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합계출산율이 1.0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충격적이다. 전쟁 중인 것도 아니고, 체제가 붕괴된 것도 아닌데,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이르는 자칭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다고 자화자찬하는 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합계출산율이 1.0 이하로 떨어진 경우는 전쟁 중이거나 동유럽처럼 공산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급격한 이행을 겪었던 사회에서 나타난 예외적 현상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일부 학자들과 언론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거나 늦게 하는 비혼과 만혼을 저출산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하고, 젊은이들의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저출산 현상은 단순히 인구학적 문제가 아닌 듯하다. 비혼화와 만혼화 등 인구학적 변화는 한국만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서구 국가들도 공히 경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의 평균 출산연령을 보면 2016년 기준으로 한국은 31.9세로 스웨덴의 31.1세와 큰 차이가 없다. 첫째 자녀를 출산하는 여성의 평균 연령도 한국(31.4세)과 스웨덴(29.2세)의 차이는 크지 않다. 그런데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은 인구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 근접한 1.8인데 반해 한국은 1.2로 차이가 크다. 스웨덴이 한국과 너무 다르다고 생각하면 저출산 국가인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보아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첫 자녀 출산연령은 각각 30.8세와 31.0세로 한국과 차이가 없다. 반면 합계출산율은 둘 다 한국보다는 높은 1.3~1.4대를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출산 문제를 개인주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인구학적 문제로 접근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개인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시대적 흐름을 잘 못 읽은 것이다. 개인이 행복하지 않다면 국가적 대의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개인의 희생이 절실히 요구된다 해도 한국 사회는 더 이상 개인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권위주의 시대의 선성장 후분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모든 국민이 고통을 분담하며 IMF 경제위기를 넘겼지만, 국민의 삶은 더 악화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지를 고민해야하는 사회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부, 학벌, 사회적 지위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가족 배경에 따라 결정되는 사회에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고통스럽고, 불평등으로 가득 찬 삶을 자녀에게 물려주겠다는 선언과 같은 것이다. 생각해 보라. 세상의 어떤 부모가 자녀가 자신의 노력이 아닌 누구의 자녀로 태어난 운명으로 불평등하고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녀를 낳을 수 있겠는가. 한 주간지에 보도된 “헬조선의 고통을 자식에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청년의 이야기는 지금 저출산과 마주한 한국 사회가 놓여 있는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어렵지만 결국 국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선 어떠한 대책도 무의미한 상황이 되었다. 주택, 사교육, 일자리, 성평등 등 다양한 이슈를 제기하지만 더 이상 몇 가지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으로는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인구감소 문제를 평범한 사람들이 직면한 삶의 어려움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풀어 갔던 1930년대 스웨덴의 경험을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적은 돈과 노력을 들여 현재 문제를 효율적으로 풀어 갈 묘수는 없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직면한 민생의 문제를 총체적이고 동시적으로 풀어 내야 한다. 총체적인 삶의 질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지금처럼 한 명을 낳는 것도 기적이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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