보고받고도 4개월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입길에 올랐고, 조 수석은 문건의 존재를 확인한 시점을 두고 오락가락 해명으로 의심을 사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이 기무사 개혁 방안을 두고 충돌하는 와중에 문건이 뒷전으로 밀린 것으로 알려져 놀라움을 더하고 있다. 청와대와 국방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송 장관은 4월 30일 임종석 비서실장, 조 수석 등 청와대 참모진과 기무사 개혁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에 계엄령 문건도 함께 보고했다. 하지만 송 장관과 조 수석이 당시 핵심 의제인 기무사 개혁을 두고 난상토론을 벌이면서 계엄령 문건은 뒷전이 됐다. 청와대의 이런저런 해명에도 문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문건이 기무사 개혁에 밀릴 상황이었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 수석과 송 장관의 의견 대립이다. 당시 송 장관은 광역 시ㆍ도마다 설치된 대령급 기무부대의 전면 폐지를 주장했지만 조 수석은 보다 점진적이고 온건한 개혁을 피력했다고 한다. 기무사 개혁이 오롯이 국방부 소관이며 청와대에서는 국가안보실이 주무 부서인 점을 감안하면 민정수석실의 개입은 월권이라 할 수 있다. 청와대는 “기무사는 일종의 군 사정기관이라 민정수석실 소관”이라고 해명했지만 난센스다. 기무사를 순수 보안ㆍ방첩부대로 전환하는 개혁 방향을 세우고 과거 정부와 마찬가지로 사정기관처럼 활용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기무사는 군사 쿠데타의 산실이었던 보안사의 후신으로 몇 차례 개혁 과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내 권력기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서는 댓글 여론 조작에다 세월호 유족과 시민단체 사찰 등 민간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이에 문재인 정부 들어 송 장관이 기무사의 과감한 개혁을 위한 칼을 빼 들었지만 안팎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삼각지 주변에서는 “대선 과정에서 기무사 출신 장군 및 대령 22명이 공개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던 장면을 감안하면 이번 정부 개혁도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 파다하다.

계엄령 문건 사건을 기무사 개혁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국방부 기무사개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영달 전 의원은 “기무사의 해체를 고민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실토했다. 기무사는 대통령령에 존립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결심하면 해체 수준의 개혁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기무사를 군부 통치에 필요한 비선기관으로 인식하는 한 계엄령 문건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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