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캄보디아 총선

# 훈 센 총리 33년째 장기 집권
제1야당 ‘박멸’… 재집권 확실시
집권당 CPP, 3분의 2 획득 목표
# “강단 있는 野 지도자 없어” 실망
야권 지지자도 선거에 무관심
“中 견제할 필요” 민심이 관건
캄보디아 총선(29일)을 보름 가량 앞둔 지난 13일 수도 프놈펜 시내에서 한 야당 관계자가 ‘툭툭이’(3륜 오토바이)를 이용해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녔지만, 야당의 선거운동에 관심을 보이는 행인은 보이지 않았다.(왼쪽 사진) 본격 선거 운동이 시작된 7일 집권여당인 캄보디아인민당(CPP) 관계자들이 발대식을 가진 뒤 유세에 나서는 모습(CPP 제공). 제1야당(CNRP) 해산 후 무관심 속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열아홉 다윗과 하나의 골리앗’ 싸움에 비유된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캄보디아 총선에는 20개의 정당이 123개 의석을 놓고 경쟁을 벌이지만, 기본적으로 야당은 ‘게임’이 안 되는 선거다. 33년째 집권 중인 훈 센 총리가 제1야당이던 캄보디아구국당(CNRP)을 박멸 수준으로 해산시킨 뒤 집권여당 캄보디아인민당(CPP)에 대적할 만한 정당이 없는 상황이다. ‘나홀로 선거’라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다. CPP의 승리와 그에 따른 훈 센 총리의 재집권이 확실시된다. 다만 사실상 혼자 치르는 선거이기에 CPP가 ‘압승’하지 못할 경우 정국이 요동칠 가능성도 있다. 2013년 총선에서 CNRP와 박빙의 승부를 펼쳐 68석을 차지한 CPP는 이번 선거 승리 기준을 60%대 후반의 투표율에, 123석 중 80석 이상 획득으로 보고 있다.

무관심 속 선거

지난 19~21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과 제1의 관광도시 시엠레아프는 총선을 2주 가량 남겨 놓고 있는 곳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도 CPP 문장을 붙인 관용 차량들만 보였다. 택시 기사 껌(33)씨는 “5년 전 선거 때는 온 길거리가 사람들로 넘쳤지만, 지금은 그 어느 야당에도 기대를 걸기 힘들다 보니 선거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CPP 외에 19개 야당이 선거에 참여하고 있지만, 거리에서 이들의 선거 운동과 홍보 현수막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도 무관심은 그대로 드러났다. 프놈펜 독립기념탑 인근의 한 신발가게에서 만난 마디(28)씨는 “투표장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투표를 거부하거나 손가락에 가짜 잉크를 묻혀 투표한 것처럼 속인 사람은 처벌한다는 소문 때문에 (투표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캄보디아 선관위는 투표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투표한 유권자 손가락에 검은 잉크를 찍어 주는데, 2주 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선거의 정통성을 훼손하려는 야권에서 ‘투표하지 않아도 가짜 잉크를 묻히면 투표한 것처럼 보인다’며 ‘선거 보이콧’ 전략을 구사하고 나서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여권에서 ‘가짜 잉크’ 처벌 소문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프놈펜에서 만난 한 유권자가 '가짜 잉크'와 관련 집권여당에서 만들어 배포한 홍보물을 보여주고 있다. 훈 센 총리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던 그는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포스트 상단 자신의 이름을 가렸다.
지리멸렬한 야권

투표에 대한 무관심은 기본적으로 이번 총선이 선거 같지도 않은 선거인데다, 지리멸렬한 야권에 대한 실망 때문으로 보인다. 현지 B매체의 현직 기자(28)는 “2013년 총선 때 CNRP 지도자 삼랭시 등 야권 정치인들을 국민들이 지지했지만, 이후 훈 센이 탄압하자 모두 해외로 도망쳤다”며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은 실망이 아니라 분노”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건 한국의 지도자 김영삼, 김대중 이야기를 들었다는 그는 “강단 있고 수권능력도 갖춘 야권 지도자가 캄보디아에는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로 도피한 삼랭시는 프랑스 이중국적자다.

작년 11월 CNRP가 해산 된 뒤 그 명맥을 이을 만한 야당이 보이지 않는 것도 사람들을 선거에 대한 무관심으로 내모는 듯 했다. 시엠레아프에서 만난 택시 기사 나릿(34)씨는 “이번 선거에 나온 19개당 중 야당다운 야당으로 클 수 있는 당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분위기는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표를 주고 싶은 당은 없지만 손가락 잉크가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이번 총선에 참여하는 19개 야당 중 하나인 민주연합당(LDP)의 팔리(34)씨가 앙코르사원 인근 가로수에 당 홍보물을 붙이고 있다. 걸어 다니면서 눈에 띄는 곳에 전단지를 붙이는 것 외에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한다. 집권여당은 관용 차량과 공무원들을 동원해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엠레아프=정민승 특파원
중국이라는 변수

야당의 선거 운동원들도 이번 선거에서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였다. 앙코르사원 인근 가로수에 홍보물을 붙이던 민주연합당(LDP) 당원 팔리(34)씨는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의석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면서도 “동네 교사도 의사도 모두가 훈 센의 친인척인 판인데, 다음 세대에게 이런 나라를 물려 줄 수는 없어 내 돈으로 홍보물을 만들어 뛰고 있다”고 말했다. 멀리 내다보고 선거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밋밋하기 이를 데 없는 이번 선거에서는 중국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감지됐다. 나릿씨는 “중국 관광객들이 많지만 모두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호텔, 차량만 이용한다. 총리한테는 좋을지 몰라도 우리에겐 도움이 안 된다”며 “이번 선거를 통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고 전했다. 정권 유지를 위해 훈 센 총리가 중국에 밀착하고 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캄보디아 내 중국인들의 행태가 거칠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캄보디아 대리모를 이용한 중국의 ‘아기공장’, 살인, 강간, 마약 등 일련의 강력 사건들이 중국인들에 의해 자행된 바 있다.

현지 상황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여당 내부에서도 중국에 의한 식민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훈 센 총리도 중국의 지원이 ‘독이 든 와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등 서방국들은 야당에 대한 훈 센의 정치 탄압을 들어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프놈펜ㆍ시암레아프=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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